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8:10~16
‘사슬’이라는 것은 보통 두 개 이상의 금속제를 가지고 엮어 만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쇠사슬’이라고도 부르고, 영어로는 ‘Chain’ 이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 어떤 줄보다 강하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매여 있을 때, ‘사슬에 매였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 겁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슬에 매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사슬에 매여 있었고, 바울사도도 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사슬에 매인 것과 같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 보고,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그 절망의 순간들을 뚫고 나갈 길을 찾아보지만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고, 그 순간들이 절망의 사슬에 매인 것과 같은 때가 있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그 실패로 인해 건강도 상하고, 재정도 바닥이 나고, 그 전에 가까웠던 사람들도 다 떠나서 더 이상 내 손을 잡아 줄 사람도 없고, 또 다른 어떤 소망을 가질 수 없는 상황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시편118편의 시인의 상황이 마치 ‘절망의 사슬’에 매인 것과 같습니다.
-(10절)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11절) 그들이 나를 에워싸고 에웠샀으니
-(12절) 그들이 벌들처럼 나를 에워쌌으나
-(13절)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시인의 표현만 봐도, 지금 그가 절망의 벼랑 끝에 내 몰린 것과 같고, 사방에서 시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고, 벌떼가 달려들듯이 긴박한 상황입니다. 그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에워쌌고, 10절의 ‘뭇 나라’는 표현을 통해 봤을 때 그것은 한 두 사람의 작은 세력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가공할 만한 큰 권력으로 에워싼 상태를 말합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까? 어떤 소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이제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구나…’ 할 만한 상황인 것입니다. 지금 그의 인생은 ‘절망의 사슬’에 매인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 시인이 붙들었던 무기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그러나 ‘절망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무기를 붙들었던 겁니다.
-(10~12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
이 구절이 세절에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 앞세우고 나갔습니다. 사슬은 인간의 힘으로는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이름보다 더 강력한 사슬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슬이 강한 것은 맞지만 그 보다 더 강력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 이름을 앞세우고, 그 이름을 믿고 나갔던 시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3절)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4절)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 되어 주셨다
-(14절)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16절) 여호와의 오른 손이 권능을 베푸셨다
우리의 인생 속에 때때로 ‘절망의 사슬’과 같은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니 시인은 그 절망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것이 ‘여호와의 이름’이요, ‘여호와의 오른 손’이란 사실을 믿고 있었던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도바울도 고린도후서 4:1절에서 “우리가 … 낙심하지 아니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고린도후서 4:7~9절까지를 통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방이 다 막혀 있다 할지라도,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실 때, 그 철의 장벽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절망의 사슬도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그 큰 능력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 보배로운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그 이름으로 오늘도 어떤 장벽, 어떤 장애물, 어떤 인생의 사슬이라 할지라도 끊어버리고, 뚫고 나가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