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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다가 망한다”

<출애굽기 17장 1~7> 

– 신(新)가나안 세대(8) –

 

[Audio 말씀]

 

[영상 말씀]

 

 

최근 수년 사이에 ‘메이드 인 재팬의 몰락’이란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1970년대부터 약 30~40년간 자동차를 비롯해 가전산업은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었고, 1979년 하버드대학 에즈라 보겔 교수는 ‘Japan as number one(세계 제일 일본)’이란 책을 통해 일본경제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하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가전제품과 반도체 점유율의 약 70~80%가 메이드 인 재팬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동차와 카메라 제품들을 제외하고 가전, 컴퓨터, 반도체 등은 모두 한국과 중국 등의 후발주자들에게 추월당하게 됩니다. 물론 세계10위권의 경제규모인 우리나라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을 따라가기엔 아직도 멀었지만, 경제용어 중에 PPP 기준 1인당 GDP라는 게 있는데, ‘국제적으로 개인의 실질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풍요로움의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17년부터 우리 국민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일본 나고야대학의 하라다 유타카 교수가 얼마 전 “왜 일본은 한국보다 가난해졌는가?”라는 기고문을 인터넷 잡지에 게재해 일본열도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세계최강이었던 일본제조업의 몰락은 ‘번영했던 과거에 젖어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주저하다가 망해가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습니다. 한 때 세계를 휩쓸었던 일본의 가전, 반도체, 컴퓨터 심지어 카메라 기업들은 다른 나라로 넘어간 것이 많고, 지금도 이런 몰락의 흐름은 계속 이어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들 일본의 이런 상황을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시대의 변화에 주저하다가 까먹은 시간입니다. ‘주저하다’는 말은 ‘선뜻 결정하여 행동하지 못하고 망설이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입니다.

신앙생활도 ‘교회를 다닐까 말까?, 예수를 믿을까 말까?, 열심히 봉사할까 말까?…’ 그렇게 주저하다가 귀한 인생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부에 오시는 분들도 여러 가지 목적들이 있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1~2년 시간 낭비, 물질 낭비, 감정 낭비…만 하다가 제대로 정착도 못 해 보고, 그냥 철수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세부 오시자마자 교회 등록도 하시고, 적극적이고 열심히 적응해 나가시는 분들은 믿음도 잘 성장하고, 정착도 잘 해 나가시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님을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난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시간들을 낭비하지 말고, 인생의 방황도 끝내고, 신앙의 방황도 끝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신(新)가나안 세대 여덟 번째 시간에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들을 통해 함께 은혜 받길 바랍니다.

 

1. 간증의 기회를 잡으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땅을 향한 광야 여정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들이 ‘르비딤’이란 곳에 장막을 쳤는데 그곳에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거기서 백성이 목이 말라 물을 찾으매 그들이 모세에게 대하여 원망하여 이르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선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어려운 일들이 생길 때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믿음으로 견뎌나가면서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전진해 나갔다면, 그들이 가나안 땅까지 가는 시간은 훨씬 더 단축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든 일만 생기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 탓하는 게 ‘무조건 반사’와 같습니다. 무조건 반사는 뜨거운 물체를 만졌을 때 자동으로 손을 떼는 반응과 같은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불평’이 무조건 반사인 겁니다.

그들은 홍해 앞에서 ‘이제 다 죽게 되었다’고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놨었고, 홍해를 건너와 ‘마라’라는 지역에서는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다’고 불평했고, 출애굽한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는 ‘먹을 게 없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과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황이 어렵지 않았다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그런 상황에서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불평과 원망했다는 거 외에 다른 어떤 반응도 나오지 않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감사하거나, 기도하거나, 또 다른 방법을 찾거나… 선택의 폭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려움 속에서 다르게 반응할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불평하거나, 감사하거나 그 둘 중에 하나를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에서는 언제나 불평과 원망만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캔자스시티에서 200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윌 보웬(Will Bowen)이라는 목사님께서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불평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교인들과 함께 『불평 없는 세상(A Complain Free World)』 이라는 캠페인을 했는데, 이것이 미국 전역에 엄청난 화제가 되어 <오프라 윈프리>쇼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이 캠페인을 소개하기도 하고,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 80개국에서 불평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캠페인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이 쓰신 『불평 없이 살아보기』라는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 자신, 직업, 가족, 건강, 재정상태, 교회 등에 대해 당신이 싫어하는 부분들을 말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들을 점점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불평과 원망을 하면 할수록 우리 주변엔 내가 싫어하는 것들이 점점 더 가득해져 갈 것이라는 겁니다. 이어서

 

“명심하라. 좋아함은 좋아함을 부른다. 당신이 자기 자신에 대해, 타인에 대해, 당신 인생의 전반적 상황에 대해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당신의 삶에 더 많은 즐거움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감사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감사거리들과 기쁨과 행복이 가득해 져 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한국의 극동방송에서 우리교회의 [리마인드 3분 메시지]가 방송되었었는데, 우리교회 유튜브 채널을 찾아오셔서 새롭게 구독신청하신 한 성도님께서 그 설교영상 아래에 이런 댓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아침 극동방송을 통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짧은 3분 메세지였지만 힘들었던 저의 마음에 가시 같은 찔림으로 저의 잘못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불평, 불만으로 제 영혼이, 제 가정이, 교회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그래서 가족들에게 목사님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면서 저의 영혼이 회복이 되고 있음을 느낀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말씀이 마음의 찔림으로 올 때, 얼마나 마음이 불편합니까? 하지만 이 성도님께서는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자신의 불평과 불만으로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던 것을 회개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서 오히려 눌려 있었던 영혼의 회복과 자유함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불평 없이 살아보기』의 윌 보웬(Will Bowen)목사님이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생각을 만들고, 우리의 생각은 우리의 삶을 만든다.”

 

여러분의 삶을 불평과 불만이 가득할 만한 인생으로 만들고 싶습니까? 그러면 계속 그렇게 살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기쁨과 행복이 가득한 인생으로 만들기 원하신다면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이 여러분의 인생이 될 것입니다.

홍해에서, 마라의 쓴 물 앞에서, 먹을 것이 없었던 신 광야에서 그리고 마실 물이 없었던 오늘 본문의 르비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불평과 원망을 쏟아 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그 장소들은 새로운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게 된 간증의 장소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그 장소들이 불평과 원망을 했던 부끄러운 장소였겠지만, 모세는 그런 위기와 시련과 고난을 간증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위기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는 영광스러운 시간이 된 것입니다.

왜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인생에는 예기치 않았던 일들과 시련과 고난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일들이 왔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 위기와 시련을 간증의 기회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어려움이 왔다면, 그것은 나에게 새로운 간증거리가 생길 기회가 온 것입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거나… 어떤 반응을 하든 그것은 우리의 미래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고난과 위기를 도리어 간증거리로 만드시길 축복합니다.

 

2. 시험하지 말고 믿으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2절 말씀을 보시면,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이르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그런데 모세는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모세는 그들의 원망과 불평은 결국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7절에서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라는 것을 테스트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일으키신 그 엄청난 기적들을 봐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신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들은 여전히 의심하고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꾸 불안하고 두렵기만 하니깐 힘든 일들 앞에만 서면 불평과 원망만 나오는 겁니다.

남녀 간에도 분명 사랑한다고 해서 연애를 하는데, 그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늘 다투고 싸울 일들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가?’라는 의심이 있으면, 늘 불안한 관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확신이 있으면 상대방의 모든 게 이해가고 싸울 일도 없는 것입니다.

세부에 살려고 처음 오시는 성도님들도 이 땅에 대한 확신도 없고, 정착에 대한 확신도 없을 때는 여기에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겁니다. 그 성도님을 보면, 이 도시에서의 생활이 그냥 늘 위태위태하고 불안 불안한 겁니다. 마치 마태복음의 씨의 비유와 같이 ‘돌밭에 떨어진 씨’와 같은 겁니다. 돌밭은 흙이 얕아서 떨어진 씨가 뿌리를 깊게 내릴 수가 없어, 햇볕이 조금만 강하게 내려 쬐면 다 시들어 버리는 겁니다.

어떤 관계든, 어떤 일이든… 확신이 없으면, 믿음이 없으면, 믿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가 왜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시험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려운 일들 앞에서 원망과 불평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어떻게 반응을 해 왔습니까?

 

4절 보시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만 바라보고 있으니, 가장 큰 부담을 갖고 있는 사람도 모세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에겐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애굽의 군대가 뒤쫓아 왔던 홍해 앞에서도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의 쓴 물로 인해 불평하고 원망할 때에도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고, 그들이 먹을 것이 다 떨어졌다고 불평할 때도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시면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모세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홍해를 가르던 지팡이를 들고,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을 치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 나올 것이라는 겁니다.

모세가 위기의 때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때마다 항상 방법을 주셨습니다.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위기가 기회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 고난이 간증의 기회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깐 모세는 ‘시험하지 말고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의심하고 믿지 않으면 기도도 할 수 없는 겁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너무 어렵고 힘들지라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고, 방법을 주시고, 기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들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은 환경과 상황을 믿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부에 처음 교회를 개척했을 때부터 늘 해오던 기도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 광야와 같은 척박한 땅에서 교회가 모델이 되게 해 주옵소서.’ 라는 거였습니다. 세부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희망이 없고, 돈도 없고, 의지할 사람 아무도 없을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하시고, 그 증거들이 나타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성도들이 하나둘 철수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더니 교회는 썰렁하게 비었습니다. 지역봉쇄가 강화되었을 때, 몇 개월은 아예 주일날 교회조차도 갈 수가 없었고, 우리는 온라인예배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예배해야 했습니다. 한국으로 철수한 분들은 원래 한국에서 출석하던 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한국에 가시면 굳이 온라인에 접속해서 우리교회 예배를 드릴 이유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세부 이민교회로서의 여러 가지 열악한 조건에서 소수의 성도들과 함께 교회 사역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리는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된 환경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교회에 은혜를 베푸셔서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가 엄두조차도 못 내던 온라인 플랫폼(Online Platform)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예전에 한국으로 귀국한 성도들과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기게 되고, 서로의 기억과 생활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교회로서 우리가 한 공동체로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과 필리핀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이 매일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120중보기도부대와 예수동행일기를 통해 서로의 믿음을 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극동방송을 통해 우리교회의 3분 메시지가 지난 7주 동안 [세부광명교회] 이름으로 전국에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간에 극동방송 지사장님과 연락을 주고받는데, 제가 그 분을 모르는데 그 분께서 방송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세부광명교회를 한국에 알리라는 마음의 감동을 주셨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2년 전에, 3년 전에, 4년 전에 여기서 어학연수 하시거나, 거주하시던 성도들이 라디오 방송을 듣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떠났던 분들과 다시 보이지 않은 끈으로 연결이 된 겁니다.

분명 지금 우리는 큰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교회가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하신다는 그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방법을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믿지 못하고 의심하여 주저하다 광야에서 망한 출애굽 1세대의 길을 따르지 말고,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믿음으로 기도하며,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축복의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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