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2:21~34>
요즘 국회의원들의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째 뉴스로 올라오는 소식들 보면 국정감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막말, 고성 심지어 욕설에 관한 모습들이 자주 전파를 타고 있습니다.
한 정당에서는 비꼬고 조롱하고 약을 바싹 올리니깐 상대 정당에서는 ‘야, 너 뭐라고 했어?’라고 막말을 하기도 하고, ‘위원장 자격이 없어요’라고 하니깐 그 말에 격분한 위원장은 ‘웃기고 앉았네 정말. ××같은 게…’라는 욕설로 되받아 쳤습니다. 결국 욕설을 한 분은 그 자리에서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국감장에서 국회의원들 간에 수준 낮은 모습으로 다투는 모습을 보이니, 어떤 위원회의 위원장은 그 의원들의 싸움을 말리면서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원을 존중하지 않으면 누가 우리를 존중하겠습니까?”라는 말을 했는데, 적절하고 옳은 말이라 생각됩니다.
잠언 15:18절에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그래서 분을 쉽게 내는 사람 주변엔 항상 다툼이 있는 것입니다. 분을 쉽게 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게 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때문에 늘 화가 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주변이 늘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쉽게 화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감정에 치우쳤을 때는 반드시 많이 실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정에 충실해 버럭 화를 내고, 성질대로 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왜 그랬을까…’할만한 후회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단강 동편 땅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또 다른 제단을 쌓은 일로 인해 가나안 땅의 아홉 개 반 지파는 분노했고, 동편 두 개 반 지파와 전쟁을 하려 했었습니다(12절).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전쟁 이전에 그들은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중심으로 각 지파의 대표 한 사람씩을 뽑아 요단 동편 지파에 파견해 왜 그들이 다른 제단을 쌓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들의 감정대로라고 한다면 어쩌면 전쟁이 터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정복전쟁 후 바로 둘로 분열될 위기에 있었습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그 일로 인해 그들의 관계는 깨어질 위기였던 것입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 전에 그들이 급히 조사단을 꾸려 어찌하든지 그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게 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감정이 좋지 않으면 그 불편하고 힘든 그 관계가 싫어서 그냥 그 관계를 끊어버리려고 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빨리 그 관계를 끊어버리고 그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며 살고 싶은 겁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 그렇게 쉽게 끊어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그 극단적인 결정을 피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 사람을 만나서 얘기도 해보고, 이해하려고 애도 써보고, 상대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설득도 해 봅니다. 또 오해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 서로의 감정을 헤아리며 깊이 이야기도 해 봅니다. 분명 나의 감정은 상처를 입었고, 지금 그 일로 인해 너무 힘들고 어렵지만 내가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은 겁니다. 지금의 나의 감정보다 사랑이 더 앞서고, 사랑이 더 크면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은 아홉 개 반 지파가 요단 동편의 두 개 반 지파를 ‘적(敵)’이나 경쟁자로 생각했다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켜 그 땅을 차지하고 약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요, 동족이었기 때문에 조사단을 먼저 파견했던 것입니다.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에게 제단을 쌓고, 다른 제사를 올리려고 한 것이 결코 아니며, 비록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받아 살고 있지만 자신들도 이스라엘 민족이요, 대대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임을 잊지 말아달라는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22~24, 28, 29절).
이에 31절을 보시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받은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를 통해 제단을 쌓은 이유를 들은 비느하스는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며, 서편의 아홉 개 반 지파는 그들과 함께 한 언약 공동체임을 선포하게 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늘 마음에 새기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예수 가족이다’라는 것입니다. 내 기분과 감정에 따라 어떤 사람들을 정죄하거나, 그 사람과 분리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감정이 상할 때가 있지만 더 이해하려고 하고, 한 번 더 인내하고,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나의 형제와 자매가 실수하고 내 마음을 상하게 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연을 끊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관계를 회복하려는데 집중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감정에 충실하게 됩니다. ‘내가 기분이 나쁘고, 지금 감정이 상했으니깐 저 사람하고는 이제 끝이다’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감정보다 사랑이 앞서게 되면 그런 나의 감정을 누르고, 사랑으로 품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에는 이런 모습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감정은 실수가 많습니다. 감정보다 사랑이 앞서게 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진노케 한 그 감정대로라면 우리는 심판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진노의 감정보다 예수의 사랑이 더 컸기에 우리가 용서 받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