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2:5~9>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과 같은 작품을 쓴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년) 에 관한 유명한 예화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셰익스피어가 한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식당에 들어왔으니, 식당에 들어서는 모든 사람들이 셰익스피어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 때 식당 현관을 쓸고 있던 청년이 빗자루를 내던지며 “에이, 나는 이게 뭐야” 하는 겁니다. 셰익스피어는 그 청년을 불러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선생님, 저도 선생님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저는 고작 바닥이나 쓸어야 한다는 것이 한심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더라는 겁니다.
셰익스피어는 그 청년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펜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지만 자네는 지금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의 한 부분을 아름답게 청소하고 있잖은가? 결국 우리는 같은 일을 하고 있다네”라고 말하더랍니다.
종교개혁자 ✓ ‘존 칼빈(Jean Calvin, 1509~1564년)’의 <직업 소명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 두 가지 강조점이 있는데, 첫째는 ‘청지기로서의 직업관’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업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라는 겁니다. 둘째는 ‘소명으로서의 직업관’입니다. 그 직업을 맡겨주실 때 거기에 하나님의 소명(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천 청년들이 순수하다 보니깐 ‘직장일은 세상일이고, 교회봉사는 하나님일이다’라는 이분법적으로 사고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세상일에 치이다가 ‘신학교나 가야겠다. 선교나 가야겠다’ 해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종종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셰익스피어나, 칼빈의 경우처럼 좀 더 신앙적으로 균형 잡힌 직업관을 갖고 있어야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는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입니다. 그는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의 왕인 아닥사스다를 섬기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가 신앙생활과 직장생활을 어떻게 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직속상관은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유다인들은 주변 민족들로부터 환난과 능욕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이후 느헤미야는 하루라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4개월이 넘는 금식과 기도가 계속 이어졌고, 그 사이 느헤미야는 많이 수척해졌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런 느헤미야의 그런 안색을 본 아닥사스다 왕이 그 이유를 묻게 되었고, 느헤미야는 왕에게 도움을 요청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5절입니다.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느헤미야가 왕에게 요청하는 장면을 보면 그는 왕 앞에 조금의 무례함이나 거만함도 없습니다.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이런 게 우리의 직장생활 속에서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직장상사에게 이런 태도를 취하면(아부가 아님) 어떤 직장상사가 그에 대해서 좋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때로는 불의한 상사도 있을 겁니다. 아마 대부분의 직장상사는 부하직원들에게 그렇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직장상사가 어떻든지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똑같이 반응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골로새서 3:22~23절 말씀에서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우리의 직장과 직업이 어쩌다 보니 내가 그 일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직장과 그 직업에 소명을 주셨습니다. 성실과 정직으로 일해야 하고, 언제나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1, 23절 말씀에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간혹 교회에서는 1등 성도, 1등 집사님인데 세상에서, 직장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일이 악하고 가치 없는 일이고,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절대 거기에 열심을 낼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는 교회생활만 열심을 내게 되어 있는 겁니다.
우리가 주일날 모여서 열심히 예배했다면, 세상에 나가서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고, 직장 속에 있는 하나님의 소명을 이뤄가며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야 거기에서도 인정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일이든, 세상일이든 모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쩌면 남들보다 잠도 덜 자고,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지켜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무게를 달아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작은 일(작게 보이는 일, 가치 없어 보이는 그 일에도)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것도 맡기시는 것이 성경의 축복 원리인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보기에 충성스러운 신하였습니다. 그렇게 충성을 하니 느헤미야가 무엇을 요청하든 그것을 들어줄 마음이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가 어떤 것들을 요청하게 됩니까?
-(5절) 유다 땅에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7절) 강 서쪽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 유다까지 안전하게 통과하게 하소서
-(8절)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려 성전과 성곽과 내가 거할 집을 위해 쓸 나무를 제공하게 하소서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재건 허락과 유다까지의 여정 속에 안전 그리고 건축자재까지 요청을 한 겁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본인이 왕을 떠나서 예루살렘에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요청은 일개 왕의 신하였던 느헤미야로서는 과한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도 2절 하반절에서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라고 되어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도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9절에 보시면 “(아닥사스다 왕이)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느헤미야)와 함께 하시기로…” 라고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섬기던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가 구한 그 모든 것들을 다 허락해 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느헤미야가 유다까지 갈 때 호위하고, 도울 ‘군대장관’과 ‘마병’까지 추가로 보낸 겁니다.
아닥사스다 왕이 일개 술 따르는 관원이며, 유다족속 출신의 신하 느헤미야를 어느 정도까지 배려했는지를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뿐 아니라,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를 유다에 보낼 때 이런 질문을 합니다. 6절입니다.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은 느헤미야에게 “그 일이 얼마나 걸리겠느냐? 언제 돌아올 예정이냐? (나는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좋겠다, 나에게는 네가 꼭 필요하다, 아쉽지만 어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거라)” 이런 말입니다.
아닥사스다에게 느헤미야는 꼭 필요한 인물이었던 겁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이런 인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에서도 이런 인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어떻게 일하고, 살아갔기에 제국의 황제가 이렇게 일개 신하 한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겠습니까?
교회와 직장, 신앙과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살아가지 말고, 비록 이 땅이 부패하고 죄가 가득하지만 우린 이 땅에서 나의 직업 속에 주신 소명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우리 각자의 환경(직장, 학교, 가정, 교민사회…) 속에 주신 하나님의 소명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느헤미야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늘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직장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삶 속에서도, 인격 속에서도, 성품에서도, 말 속에서도, 표정에서도…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의 편지였고, 주님의 향기였습니다.
그렇게 살아갔던 느헤미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8절에서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시므로 왕이 허락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처럼 일하고, 느헤미야처럼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그 사람을 도우실 겁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