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10~23>
얼마 전 필리핀에서 제일 큰 은행인 『BDO 은행』의 한국인 직원들이 교회에 방문 하겠다고 해서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계신 성도님들의 은행 거래를 돕기 위해 그 분들이 오셨고, 저도 궁금했던 몇 가지를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세부에 처음 왔던 6년 반 전에 비해 우리교회가 있는 상가 주변의 땅 값이 4배에서 7배 이상이 뛰었고, 건물 임대료도 미친 듯이 오르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기도하고 고민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점점 오르는 임대료는 시간이 갈수록 교회에 분명 부담이 될 것이고, 지금의 세부의 땅값 상승률로 보자면 이후에 교회가 성전 부지를 구매한다든가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질 거 같아서 은행 관계자들에게 혹시나 교회 법인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학교와 교회는 대출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만약 대출금을 못 값을 경우 은행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내쫓거나, 교회 땅을 압류해야 하는데 국교가 카톨릭인 필리핀의 정서상 그게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대출 자체가 안 된다는 겁니다.
한국 교회의 상황과 다른 이곳에서의 난관 때문에, 한 편으로는 아쉬웠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교회가 땅을 살 수 있는 재정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은행 대출과 같은 방법도 막혔으니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고 오직 믿음의 방법, 기도의 방법,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된 것입니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인생의 3중고를 이겨낸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1880~1968 )’가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는 말을 했었습니다.
여러분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때, 누군가 나를 도와 줄 사람을 찾거나, 그런 사람이 생각나면 은근히 그에게 기대하거나 그를 바라보는 경우가 있을 겁니다. 그러다 그 기대했던 길이 막히면 그 닫힌 문만 바라보며 낙심하고 앉아 있는 겁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은 다른 문을 준비해 두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헬렌 켈러는 그녀의 인생 속에서 그것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당시에 무슨 선교사후원 시스템과 같은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재정이 떨어지면 천막 만드는 일(Tent Maker)을 하며, 생활비와 사역비를 충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장 이상적인 선교사역이라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사역을 하고 있지만 매일 새벽설교를 준비하는데 에만도 여러 시간이 소비되고, 요즘은 오전에 3시간 기도를 해야 하고, 낮에 교회 행정적인 일 몇 가지하고, 한두 곳 심방 다니면 하루가 다 갑니다. 그런데도 잠을 줄여가면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처럼 저질 체력을 가진 사람이 여기에 돈 버는 일까지 하면서 사역을 한다면 그것은 사역의 효율에 있어 대단히 비효율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절부터 16절을 보시면,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사역을 위해 누구도 도울 생각을 하지 않던 때에, 재정을 모으고, 선교비를 정기적으로 대주었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18절에 보면 “이것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선교비가 오면 사역에만 매진했고, 선교비가 떨어지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빌립보교회의 후원은 큰 감사 제목이었습니다.
민수기 18장에서 성막 일을 섬겼던 레위인과 제사장에 관한 규례가 나오는데, 백성들이 드린 십일조를 통해 기업을 받지 못했던 레위인들이 그것으로 생활을 했었고, 레위인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는 제사장들을 위한 생활비였습니다. 이것을 범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민18:24~31). 고린도전서 9장에서도 ‘성전의 일을 하는 자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복음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전9:8~14)’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4장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고,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11,12절). 때문에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그것이 바울 사도를 극단으로 몰고 가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은 가능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재정의 출처는 어떤 부자나, 어떤 큰 교회나, 어떤 단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 역시도 세부에 한인교회 개척에 대한 비전과 미션을 갖고 왔을 때, 막막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사님들처럼 여러 교회와 단체와 개인들에게 선교비 후원에 대한 것을 요청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한인교회라고 하면 일단 선교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래 사람에게 손 벌리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자.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자’ 이런 마음으로 일찌감치 마음을 정리하고 개척 사역에 매진했던 겁니다.
여러분, 재정적 어려움이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도와 줄 사람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그것은 믿음의 사람의 태도는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재정의 출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게 모든 것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간증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