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샘’]
김제환목사(세부광명교회)
‘광야(曠野)’라는 말과 ‘사막(沙漠)’이란 말은 비슷한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밝을 광(曠)’이라는 한자는 ‘밝다’라는 뜻 뿐만 아니라 ‘비다, 공허하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광야는 텅 비어 있는 넓은 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좋은 옥토라면 비어있겠습니까? 광야는 지형적으로 험하고 척박해서 사람이고 동물이고 살기가 어려운 곳을 말합니다. 때때로 ‘광야’라는 단어를 인생이라는 말에 붙여 쓰기도 하는데, ‘인생의 광야’라고 한다면 지금 처해진 상황들이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척박한 광야와 같은 인생이라는 의미인 겁니다.
사막이라는 말도 유사한 표현이지만, ‘모래 사(沙)’자와 ‘사막 막(漠)’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사막은 광야보다 더 생물이 살아가기가 힘든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막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서 인간과 동물뿐만 아니라 각종 식물들도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광야도 아닌 사막 한 가운데 버려진 스무살 어린 신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실화는 『사막에 숲이 있다 / 이미애, 서해문집, 2006년』라는 책에 소개되어 있고, 그 이후 여러 TV방송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1985년 갓 스무살이 된 인위쩐은 그녀의 아버지 손에 이끌려 중국의 네이멍구에 있는 마오우쑤 사막 징베이탕 지역에 사는 바이완썅이란 청년에게 시집을 가게 됩니다. 인위쩐은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울며 애원했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그 사막에 버려두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녀의 신혼집은 토굴 같은 곳이었고, 천장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습니다. 한 숨 한번만 크게 내쉬어도 벽에서는 흙이 우수수 떨어졌고, 쾌쾌한 냄새의 이불 한 채와 깨진 거울 그리고 이 빠진 그릇들과 성한 냄비 하나 없는 부엌과 좁쌀 한 줌이 먼지처럼 달라붙어 있는 곡식 항아리가 살림의 전부였습니다.
인위쩐은 결혼 후 그 사막에서 40일간 사람 하나 지나가는 것을 못 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앞을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에 남은 것을 보고 그 발자국 위에 대야를 덮어 사람이 그리울 때마다 그 대야를 열어 발자국을 보며 위안을 삼았습니다. 마오우쑤 사막의 징베이탕은 우물도, 새도, 풀도, 사람의 발자국조차 구경하기 힘든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인위쩐은 친정집으로 돌아가겠노라고 날마다 울며 남편에게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따라 함께 울고 있는 남편 바이완샹의 순한 눈망울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눈물을 거둔 인위쩐은 남편에게 사막에 나무를 심어 그곳을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자고 하게 됩니다.
그녀는 결혼할 때 친척이 준 양 한 마리를 팔아서 작은 묘목 600그루를 사면서부터 사막에 나무 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여린 체구에 하루 마흔 번의 물지게를 짊어지고, 매일 20km 내외의 사막을 걸어서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게 됩니다.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988년 3월 29일, 그녀는 묘목을 등에 업고 큰 모래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만삭이었던 그녀는 그 순간 현기증이 났었고 등에 나뭇가지들을 짊어진 채로 그 모래 언덕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엄마 뱃속에서 9개월간 세상에 나올 날만 기다리던 태아는 결국 유산하게 되어 황량한 모래 언덕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진 시련 속에서도 인위쩐과 그녀의 남편은 매일 사막에 나무를 심어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처음에 심었던 600그루의 묘목 중에 절반정도인 300그루가 죽지 않고 살아 손톱만한 작은 새싹을 밀어내며 강한 생존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15년 가까이 지난 1999년에 인위쩐이 일이 있어 도시에 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기자들을 만났는데, 사막 한 가운데에 숲이 있다는 인위쩐의 말에 깜짝 놀란 기자들이 징베이탕에 방문하게 되고,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사방 수십 킬로미터 안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에 커다란 숲이 만들어져 있었던 겁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중국 내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농업계 고등학교 학생들과 군인들과 정부 관리들과 농부와 유목민 등등이 그녀가 일구고 있는 사막인 징베이탕에 와서 함께 숲을 만드는 일을 도왔습니다. 버려졌던 땅에 숲이 생겼고, 사막이었던 곳에 길이 뚫리고, 우물이 생기고,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친척들도 하나 둘씩 그녀를 도우러 사막으로 들어왔습니다. 2002년 징베이탕에서 참마 5000kg, 메밀 1500kg, 녹두3000kg 그리고 옥수수를 재배한 면적은 4000평이었다고 합니다. 연약한 한 여인이 20년 동안 여의도 면적의 10배에 해당하는 넓은 사막에 80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고,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겁니다.
그녀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곳에선 울어야 할 이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살아야 할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막을 피해 돌아가서는 숲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막에 나무를 심었더니 그것이 바로 숲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그걸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떤 걸 하기 힘들어하면, ‘힘들면 하지마…’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부모의 곁을 떠나 혼자 독립해 살아갈 때, 사회 속에서 힘든 일이 없겠습니까? 그러면 우리 아이들이 그 때마다(학교도 그만두고, 회사도 그만두고, 사업도 그만두고…) 그 때마다 피하기만 한다면, 과연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어쩌다 어른이 되고, 어쩌다 부모까지 되었는데, 인생의 광야를 견뎌낼 수 없는 근력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울어야 할 이유만 있는 줄 알았지만, 그 인생의 광야 속에서 숲을 만들어 갈 때는 살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인생의 광야를 계속 피하기만 하면 숲으로 갈 수 없지만, 그 광야에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숲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 세부에 살면서도 분명 피하거나 돌아가고 싶은 인생의 광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련들 앞에서 늘 피해만 다니지 마시고, 여러분 인생의 광야와 같은 그 현장에 꿈과 비전의 나무를 심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 광야가 기적의 현장이 되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곳이 되길 축복합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이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이사야43:18,19)” 지금 인생의 광야에 있을 지라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광야와 사막도 얼마든지 사람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