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세 가지 자세”

<마가복음 7:24~30> 

– 40일 특새 : 갑절의 은혜를 구하라(22) –

 

 

세계적으로 성공한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 배울 점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NBA의 ‘마이클 조던(Michael Jeffrey Jordan, 1963~)’과 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에 한 명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1983~)’라는 이름에는 언제나 ‘세계 최고, 역사상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닙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경우는 포루투갈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며, 현재까지 유일하게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모두 우승한 선수이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퇴한지 오래되었지만 NBA의 마이클 조던은 여전히 ‘농구 황제’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미국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해리스 폴에서 실시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스포츠 스타’ 설문 조사에서 두 차례 모두 1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NBA에서 현역시절 정규리그 MVP 5회, 파이널 MVP 6회, 득점왕 10회 등의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2003년에 은퇴했습니다. 그의 환상적인 플레이로 인해 NBA라는 미국 프로농구에 전 세계의 팬을 확보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이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이 두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운동 연습장에 가장 먼저 나와서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훈련을 시작하고, 연습장에서 가장 늦게까지 훈련을 하다가 떠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깐 이들이 천재이기 이전에 누구보다도 많이 훈련을 했던 지독한 연습벌레들이었다는 겁니다.

한 번은 농구 캠프에서 한 참석자가 마이클 조던에게 “어렸을 때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했나요?”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때 마이클 조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간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시계를 본 적도 없다. 지칠 때까지, 아니면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연습했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재능이 있다. 하지만 능력은 노력을 요한다”

 

마이클 조던을 포함하여, 각 분야에서 성공적인 결과물을 얻은 사람들을 보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도전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삶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놀라운 능력과 기적과 축복의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영적인 자세와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얼마만큼의 실력과 능력을 갖고 있느냐? 보다도 그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와 태도가 있었느냐? 가 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1. 절박함은 살 길을 찾는다

 

 

예수님께서는 평생 동안 2~3차례 외에는 이스라엘 땅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하시다가 이방인 땅으로 잠시 가셨을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24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두로 지방으로 가셔서 그 곳의 한 집에 들어가셨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두로는 갈릴리 서북쪽에 위치한 지중해변을 끼고 있는 페니키아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의 하반절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가신 목적은 나오지 않지만,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매일같이 몰려드는 수많은 군중들을 피해 잠시 쉼을 얻기 위함일 수도 있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반대와 위협을 피해 잠시 이스라엘 지역 밖으로 피해 있기 위함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갈릴리의 나사렛 예수가 두로에 왔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25절을 보시면,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한 여인이 예수님이 계시다고 하는 그 집으로 찾아와 예수님을 보자마자 흐느끼며 엎드리는 겁니다. 26절에 의하면 이 여인은 수로보니게(시리아의 페니키아) 족속 즉 이방인이었습니다.

지금은 이것이 크게 문제될 것도 없었지만 당시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던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이방인 그것도 이방여인을 만난다는 것은 종교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는 사안이었습니다. 또 1세기 역사학자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100)에 의하면 민족적 우월성에 도취되어 있던 유대인들에 대해서 주변의 이방인들은 심한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는 그 어떤 조건들, 상황들이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흉악한 귀신에 들린 자신의 어린 딸 때문이었습니다. 그 딸에게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사랑하는 딸이 그렇게 망가져 가는 모습에 엄마의 마음도 매일 무너져 내렸던 겁니다. 딸을 고칠 수만 있다면, 딸에게서 귀신이 떠나가게만 할 수 있다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절박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살 길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라는 이방인 지역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들어오셔서 작은 집 하나를 얻어 거기 잠시 머무셨던 겁니다. 예수님이 그 지역에 오셨다는 소문이 퍼졌을 때 그 여인만 그 소문을 들은 게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가서 문제를 해결 받은 여인은 그 여인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4절 하반절에서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는 말씀과 같이 절박한 수로보니게 여인은 결국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통계청 발표(2010년)에 의하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부’였습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그게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게 공부이기도 합니다.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의과를 전공했고, 우리나라 대표적 정신과 전문의이자 뇌과학자이며, 크리스천이시기도 한 ‘이시형(1934~)’박사가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공부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뇌는 적당한 압박, 적당한 긴장(Optimum Tention)’을 좋아하기 때문에 절박함을 느끼는 만큼 공부는 잘된다”

 

시험보기 전날 ‘벼락치기’해서 효과를 본 분들이 있을 겁니다. 시험 전 한 달 동안, 일주일 동안 넉넉하게 놀다가 시험 전날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벼락치기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그거라도 하면 그 동안 시험공부 안 한 거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는 겁니다. 그래도 꾸준히 노력해온 학생들하고는 경쟁이 안 됩니다. 하지만 벼락치기 할 때의 그 적당한 압박과 긴장 즉 절박함을 좀 더 일찍 갖고 시작했다면 그 학생은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공부뿐이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의 생활 속에 절박함이 있다면, 그 절박한 사람의 눈에는 살 길이 보입니다. 절박한 사람은 이것저것 따지고 가리지 않습니다. ‘절박(切迫)’이란 말은 ‘끊을 절(切)’자에 ‘닥칠 박(迫)’자를 쓰고 있습니다. 땅이 어느 지점에서 끊어져 거기에 절벽이 만들어지고, 그 벼랑 끝에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생 속에서 절박함이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의지할 게 없는 겁니다. 그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살아남으려는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절박함으로 나왔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절박함으로 나아갈 때 살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 여인도 그 귀신들린 딸을 위해 안 해본 게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딸아이를 전혀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두로 지역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이 절박한 그 여인에게는 크게 들려졌습니다.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데 이방인이고, 유대인이고,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고, 누가 뭐라고 그러건… 그런 것들은 절박한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바로 달려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께 절박한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그에게는 살 길이 열리질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부에서 제대로 된 큰 성공을 원하신다면 이곳에서 절박한 마음을 갖기만 해도 큰 결과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내 힘으로 안 되고, 내 계획대로 안 되고, 내 생각대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녀들도, 우리 가정도, 우리의 생업과 기업도, 세부에 들어올 때 갖게 된 플랜도… 그 어느 것 하나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 앞에 절박함으로 부르짖으시길 바랍니다. ‘주님 우리 아이를 고쳐주세요. 우리 아이를 살려주세요. 주님 내 인생을 고쳐주세요. 주님 우리 가정을 살려주세요. 주님 나에게 살 길을 열어주세요.…’ 우리 하나님께서 그 절박한 눈물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살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40일 특별새벽기도] 이런데 나오는 게 어렵습니까? 안 어렵습니까? 어려울 수도 있고, 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절박한 사람에게는 이거 하나도 안 어렵습니다. 아직 견딜만 하면 절박한 마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 바닥을 치면, 내 힘으로 도저히 안 되는 그런 상황에 다다르면 그 때 두 손을 들고, 절박하게 주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40일이든, 70일이든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 이것은 믿음입니다. 지금 내 삶에 변화가 필요하고, 이 변화는 주님께서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살 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2. 간절함은 한계를 돌파한다

절박함과 간절함은 비슷한 단어이지만, 절박함이 벼랑 끝에 서 있는 위기의 상황 속에 있는 모습을 말한다면,

 

 

‘간절함’의 사전적인 뜻은 ‘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하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간절히 기도 하옵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그 기도의 내용을 절실히 바라고 바란다는 의미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절박함은 현재 닥친 최악의 상황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모습을 말한다면, 간절함은 그것을 해결해 나가려 하는 절실한 마음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27절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은 여인의 절박한 처지를 들으셨지만, 어떤 의도를 갖고, 이 이야기를 듣게 될 사람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실 마음으로 그 여인에게 은유적인 표현을 빌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비천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자녀’는 유대인을 말하고, ‘개’는 이방인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절하신 겁니다. 그 여인 앞에 뜻하지 않은 장애물이 나타난 겁니다. 예수님은 선한 선생님이라 들었는데, 예수님은 약하고 병든 이들과 소외된 이들과 죄인들의 친구라고 들었는데 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안타까운 처지를 외면하고 계신 겁니다.

이 여인이 얼마나 실망스럽겠습니까? 기대를 한 만큼 실망도 더 큰 법입니다. 다른 유대인들이야 그런다 쳐도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그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이 왜 안 들겠습니까?

그러면 사람은 거기서 크게 실망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입장에서는 이게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겠습니까? 하지만 간절함은 그런 한계쯤은 돌파해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면, 내 자존심이 좀 구겨지면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 내가 바보처럼 보이면 좀 어떻습니까? 하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그 빵 부스러기라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개에게 자신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원하고 정말 바란다면 여러분 앞에 있는 어떤 장애물과 어떤 한계들도 돌파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자존심의 문제라든지, 내 감정적인 문제라든지, 또는 환경적인 여러 가지 장애물들과 환경들과 조건들이라 할지라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지금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에서 류현진 선수가 투수로 활약하고 있지만, 우리나라 선수로서 메이저리그에 최초로 진출한 사람은 ‘박찬호 선수(1973~)’였습니다. 그는 1994년 LA다저스에 데뷔했고, 160km의 강속구를 던지며 팀의 제1선발로 활동했고, 124승을 거둬 메이저리그 동양 최다승 투수에 등극한 인물입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꿈과 성공을 이루는데 간절함의 중요성은 수십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다.”

 

그가 한국 야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간절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간절함이 그를 그 자리에 세워줬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21세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자마자 공만 빠르지 제구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17일 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게 됩니다. 본인에게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한 일 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약이 되어 메이저리그로의 복귀에 대한 간절함이 더 커졌던 것입니다. 결국 그 간절함이 그를 다시 일으켰고, 그는 한국 야구사에 전설적인 인물로 기록되게 된 것입니다.

 

시편 63편 1절을 보시면,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사람은 물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황량한 사막에서 가장 간절한 게 ‘물’아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향해 그런 간절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8:17절 말씀에서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여러분이 주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을 때 주님은 우리를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 간절함은 우리의 모든 한계들을 돌파해 나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3. 믿음의 기도는 역사가 된다

오늘 본문의 수로보니게 여인이 하나님 앞에서 갖고 있었던 영적인 자세와 태도는 첫 번째가 절박함이었고, 두 번째가 간절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믿음의 기도’였습니다.

 

29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예수님께서 여인의 말에 감탄을 하셨습니다.

 

평행본문인 마태복음 15:28절을 보시면,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Woman, you have great faith! Your request is granted)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NIV 영어번역도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의 말에 감탄하신 이유를 보니깐, 그 여인은 great faith(큰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소원(request : 요구)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여인의 기도대로 된 것입니다.

이 구절의 핵심 의미와 단어가 ‘믿음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기도가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6절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마가복음 11:24절에서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믿는 대로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말한 대로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꼭 눈을 감고 기도라는 형식으로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보고 계시고, 여러분의 말을 다 듣고 계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세부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고 원한다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매일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 불평과 원망과 비관과 부정적인 것으로 가득채운다면, 그 사람의 삶 속에는 그런 부정적인 것들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지금의 환경과 조건과 상황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생각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말하고 기도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세 가지 태도와 자세만 있어도 여러분의 삶에는 기적의 역사는 시작될 것입니다.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