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서 5:2~16>
우리는 살아가면서 부부관계, 친구관계, 교우관계, 직장동료 등등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는 시련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늘 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끊고 혼자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의인 욥도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자녀들을 잃고, 육체의 큰 질병으로 고생을 했지만 그는 그 때까지 그 믿음의 신실함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었던 것은 그의 친구들의 가시 돋친 말들과 욥을 향한 정죄로 인해 욥은 욥기 3장부터 욥기가 마쳐지는 42장까지 고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이 그 관계의 문제를 극복하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의 모든 고난이 끝나는 해피엔딩으로 욥기는 마쳐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를 잘 풀어가는 사람은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관계의 문제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 나간다면 그가 이후로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여러분 앞에 어떤 해결해야 할 관계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사회적으로 한 층 더 성장할 기회 그리고 마음의 큰 그릇을 준비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아가서 5장1절까지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가서 5장 1절과 2절 사이는 부부로서 생활하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술람미 여인이 꿈을 꾸었는데, 그 여인을 부르는 솔로몬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머리에 밤이슬이 가득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그렇게 문을 두드리고 사랑하는 이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청한 시간이 좀 흘렀음을 말합니다.
3절을 보시면,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그런데 연애시절과 신혼기에는 사랑하는 이가 항상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는데, 신혼기가 지나자 마음이 좀 식은 거 같습니다. 이제 잠이 막 들었는데 깨어서 다시 옷을 입고 신랑을 맞는 게 귀찮아졌던 겁니다. 그래서 이불 속에서 좀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밤이슬을 맞으며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약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마음에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준비를 하고 일어났습니다.
6절을 보시면,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그런데 문을 열고 보니 사랑하는 이가 떠난 겁니다. 불러 봐도 응답이 없고, 찾아봐도 그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부부관계도, 친구관계도 익숙해지면 서로에게 소홀해 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거에 서로 상처 입고 관계가 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만 더 생각해 본다면 처음의 그 좋았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 손을 내밀었을 때 머뭇거리다가 영영 그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도 익숙해지면 형식적이고, 의무적이고, 책임감에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와 하나님 사이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리가 멀어지면 그 분을 불러 봐도, 그분을 만나고 싶어도, 기도해도 공허하게 돌아오는 메아리뿐인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문을 열었는데 때가 늦어 버린 겁니다.
술람미 여인이 급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가 경비병들에게 봉변만 당하게 됩니다(7절). 주님과의 관계가 어느 순간 멀어져 있다면 주님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 없는 나 혼자의 고난과 시련 속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그 고난과 시련 속에서 여인은 눈물로 사랑하는 이를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11절부터 16절에 자신이 사랑하는 이가 얼마나 멋있고, 아름답고,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남자인지를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찬양 중에 ‘주의 아름다움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고, 주님의 그 놀라우심을 다 표현할 수가 없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그 주님의 아름다움과 사랑과 은혜를 잊어버릴까요? 그래서 그 분과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깨지거나 할 때, 주님 없이 방황하는 삶이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순간순간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주님과 멀어진 관계 가운데 있다면, 그 아름다우신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십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내민 손을 붙잡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