<로마서 15:14~21>
1874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한 소년은 10대 때 부친이 죽고,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야 했습니다. 청년시절에 접어들면서 열심히 일도 하고, 결혼도 하고, 나름대로 일하는 곳에서 인정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에게 속아 대대로 물려받았던 땅과 집을 다 뺏기고, 하루아침에 거지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화를 삭일 수 없어서 매일같이 술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거리와 시장으로 나가 지나가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때리고 패며 깡패 짓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안악골 호랑이’였습니다. 얼마나 못된 짓을 많이 했는지 어떤 사람들은 성황당에 가서 ‘오늘은 안악골 호랑이를 만나지 않개 해 주세요’하고 빌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이 청년이 장터에 나갔다가 서양 여자선교사가 전해준 전도지를 받아보고서는 “뭐 나더러 서양귀신을 믿으라고?” 하면서 전도지로 코를 풀어 길바닥에 내팽겨 쳤습니다. 그 때 그 선교사가 “청년! 전도지로 코를 풀면 코가 썩어요”라고 말했답니다. 이 청년은 그 선교사에게 욕을 하며 지나왔다고 합니다. 얼마 후 한 친구의 인도로 우연히 선교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를 믿게 되는데, 이 분이 우리 한국의 초대교회 대부흥사였던 ‘김익두 목사(1874~1950)’입니다.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회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전국을 돌며 776회에 이르는 집회를 인도하고, 150개의 교회를 건축하고, 질병의 치료를 받은 사람만 1만 명이 넘어선다고 합니다. 누가 안악골의 호랑이 깡패 김익두가 이렇게 변화될 것이라고 예상했겠습니까?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려면 우리의 생각의 틀을 깨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겨우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절대 변하기 어려워. 저런 사람은 예수 믿기 힘들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의외의 사람들도 변화시키시고, 새롭게 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는 청년 시절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이방인들을 위한 가장 위대한 사도로 쓰임 받게 될 것은 당시의 사람들 중에 과연 누가 예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래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셨던 겁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선민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구원 받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사도는 지금의 터키의 타르수스(Tarsus : 다소)에서 태어나고 자란 디아스포라(Diaspora : 외국에 거주하는, 흩어진 유대인들) 유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어, 율법에 철저한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나사렛 예수를 믿는 이들을 박해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를 믿은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시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로마에 있던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더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깊이 깨달았을 겁니다. 때문에 로마에 아직 특별한 목회자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복음의 진리와 지식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권함으로 믿음생활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사실에 대해서 인정하며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을 보시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항상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려고 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여기에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은 철저한 유대교에서 성장한 유대인이지만 이방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과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을 통해 이방인들이 성령으로 거룩해 지고,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 헌신(제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8절과 19절에 보면 예루살렘부터 시작해서 터어키와 그리스와 오늘날의 유고슬라비아(일루리곤)까지의 선교를 통해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시면,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민족과 인종과 언어와 문화와 국경을 초월하여 온 세상에 이 복음이 전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일을 지금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그 생각의 틀이 깨져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의 틀에 갇혀 살면 안 됩니다. 내 생각이 곧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내 생각을 벗어난 놀라운 일들을 이뤄 가시고 계십니다. 내 생각의 틀을 깨시고, 초월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내 삶을 놀랍게 이끌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내 생각과 내 계획과 내 뜻보다 하나님의 플랜이 더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