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3~4>
요즘 느헤미야를 설교하다 보니 본문 내용 때문에 그런지 유난히 전쟁에 대한 예를 많이 들고 있는데, 바로 전 본문에서는 ‘트로이 목마’에 대한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기원전 12세기에 있었던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 이야기입니다. 엊그제는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며 5,5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잠시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와 나치즘’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렸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에는 북한의 남침으로 4~5백만명의 희생자가 있었던 ‘한국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전쟁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전쟁들은 모두 ‘새벽’에 시작되었다는 겁니다.
– 트로이 목마에서 숨어있던 그리스 군사들이 새벽에 나와 트로이의 성문을 열어 그리스 군대가 트로이를 기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히틀러가 일으킨 2차 세계 대전 역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 서쪽 국경을 침공하면서 시작된 겁니다.
– 한국전쟁 역시 1950년 6월 25일(주일) 새벽 4시에 북한의 기습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었습니다.
이 유명한 전쟁들이 왜 새벽에 시작되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무장을 해제하고 잠에 가장 깊이 골아 떨어져 있을 때가 새벽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공격하는 것이 승기를 잡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시간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준비해 왔고, 여러 가지 역경들과 어려움들을 극복하면서 결국 얻게 된 승리는 잘 지켜질 때 온전한 승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승리감에 도취되어 방심하고 있는 순간 그 승리는 빼앗길 수 있고, 그 동안 누리던 평안도 깨지는 겁니다.
승리를 지키는 두 번째 요소는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과 함께 52일간의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140여 년 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예루살렘 성벽의 재건을 단 52일 만에 기적적으로 완공한 것입니다.
큰 승리를 맛보고, 원하던 꿈을 이루고, ‘이제 다 됐다. 이제 끝났다’라고 하는 순간 무장을 해제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그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느헤미야는 성공 뒤에, 승리 뒤에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또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 하였노라”
느헤미야는 성문을 지키는 문지기들과 찬양하는 자들과 예루살렘 성 전체를 다스리는 두 사람을 세운 후에 성을 지키기 위한 원칙 몇 가지를 말해줍니다.
첫째는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성문을 열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NIV 영어번역에서는 ‘해가 뜨거워지기 전까지는(Until the sun is hot)’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오전10시에서 정오사이의 시간까지는 성문을 활짝 열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파수할 때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라’고 대적들에게 틈을 주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는 ‘지역 거주자 중심 파수대를 조직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이 각각 자기가 지키는 곳에서 파수하되 자기 집 맞은편을 지키게 하라’고 파수의 원칙을 하나 세워주고 있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벽 둘레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마치 자기의 집을 지키듯이 그 근처의 성벽을 파수하는 겁니다. 자기 가정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도 책임감을 갖고 지켰을 것입니다. 지도자로서 느헤미야가 지혜롭게 그 원칙을 세워준 것 같습니다.
느헤미야는 적어도 이 부분에 있어서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의 커다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오랫동안 수고하고 애쓰다 그 비전을 성취하고 나면, 그 이후에 풀어져서 그동안의 수고가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올해 우리나라 교육부에서 <대학생 MT 사전 신고제> 라는 것을 도입하려고 검토 중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매년 3월이면 대학들이 개강을 합니다. 개강과 동시에 3월과 4월에는 학과별로 또는 동아리 별로 MT 같은 것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MT에 가서 한 두건의 큰 사고가 일어나는 겁니다. 지난 4월에도 몇 명의 학생들이 MT로 갔었던 리조트에서 떨어져 죽었습니다.
12년 동안 한국의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자녀들은 철저하게 억압된 상태로 ‘대학, 대학, 대학만 가면…’ 이라는 꿈을 갖고 사는 겁니다. 부모님들도 ‘너 대학만 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좋다’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가면 공부보다 ‘캠퍼스의 낭만’을 더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캠퍼스 낭만이라는 게 건강한 게 아니고, 술 먹고 미팅하고 즐기고… 온갖 나쁜 문화들을 접하는 겁니다.
MT를 주최하는 학생들이 제일 먼저 챙기는 게 술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공부만 하던 고등학생들이 대학 MT에 가서 그 못 먹던 술에 만취해 건물에서 뛰어 내리기도 하고, 호수에 빠져 죽기도 하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니 교육부에서 안 되겠다 싶으니깐 이제 대학생들 MT갈 때 신고하고 가라고 <대학 MT 사전 신고제>라는 걸 도입하겠다는 겁니다. 한국에만 있는 기막힌 제도입니다.
대학을 위해 12년을 준비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갔으니 다 이루었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 순간 더 이상의 진보 없이 퇴보가 시작하는 겁니다. 그 순간부터 무너져 내리는 겁니다.
모세의 뒤를 이어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40년간 광야에서 가나안 땅만을 바라보면 살았습니다.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의 첫 번째 성인 ‘여리고성’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난공불락 철의 성인 여리고성을 점령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불가능할 것 같은 그 일을 믿음 하나로 점령(승리)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의 기쁨에 들떠 있었던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작은’이란 뜻을 가진 ‘아이성’ 전투를 얕봤다가 크게 패했습니다. 바로 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여리고 성을 점령했지만, 그 승리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아주 작은 성 앞에 무릎을 꿇은 겁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은 ‘성왕(聖王)’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그 만한 인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던 왕이었고, 주변에 있는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리했습니다. 다윗 앞에 패배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이 되어서 약 10년 동안 이스라엘 역사 속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최고의 왕이었습니다. 다윗의 나이 40세쯤에 나라는 든든했고, 아무 걱정도 없었습니다. 이제 다윗이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하고 충성스런 신하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에 밧세바 사건 하나 때문에 다윗은 추락합니다. 그 사건이 있었던 날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밧세바를 보게 되었고, 그것이 결국 다윗의 평생에 씻지 못할 실수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다윗 가문에 평생토록 칼이 떠나지 않게 되는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다윗이 10대 때 생명 걸고 골리앗 앞에 나아가 그를 쓰러뜨리고 두각을 나타내다가, 20대 때의 깊은 고난을 경험하고, 드디어 30세에 왕이 되어 10년 동안 이스라엘을 중동지역 최강의 나라로 일구어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전쟁에 나가서 지휘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나라는 막강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그 때가 가장 큰 위기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태복음26:40~41절을 통해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for one hour)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설교 서론에서 ‘트로이 목마, 2차 세계 대전, 한국전쟁’을 통해 잠시 말씀 드렸던 것처럼 깨어있지 않으면 방어를 할 수가 없는 겁니다. 깨어 있어야만 방어를 하고, 그래야 피해를 입지 않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깨어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한 시간(for one hour)’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적어도 한 시간 정도를 기도하며 깨어 있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러니깐 우리가 하루에 한 시간 정도를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그런 시간이 있을 때에만 우리에게 닥치는 시험의 위기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계를 늦추면 안 됩니다. 악한 사탄은 수시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 것입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유혹으로 여러분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 승리를 빼앗기면 안 되는 겁니다. 방심하는 순간 나를 넘어뜨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던 다윗이라는 사람도 방심하는 순간 한 순간에 넘어졌던 겁니다.
‘지금 이 정도면 됐다. 이젠 괜찮다. 이젠 걱정 없다…’ 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늘 불안해하고 염려 걱정하며 지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하는 겁니다.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위기가 오고, 어려움이 와도 그걸 넘어갈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그런 일들이 와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겁니다. 안 그러면 별것도 아닌 일에 시험 들고, 죄 짓고, 영적으로 다시 바닥을 치게 되는 겁니다.
느헤미야가 그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단 52일 만에 완공했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럼 느헤미야와 백성들 모두가 그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며 무장을 해제하고 방심하고 있는 그 순간 위기는 다시 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흔히들 ‘위기는 기회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을 다시 뒤집으면 ‘기회는 위기다’라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아무 걱정 없이 잘되는 거 같고, 기도할 것조차 없을 정도로 평안 하다면 그게 위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방심하고 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위기가 오는데, 무장을 해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기를 제대로 방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어야 방어도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승리를 지키기를 원하신다면, “경계를 늦추지 말라”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승리를 지켜라(2) : 경계를 늦추지 말라”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