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6~38>
– 대강절(4) –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2천 년 전에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오늘 본문 31절에서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천사는 마리아에게 그 아들의 이름을 미리 지어줬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모든 사람들이 꼭 믿어야만 하는 그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그 이름의 의미부터 우리가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יהוה)’라는 이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어의 여호와는 원래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된 문자입니다.
히브리어의 ‘요드, 헤, 와우, 헤’ 그래서 ‘Yahweh(야훼, 여호와)’라고 발음합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은 총 22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철자 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첫 번째 글자인 ‘요드(Yod)’는 ‘손(hand)’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상형문자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글자의 모양 자체가 손 모양하고 비슷합니다.
여호와의 두 번째, 네 번째 글자는 ‘헤(Heh)’는 ‘창문 또는 보다(Window, behold, look)’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창문을 통해 밖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세 번째 글자는 ‘와우(Vow)’는 ‘못(nail)’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철자가 못 모양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글자들을 종합하면, “그 손을 보아라, 그 못을 보아라(Behold the hand behold the nail)”이란 뜻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나는 분 없습니까? 우릴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의미하는 겁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안에 이미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원래 이름은 구약에서 등장하는데, 모세의 후계자였던 ‘여호수아’라는 이름의 축약형이 ‘예수아(Yehhsuah)’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이름이 신약시대에 헬라어로 ‘이에수스(Iesous)’라고 했고, 라틴어를 거쳐 오늘날 널리 알려진 영어의 ‘지저스(Jesus)’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인 ‘여호수아’는 ‘구원’이란 뜻의 ‘호세아’라는 이름 앞에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뜻하는 ‘여’가 붙어서 ‘여호수아’ 축약형으로 ‘예수아’ 그래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인 ‘예수아’는 ‘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그 야훼라는 이름 안에는 ‘그 손을 보라, 그 못을 보라’ 즉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 우리 자녀의 구원도, 우리 가정의 구원도, 이 세상의 구원도 오직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본문 31절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때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1. 나는 너를 선택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구원의 이 엄청난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 평범하고 비천한 한 여인을 선택하셔서 이루어 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보내시며, 다윗의 자손 중에 요셉이란 사람의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이르게 하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혼을 하고 1년간 순결을 입증하는 기간을 갖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은 법적으로는 부부였지만, 같이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는 처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28절 말씀을 보시면,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리아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호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배경이나, 출신이나, 능력이나, 어떤 공로와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어떤 역사들을 이루어가기 위해서 그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30절을 보시면,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너무나 갑작스런 천사의 방문에 마리아가 놀라자 천사는 다시 한 번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거듭 말합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는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예수님은 태어나 보니 금수저를 물고 있었던 거 같지는 않습니다. 태어나 보니 아버지는 목수였고, 아마도 일찍 돌아가신 듯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던 거 같습니다. 때문에 예수님도 성장기를 비천한 목수 요셉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이왕이면 좀 괜찮은 집안에, 넉넉하고 풍요로운 집의 귀한 아들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려서부터 좋은 선생님들 밑에서 글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은 비천한 목수 요셉과 마리아였습니다. 이사야서 53장의 메시야 예언을 봐도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인 예수님을 비천한 사람의 아들로 보내신 것입니다.
사랑 중에 조건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그 조건이 없어지면 그 사랑의 이유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조건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갖고 있던 의문 중에 하나는 “예수님께서 굳이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에 태어날 필요가 있었나? 그냥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깐 저 하늘 높은 곳에 ‘짠’ 하고 나타나셔서 인간들을 구원하시면 안 되셨나?”하는 거였습니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진 분이신데, 현재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인정받는 ‘팀 켈러(Timothy J. Keller, 1950~)’ 목사님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사랑했기에 자신을 이 세상 안에 오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도 대통령이 권위적이기 보다 서민적이고 소탈한 것을 좋아하는 거 같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어디 가서 칼국수를 먹었다 하면 그게 뉴스 꺼리가 되고, 어디 시장에 가서 뭘 하셨다 하면 그게 미담 꺼리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그 높으신 분이 서민들의 삶에 들어와 소통하고 공감하고 있다고 느끼는 겁니다.
정말 사랑하면 자꾸 그 사람 곁으로 가는 겁니다. 솔로몬의 아가서를 보면 솔로몬 왕이 시골의 포도밭에서 일하는 검게 그을린 시골여인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포도밭에 자꾸 방문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고, 왜 사람이 되셨냐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이 세상 안에 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팀 켈러 목사님은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야만 했던 삶을 살고, 우리가 죽어야 했던 죽음을 대신 겪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 놓인 벽을 허문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선택이었고, 하나님께서 비천한 우리를 선택하셨던 이유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수가 많아도, 우리가 부족해도, 우리가 연약해도, 심지어 우리가 죄가 많더라도… 주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예수님을 잉태하는 은혜를 주셨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2. 능력을 부어 주리라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만한 말을 합니다.
31절을 보시면,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천사 가브리엘은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인데,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32절 이하에 보면, 그 아들이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고, 다윗의 왕위에 앉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다스릴 것이라는 엄청난 말씀이었습니다.
34절 말씀을 보시면,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지금 당장 불가능한 것들만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첫째는 자신은 아직 처녀였고,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남편과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둘째는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이 말 안에는 자신처럼 비천한 여자가 어떻게 이 엄청난 역사의 한 가운데 성자의 모친이 될 수 있겠느냐?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입니다.
35절 말씀을 보시면,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천사가 두 가지를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첫째는 ‘성령이 네게 임하실 것이다’라는 겁니다. 사도행전 1장8절에 의하면 성령께서 임하실 때 놀라운 능력이 사도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의 힘과 능력으로는, 인간의 제한된 능력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성령께서 마리아에게 임하시면 처녀 마리아가 임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히어로 영화들을 보면 스파이더맨이든, 아이언맨이든 히어로의 슈트를 입으면 그 전에 보통 사람이었던 사람들이 강력한 슈퍼맨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해 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전도자로 쓰임 받았던 ‘드와이트 L.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 원래 구두수선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수많은 어린 영혼을 비롯해 미국와 영국에서 평신도로써 40년 동안 100만 명의 영혼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일생동안 우리가 100명을 전도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100만 명을 전도한다는 게 어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전도자 무디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신다”
지금 당장의 현실은 불가능한 것들 투성이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주님이 개입하시면, 우리의 삶에 주님이 오시면, 주님의 능력이 우리를 덮으시면 우리의 불가능한 것들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전도자 무디는 구두수선공이요, 평신도였고, 배움도 짧았지만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더니 하나님은 그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3. 그를 믿고 순종하라
천사 가브리엘은 의심하는 마리아에게 그의 친족 엘리사벳에 관한 얘기를 해 줍니다. 친척이었던 엘리사벳은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불임이었고, 그렇게 나이까지 많아 늙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생겼는데, 그 늙은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엘리사벳에게서 세례요한이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37절을 보시면,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For nothing is impossible with GOD)
NIV 영어 번역을 보면, ‘왜냐하면’이란 말로 시작합니다. 그 늙은 엘리사벳, 그 아이를 갖지 못한다고 하는 불임병을 갖고 있었던 엘리사벳, 다른 사람들도 다 안 된다고 하고, 자신마저 포기했던 그 엘리사벳이 임신할 수 있었던 이유 ‘왜냐하면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당시 마리아의 나이를 학자들은 15세 전후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렇게 일찍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이에 남자 손도 잡아본 적도 없는 소녀가 임신을 한다면 이게 가당한 일이겠습니까? 어느 날부터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수군거릴 수 있을 겁니다. 또 약혼한 예비 남편 요셉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하고, 부모님은 어떻게 납득시켜야 하겠습니까? 당시 유대 사회에서 결혼 전에 임신을 하는 것은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습니다. 어린 소녀 마리아는 행실이 나쁜 여자로 낙인찍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38절 말씀을 보시면,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아무리 말씀이 믿어지더라도 이런 것 저런 것 다 생각하다보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믿음은 가능한 것을 믿을 때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여러 가지 손해가 온다 하더라도, 때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있을지라도 믿음의 길을 선택할 때 그 믿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믿고 순종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참회록’으로 유명한 초대 교부 ‘성 어거스틴(St. Augustine, 354~430)’은 교회 역사에 큰 역할을 했던 신학자였습니다. 후에 마틴 루터와 장 칼뱅 같은 종교 개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믿는 것이며,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은 믿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의 실제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좋은 날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부에서 살지만, 여러분이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이 세부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시고, 믿음으로 바라보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중국의 선교사이기도 했던 ‘존 탈메이지(John Van Nest Talmage, 1819~1892)’ 목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요청하는 그 일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성공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요청하시고, 순종을 원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뭔가 역사를 이루실 계획을 갖고 계신 겁니다. 어떤 특별한 선물과 축복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순종이 어렵지만 그 때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역사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성자 예수님의 모친이 되는 영광스러운 복을 얻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 삶에 하나님께서 일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