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30:1~24>
제가 전도사 생활을 할 때, 저는 목사후보생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목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지냈습니다. 신학동기들과는 성경연구모임을 만들어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정기적으로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교육전도사로서 지역 교회를 섬기면서도 어떻게 해야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늘 고민이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 기독교 단체에서 개최하는 교회성장세미나 같은 것들도 많이 다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 세미나를 다녀오는 것은 목사후보생으로서 앞선 목회선배들의 노하우를 엿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세미나에 가면 성장하는 교회들의 여러 가지 목회방법들을 배우게 되는데, 정말 그렇게만 하면 교회가 다 성장할 거 같은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그런 방법들은 그 교회의 목회환경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고, 방법들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세미나에서 배워온 것을 해볼라치면 그 방법이 내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의 환경과는 또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왜 안 되지? 왜 그 교회처럼 안 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리고 제가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하다 보니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는 결론에 많이 이르기도 합니다. 교회 목회가 재정이 넉넉하면 잘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는 게 아니거든요. 교회 사역은 방법의 문제,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고, 성도들의 삶에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에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고, 그 하나님 앞에 기도도 하고, 그 분을 의지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성도들이 지금 당장 큰 자본이 없고, 대단한 능력이 없고, 어떤 좋은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러분들의 삶 속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난다면 여러분은 기적의 간증자들이 되고, 축복의 간증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돈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실력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실력이 있다면 ‘믿음의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 큰 산과 같은 문제를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의 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외삼촌이 있는 밧단 아람으로 피해갔다가 거기서 외삼촌의 둘째 딸 ‘라헬’을 사랑해서 그를 위해 7년간 외삼촌에게 무보수로 일하고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외삼촌이 야곱을 속여서 라헬의 언니인 레아와 먼저 결혼하게 되고, 어쩌다보니 부인이 둘이 되어 버린 복잡하게 꼬여버린 인생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자매지간이라도 언니인 레아와 동생인 라헬 사이에 남편을 차지하고,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야곱이 본래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어 했던 여자는 동생 라헬이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이 야곱을 속여서 그는 부인을 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언니인 레아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창세기 29장 31절에서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레아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녀의 태를 여셔서 야곱에게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등 네 명의 아들을 낳아 준 것입니다. 레아는 그것을 통해 남편 야곱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0장 1절을 보시면,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사랑받는 아내인 라헬은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인 야곱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는 장면인 것입니다.
2절에서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야곱은 인간적인 노력보다 하나님께서 태의 문을 여셔야만 임신할 수 있게 됨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거기에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30장 1절부터 24절은 라헬과 레아가 그녀들의 시녀들을 야곱에게 첩으로 주면서까지 아이 출생 경쟁을 하면서 남편에게 더 사랑 받기 원하는 그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다 보면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가 ‘하나님이’라는 표현인 것을 보게 됩니다.
6절에서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17절에서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18절에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20절에서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22절에서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22절에서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23절에서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레아와 라헬은 본장에서 아이를 출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과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에게 아기를 주시고, 그 억울함을 풀어주시고, 그 소원을 들어주시고, 선물을 주시고, 부끄러움을 씻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 우리의 어떤 목적을 이루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방법이 아니라 그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역사를 이루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불가능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