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4:21~25>
– 믿음의 기업(44) –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는 높이 50m, 폭335m(미식축구 경기장 4개 길이)의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습니다. 그 폭포 아래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물과 폭포소리에 누구든 그 앞에서 압도당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1859년, 프랑스 출신의 곡예사 ‘샤를 블롱댕(Charles Blondin)’이 <뉴욕 타임즈>에 조그만 광고를 하나 냈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에 밧줄을 설치하고 그 밧줄을 타고 미국에서 캐나다로,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건너겠다는 겁니다. 그 광고를 보고 수천 명의 관객들이 몰려왔습니다.
블롱댕은 18kg의 장대로 균형을 잡고 한 발 한 발 밧줄 위를 걸어 폭포를 건넜습니다. 맞은편에 블롱댕이 도착하자 관중들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습니다. 블롱댕은 계속해서 뒤로 걸어서 건너기, 안대를 하고 건너기, 심지어 외발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 등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블롱댕의 줄타기 묘기가 점점 난이도가 높아갈수록 관중들의 박수와 환호성은 더 커져갔습니다.
그 때 블롱댕이 관중들을 향해 “여러분, 제가 사람을 업고 이 폭포를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묻자, 관중들은 하나같이 “네,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블롱댕이 “그럼 내 등에 업혀서 나와 같이 이 폭포를 건너갈 사람 한 분만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자, 관중은 이내 침묵에 잠겼고, 블롱댕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그는 관중 가운데 서 있었던 ‘해리 콜코드’라는 사람을 지목했고, 그를 업고 한 발 한 발 폭포를 건너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콜코드는 블롱댕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블롱댕의 매니저였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 지식적으로만 동의하는 정도에서 그칠 때가 많습니다. 콜코드가 블롱댕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인생의 문제도 건너갈 수 있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시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어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애굽의 병거와 마병에 쫓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 앞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밤새 홍해의 넘실대는 바닷물이 물러가고 바다 가운데로 길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그 길도 질퍽한 길이 아니라, ‘마른 땅이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22절 말씀을 참고해 보면 그 물이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우리에게 이뤄 가실 때, 그 일은 온전히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홍해의 마른 땅을 건너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인 겁니다. 분명 눈앞에서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홍해가 멀리 물러나 있는 게 아니라 바다 가운데 난 길의 양 옆으로 높은 물 벽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그것 자체가 장관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양의 물을 아쿠아리움 처럼 멋진 광경으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언제 어떻게 그 물이 쏟아져 그 밑으로 걸어가던 백성을 덮칠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세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둘러 그 홍해의 바닷길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23절을 보시면,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그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지라”
분명 애굽의 군대도 그 신비로운 광경에 놀랐을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것에 놀랄 틈도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는 것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저 멀리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해서 그 바다 한 가운데로 난 길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24절, 25절을 보시면,
“새벽에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들의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그러나 4절과 17절 그리고 18절을 통해서 이미 예고하셨듯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통해 애굽의 군대를 심판하시게 됩니다.
이 사건을 신약성경의 히브리서 11:29절에서 다시 언급하고 있는데,
“믿음으로 그들(이스라엘)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그러니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기 때문에 홍해를 건너 구원을 얻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는 겁니다. 시험했다는 얘기는 순수한 믿음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안 믿고 있는 겁니다. 불신하기 때문에 시험하고 있는 겁니다.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신할 뿐만 아니라,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라, 하나님이 있다면 어디 한번 마음대로 해보시오’하는 식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도전하고 저항하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겁니다. 그러나 믿지 않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순종할 때 복을 얻는다’는 말씀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그러나 그 말씀을 지식으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는 겁니다. 그것이 내게 복이 된다는 데 왜 순종하지 않나요? 100% 순수하게 믿지 않고 있기 때문인 겁니다. 그리고 애굽의 군대처럼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시험치 말고 믿고 순종하십시오. 시험치 말고 믿고 나갈 때 불가능해 보였던 인생의 문제도 건너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