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11:1~2>
저는 어려서부터 자주 이사를 다녔습니다. 오늘 낮에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이사를 다녔나?’를 대충 헤아려 봤더니, 지금까지 약 스무 번 정도 이사를 다녔더라구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었고 살았었던 곳이 <의정부 광명교회>가 있는 ‘의정부’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제 인생의 10년 정도를 보냈었습니다.
제가 처음 그 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회는 기차 철로와 도로 사이에 있는 복잡한 거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한참 부흥하는 교회였는데 주차공간도 협소하고, 성도들이 앉을 좌석도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교회는 충만하고 은혜로웠지만 교회시설은 조립식 건물로 지어졌었고,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해서 목사님들 사무실로 쓰고 그나마 오래되어서 전체적으로 많이 낡아 있었습니다. 또 그 때까지만 해도 의정부라는 도시는 백화점도 하나 없는 발전이 더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해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만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근처에 있는 넓은 공터를 구입하고 새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처음 새 성전 부지에 가보니깐 여기 저기 쓰레기들이 쌓여있고, 동네 어르신들이 텃밭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또 오른편에는 ‘환경사업소’가 있었는데 의정부에 있는 모든 오물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람만 살짝 불면 악취가 있었습니다. 그런 요인들 때문에 그 옆에 있는 아파트들은 가치가 낮게 평가되어 있었습니다.
교회는 2년간의 준비와 기도 끝에 그 땅에 새 성전을 짓게 되었고, 많은 성도들도 교회가 좋아서 교회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오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교회 앞에 큰 L마트가 들어왔고, 환경사업소가 새롭게 정비를 해서 모든 악취도 사라졌습니다. 교회 앞으로는 큰 도로가 생겨났고, 교회 옆 중랑천에 시민공원이 새롭게 정비되고, 교회 앞으로 경전철 노선이 들어왔고, 교회를 중심으로 그 주변이 얼마나 살기 좋아졌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교회 옆 아파트는 엄청나게 올라서 일찍이 교회가 좋아서 근처로 이사 오셨던 분들은 제태크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지금 의정부에서 주요한 랜드 마크 같은 곳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 전에는 쓰레기가 버려지고 공터였던 곳이 지금은 의정부에 있는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랜드마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경계표’라는 뜻입니다.
또는 ‘탐험가들이나 여행자들이 원래 있던 장소로 되돌아오기 위한 특정한 지역을 표시해 둔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는 ‘어떤 지역을 대표할 만한 상징적인 건물 또는 조형물’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랜드 마크’는 예루살렘 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과거 남유다 왕국의 수도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 솔로몬성, 다윗성)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대하7:16).
그런데 140여 년 전 성전을 포함해서 예루살렘 성은 파괴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70년 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에서 귀환해 파괴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하지만, 성벽 재건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유다 지역 전역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를 통해 예루살렘 성벽은 기적적으로 복원 재건되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주민이 너무나도 적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성을 대적들로부터 방어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백성들이 그 성에 거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이주해서 산다는 것이 백성들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성벽 방어의 부담’입니다. 결국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그 성벽을 대적들로부터 방어해야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부담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삶의 터전 이전의 부담’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유다지역 곳곳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와서 살려면 지금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새롭게 개척하며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런 게 쉬운 일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결정한 사항은 1절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였고 그 남은 백성은 제비 뽑아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거주하게 하고 그 십분의 구는 다른 성읍에 거주하게 하였으니”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대전 바로 위에 세종시에 정부의 행정부처(9부 2처 2청 :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환경부, 교육부… 등)와 기관들을 이전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근무하셔야 할 분들이 서울 수도권에 살다가 충청남도로 가야한다고 하니깐 반발이 많았습니다. 일단 서울을 떠나는 것도 그렇고, 자녀 교육도 그렇고, 여러 가지 서울과 비교해 인프라가 낙후된 곳으로 가야하니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은 되었지만, 그곳에서 거주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일단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솔선수범해서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는 성경 속에 종종 등장하는 제비뽑기 방법으로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거주하게 했습니다. 나머지 백성들은 원래 거주하던 성읍으로 돌아가 거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거주하게 된 사람들은 총 3,044명 이었습니다 (유다지파 468명, 베냐민지파 928명, 제사장1,192명, 레위인284명 / 11:4~18절 참조).
그렇게 제비 뽑힌 사람들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원래 살던 자신의 성읍으로 가지 못해서 아쉬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오늘 본문 2절 말씀에 보시면
“예루살렘에 거주하기를 자원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백성들이 복을 빌었느니라”
예루살렘에 남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원하는 모든 자’였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들은 제비 뽑혀서 남게 되었지만, 그렇게 남게 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고, 예루살렘에 살게 된 것을 기쁨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게 된 백성들을 향해 다른 백성들은 복을 빌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예루살렘은 한 나라의 수도이기 때문에 중요할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의미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시편122:6~9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 어떤 은혜가 주어진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평안이 있고’ ‘형통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그냥 일반적인 도시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고 거기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122:9절에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예루살렘)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복을 받는 이유는 그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제 우리가 나눈 말씀 느헤미야 10:39절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결단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이제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은 이제 그들이 삶의 중심을 성전으로 두겠다는 의미입니다. 그 전에는 성전이 그들의 삶의 변두리에 있었다면, 이제는 그 성전을 내 삶의 중심, 내 인생의 중심으로 두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내 인생의 랜드마크로 두고 살겠다는 겁니다.
이번 주가 40일 기도의 마지막 주간인데, 몇몇 성도님께서 ‘너무 아쉽다. 안 끝났으면 좋겠다. 더 하면 좋겠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오시면서 너무 좋으신 겁니다. 교회가 너무 좋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으신 겁니다. 그래서 ‘이제 40일 기도가 끝나면 어떻게 하지?’하며 걱정하기까지 하시는 겁니다.
어떤 분은 교회 오고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깐, 아예 집을 교회 근처로 이사 오시려고 40일 기도하시면서 집을 알아보고 계세요. 집을 이사하기에 여러 가지 걸리는 문제가 많은데도,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싶으신 겁니다.
40일 기도 중에 이 가정의 큰 변화는 ‘성전 중심 생활’로 바뀐 겁니다. 교회라는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 중심, 하나님 중심, 믿음생활 중심으로 삶의 중심이 바뀐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교회에서 집이 멀어지면 신앙생활도 열심을 낼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기껏해야 일주일에 주일예배 한 번 외에는 더 이상 참여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믿음이 식게 되고, 하나님 중심, 신앙 중심의 삶을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와 집은 가까울수록 좋은 겁니다.
한국에서 어떤 교인들은 교회에 자주 오라고 할 까봐 교회에서 멀리 이사를 가버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절대 복이 아닙니다.
최근에 제게 ‘목사님, 뭐든 시키실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제가 해 보겠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시는 성도님들이 계신데, 아직 한 번도 안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목회자로서는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교회 초창기에 한 젊은 부부는 새벽기도부터 아주 열심히 나왔습니다. 지금은 일 때문에 한국에 귀국하셨지만, 그 남자 성도님이 어느 날 제게 와서 ‘목사님, 저를 김 직원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그러시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삶의 터전이 예루살렘 성 밖의 여러 성읍에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 안에 거해야 하는 것은 분명 여러 가지 부담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게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라 결국 그들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84:4절 말씀에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멸시했고, 그들은 성전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많은 복을 누리면서 살았었지만,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 욕심대로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노예가 되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제 깨달은 겁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머물게 된 백성들이 분명 여러 가지 부담스러운 조건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그 성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랜드마크는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 신앙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과 교회의 거리도 되도록 가까운 곳에 있어야 자주 교회에 가서 기도생활도 할 수 있고, 교회의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도 있고, 봉사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자녀들도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는 겁니다.
이제 여러분 인생에 여러 가지 많은 상황들과 환경들 그리고 조건들이 있겠지만, 언제나 내 인생의 랜드마크는 ‘하나님, 교회, 말씀,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