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4:31>
– 믿음의 기업(18) –
제가 참 좋아하는 성경의 인물들이 있는데, 저 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하는 분들이라면 아마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이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까지 자식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약 25년간 아들이 없다가 아브라함 나이 100세 때 이삭이 출생한 겁니다.
요셉 같은 경우도 17세 때 예시적 꿈을 꿨는데, 위대한 지도자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시기를 사서 애굽에 팔려 그곳에서 노예로 생활하기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서 보낸 시간이 13년이란 세월이 있었습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젊은 날을 감옥에서 썩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13년의 기다림의 시간 뒤에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되어 애굽 뿐 만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더 나아가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통로가 되었던 겁니다.
다윗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골리앗을 때려 눕혀 민족을 위기에서 건졌습니다. 첫 등장부터가 다윗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사위까지 되었지만, 시련도 빨리 찾아왔습니다.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질투심에 가득찬 사울왕의 칼과 창을 피해 도망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과 기다림의 시간 끝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출애굽기를 통해 계속 살펴보고 있는 모세는 40세까지는 왕궁에서 큰 걱정 없이 지냈습니다. 하지만, 40세부터 80세까지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남은 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거기에서 자신의 생이 마쳐질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80세부터 120세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고, 그들을 이끌어 가나안 땅 앞에까지 인도하는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던 겁니다.
아브라함의 25년, 요셉의 13년, 다윗의 10여년, 모세의 40년… 우리는 이미 과거에 있었던 기다림의 시간들을 보고 있는 겁니다. 그들은 그 기다림의 시간 뒤에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쓰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 입장이 되어 본다면 그들의 그 기다림의 시간들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길게 느껴졌겠습니까? 짧아야 10년이었고, 모세는 40년간의 시간 동안 시련과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했습니다.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보내는 10년이라 한다면 그 십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반전은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었을 때까지는 또는 요셉이 110세까지 살았는데 적어도 그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평안히 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애굽에 있었던 시간이 430년인데, 그 중에 요셉이 통치했던 30세부터 살아있었던 110세까지 약 80년까지는 어렵지 않게 애굽 땅에서 살았었을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많아지면서 위기를 느꼈고,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했던 것으로 보면,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200~300년 동안 그런 억압 속에서 보내야 했을 겁니다.
이 정도의 시간이라면 더 이상 무슨 기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 가운데 고통과 시련이 더욱 더 커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31절 말씀을 보시면,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이스라엘 많이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고 있는데, 또 그런 세월 속에 조금이라도 어떤 반전의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제 반전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제 시련과 고난을 벗어나 자유와 회복과 치유의 시대가 도래 하고 있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살기로 하고 그렇게 10년을 기다렸는데도 아들이 없자 세상적인 방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여종 하갈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게 되는데, 바로 이스마엘이란 이름의 뜻이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라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길어지면, 더 이상 변화될 것 같지 않고 어떤 반전의 기민가 없을 거 같으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생각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신음소리와 고통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신다는 겁니다.
마태복음 24:13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중간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에게는 동일하게 ‘기다림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지금 시련의 기간이라면 우리는 위대한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 그 기다림의 시간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아픔과 시련 속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찾으시고 살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련을 견뎌내며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