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30~40>
전 세계는 지금 중국 우환 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발생한 사스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 때문에 그렇습니다. 중국정부의 폐쇄적 정책으로 인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우환 폐렴’이 알려진지 불과 한 달밖에 안 되었습니다.
2019년 12월 우환 시에는 시민들 사이에 유독 기침 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환시의 한 병원에서 일하던 34세의 리원량(李文亮, 1986~2020)이라는 의사가 12월 30일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서 처음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1월 2일 ‘괴담 유포자(유언비어)’라는 죄목으로 리원량을 체포하고, “위법 활동을 계속하면 법의 처벌을 받게 됩니다. 알겠습니까?”라는 ‘훈계서’에 지장을 찍게 하고 그를 풀어줍니다. 리원량은 풀려나서도 그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 환자들을 돌보다 그 역시 감염되어 얼마 전 안타깝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서는 전염병이 도는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해했습니다. 그리곤 1월9일에서야 중국 언론을 통해 비로소 코로나바이러스의 활동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1월 20일 중국 정부의 국무회의에서 전염병 대응 수준을 높인 다음에야 적극적으로 대비하기 시작했는데 때는 이미 늦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우환폐렴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1월 27일에 의심환자가 6천명에 육박했고, 어제 일자로 중국내 누적 확진자가 4만 2천 명에 사망자는 1천명을 넘어섰습니다. 재앙입니다. 이 통계는 무서울 정도로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 통계마저 중국정부가 축소은폐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중국 공산당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험성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고, 대비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서야 후회한들 그 후회는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는 뒤늦은 후회일 뿐인 것입니다.
변함없는 진리이지만 우리가 후회할 거 같으면 후회할 일을 하면 안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 중에도 당장 손에 잡히는 거 없고, 당장 눈에 보여 지는 어떤 것이 없어서 신앙적인 가치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과 생활은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서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뜻하신 바를 반드시 행할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은 이런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에서는 이스라엘의 족장들에게 주어지는 장자권과 영적인 축복권에 대한 신앙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팥죽 한 그릇에 동생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아 버렸었고, 가나안의 이방 헷 족속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축복의 계승자로서의 혈통적인 순수함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족장인 아버지 이삭의 축복만 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상적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또 자기 욕망에 따라 마음대로 살다가 마지막에는 천국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결과만이 중요할지 모르나 하나님의 나라와 질서는 그 과정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저울에 달아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폐부를 살펴보고 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서 야곱이 에서인줄 알고 그에게 모든 축복을 다 해주게 됩니다. 야곱이 나가고 쌍둥이 형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맛있게 요리해서 별미를 만들어 갖고 옵니다. 이삭은 “너는 누구냐?”하고 물으니, 에서가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32절)”라고 대답합니다.
33절을 보시면,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이삭은 뭔가 크게 틀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크게 떨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이삭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예정을 깨달았으며 에서를 축복하려 했던 자신의 실수로 인하여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34절을 보시면,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에서는 이삭의 말을 듣고 통곡하며 뒤늦은 후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그 일을 돌이켜 달라고, 자신에게도 축복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하나님의 영적 축복권은 다시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38절에서도 에서는 소리를 높여 울며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영적인 가치에 대해서 경홀히 여겼던 에서에게는 인생의 치열함과 광야와 같은 황량함만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이었습니다(39절, 40절).
영적인 것들은 당장 눈에 보여 지거나 확인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하지 않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마치 공기가 우리의 눈에 보여 지지는 않지만 그 공기가 없이는 우리가 1분도 제대로 살기 어려운 것과 같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가치를 경홀히 여긴다면 크게 후회할 날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과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영적인 축복들을 소홀히 여기고, 세상적인 일에만 바쁘다가 에서처럼 뒤늦은 후회 하지 맙시다.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립니다. 우리가 그 동안 소홀히 여기고, 그 가치를 귀히 여기지 않고 살았던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