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4:10~14>
우리가 필리핀에서 살다 보니깐 우리나라 뉴스에 대해 정보가 좀 느린 편인데, 지금 우리나라인 남한과 북한은 <남북전쟁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러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8월4일 DMZ(비무장지대) 남한구역 수색을 나갔던 우리 병사 두 사람이 북한이 설치한 북한제 <목함지뢰>를 밟아 한 병사는 두 다리를, 한 병사는 한쪽 다리를 잃었습니다. 수색을 위해 철책문을 열고 나가는데, 그 바로 문 앞에 설치해 놓았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 군은 11년간 중단해온 <대북방송>을 재개했습니다. 방송의 내용은 북한의 체제를 흔들만한 심리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들은 거짓말이 아니라 모두 사실 그대로를 북한 군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김정은 체제의 부당함과 남한의 발전상 등을 하루 종일 방송하는 겁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사실이니깐, 그 방송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어제(8월20일) 오후 북한은 <14.5mm 고사포> 와 <76mm 직사포> 몇 발을 발포하면서 ‘48시간 내에 확성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군사적 대응이 있을 것이다’고 우리 군을 협박했습니다.
이에 우리 군은 을 발포하며 대응 사격으로 응수했고, (목함지뢰 사건의 책임자를 처벌하고, 사과하지 않는 한…) 대북방송은 중단하지 않을 것을 북한측에 전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48시간이라는 시간은 지금 흐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우리 조국의 안전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이 이렇게 전쟁까지 불사하면서 우리 군의 대북방송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냐면, 방송에서 말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사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우리 군의 심리전에 완전히 흔들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 군에서 확성기를 통해 방송하는 내용들이 얼토당토 않다면 북한은 그렇게 반응할 필요도 없고, 고사포 직사포 이런 거 막 쏴대면서 확성기 철거하라고 우리 군을 협박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북한은 벌써 심리적인 부분에서 밀리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마음이 있습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누가 나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든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나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연약할 수도 있고,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약하지만, 강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그 사실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심리적)인 강자’를 넘어 ‘믿음의 강자’가 된다면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유다인들과 느헤미야의 대적인 산발랏과 도비야, 그리고 아라비아 사람들, 암몬 사람들, 아스돗 사람들은 모두 유다를 중심으로 북쪽, 동쪽, 남쪽, 서쪽에 위치해 있었던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느헤미야와 유다백성들의 성벽재건이 진행될수록 더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군사적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소문이 그 주변으로 점점 퍼져나갔습니다.
그 소식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 사이에도 점점 퍼져나갔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시면,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은 힘을 다해 짧은 시간에 예루살렘 성벽 전체를 연결하고, 성벽의 절반까지 쌓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 되었었고, 그들은 한 마음으로 성벽을 중건해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공사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느껴지는 분위기는 점점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깐 그들 사이에 이런 얘기들이 오고가는 겁니다.
정리해보면, ①공사 미완료 – 공사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②힘이 다 빠졌다 – 그들은 그동안 최선을 다 했던 겁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간 겁니다. ③완공 부정적 – 그런데 돌아가는 여러 가지 상황을 볼 때 성벽공사를 완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겁니다. 그들의 사기는 떨어질 때로 떨어져 있었던 겁니다. 좋은 작업 여건 속에서도 쉽지 않은 공사였는데, 그들이 더욱 그런 심리상태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공사를 방해하려고 하는 대적들 때문입니다. 11절 말씀에 보시면,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대적들은 힘을 규합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계략들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들의 작전은 ①기습작전 – 유다 사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시간에 기습해서, ② 살육하자 – 그들은 인정사정 보지 않고 예루살렘 백성들을 살육할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③공사중단 – 을 시키는 것이 그들의 최종적 목표였던 겁니다.
그런 분위기에 두려움을 더 가중시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외곽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적인 원수들의 나라들과 인접한 지역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이 와서 12절 말씀에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그 유다인들은 대적들의 지역과 인접한 곳에 거주하다 보니깐 누구보다 대적들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①전쟁임박소식 – 그들이 살고 있었던 각 지역에서 살펴보니깐, 북쪽에서는 사마리아 사람들, 동쪽에서는 암몬 사람들, 남쪽에서는 아라비아 사람들, 서쪽에서는 아스돗 사람들이 군사들을 징집하고 예루살렘을 향해 출전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② 열 번이나 경고 – 그러니 같은 동족으로서 애가 탈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 중 여러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달려와서 경고를 했습니다. ‘열 번이나 경고’했다는 것이 얼마나 긴박한 상황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③속히 대피하라 – 외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속히 대피해야 한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대적들의 총공세가 만만치 않을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그리고 정확한 소식통에 의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한국에 살고 있든 지금 필리핀에 살고 있든 결코 편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는 가족들 걱정에 잠을 못 이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한국에 사시는 우리 국민들의 심리적 불안은 말할 수도 없이 클 것입니다.
그러니 그 당시 유다사람들의 마음의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절망감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 분위기를 감지한 느헤미야가 어떻게 합니까?
13절 말씀에 보시면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
일단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중에 아직 공사 진행이 더딘 낮은 성벽 쪽에 무장을 한 군사들을 집중 배치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군사라기보다는 일반 백성이었을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일어날 전투에 대비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낮은 성벽 쪽에 대적들이 집중적으로 공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느헤미야 말씀을 나누면서, 우리의 연약함과 약점에 대해서 자주 말씀드리게 되는데, 사탄은 우리의 약점을 자주 공략할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성벽의 낮은 지역에 대적의 기습과 공격에 대비해 군사들을 집중 배치했던 것과 같이, 우리 역시 우리의 연약함을 파악하고, 기억하고 그 부분을 믿음과 성령과 말씀과 기도로 무장을 시켜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언제든 사탄이 기습적으로 공격할 때, 거기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했고 잘 나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탄에게 한 가지 약점을 제대로 잡히면 그 사람은 언젠가 거기에서 큰 실수를 하게 되고, 그리고 한 순간에 그가 평생을 걸쳐 이루어온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예를 우리는 너무나도 자주 듣고, 보고 있습니다.
대비하셔야 합니다. 그거 때문에 여러분이 평생을 걸쳐 애쓰고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것들을 잃는 것은 너무 아까운 겁니다. 외부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그 무엇이 아니라, 결국 우리 안에서 먼저 그 부분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으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과의 마음의 싸움에서 먼저 승리하셔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14절에서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리라”
귀족들과 백성의 리더들 그리고 백성들을 향해서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가 그 당시의 상황을 모르는 게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어떤 백성들보다 더 많은, 더 정확한 정보들을 들었을 것이고, 어제 나눈 말씀과 같이 그는 기도의 파수꾼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기도 중에 이미 감동으로 어떤 일들이 있을 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과 느헤미야의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지금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한 상황 가운데 있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예루살렘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고, 외곽에서 들려오는 소문들과 보고들이 너무나도 신뢰할 만한 그런 소식통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도 똑같이 듣고, 똑같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도 백성들과 똑같이 불안했을 겁니다. 그것은 현실을 보고 불안에 떠는 우리의 실제 모습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런 심리적 불안을 믿음으로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그거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었죠?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해도 내가 그렇지만 않으면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약해요. 상대는 너무나 강력하고 그에 비해 나는 너무나 약해요. 그런 상황들이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종종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믿음이 이거예요. ‘우리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시다’ 라는 겁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겁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라는 사실을 믿고 또 믿고 또 확신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믿음의 강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믿음의 강자가 되면 그에게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Impossible is nothing).
열왕기하 6장에 보시면 엘리사 선지자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나오는데, 엘리사가 아람의 군사전략과 작전을 미리 미리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주니깐 화가 난 아람 왕이 아람의 군대를 동원해 엘리사를 잡으러 갔습니다.
엘리사가 있던 성읍 아래 수많은 말과 병거와 군사들이 엘리사를 잡기 위해 포위한 것을 보게 된 엘리사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왕하6:15)” 합니다. 그런데 그 사환의 반응과 달리 엘리사는 너무나도 평온한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6,17)” 엘리사는 눈앞의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는 느헤미야와 같은 믿음의 강자였던 것입니다.
분명 우리 앞에는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강한 대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해 자주 자주 여러분들은 두려움과 심리적 불안함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들은 자주 여러분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어떤 일들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막막한 미래 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강자가 되십시오.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약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것들보다 강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로마서 8:35절과 37절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