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1:14~16
청춘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의 결실로서 <결혼식>을 하게 되는데, 그 결혼식에 아주 중요한 순서 하나가 ‘혼인서약’입니다. 그 혼인서약의 내용 중에 이런 게 꼭 있습니다.
『신랑 OOO군은 곁에 서있는 신부 OOO양을 아내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강건할 때나 병들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며 도와주고 보호하며 진실한 남편으로서 일정한 부부의 대의와 정조를 지키며 살아갈 것을 서약합니다』
남녀가 사랑하기 때문에 혼인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 혼인식에서 ‘혼인서약’을 하는 것은 곧 ‘사랑의 약속’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약속’을 잘 보시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강건할 때나 병들 때나, 부유하거나 가난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도 사랑하고…’라는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이 서약 안에는 ‘두 사람 사이에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이 바뀔지라도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약속’이라는 것은 그 안에 상대방을 위해서 기꺼이 ‘헌신 하겠다’는 결단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약속’은 ‘헌신’을 동반합니다. 헌신이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한다면 ‘헌신과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시편 91편을 기록한 시인의 상황은 지금 심각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3절) 새 사냥꾼의 올무
-(3절) 심한 전염병
-(5절) 밤에 찾아오는 공포
-(5절) 낮에 날아드는 화살
-(6절)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으로 봐도 지금 시인은 심각한 생명의 위협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고난이 오게 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혹시 스스로의 잘못과 죄악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시인은 주님께 집중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주님께만 피하고, 그 주님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구약성경에서 ‘사랑’이란 의미와 함께 ‘안다’라는 말이 쓰여질 때, 이 ‘안다’라는 말은 그냥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고, ‘깊고 친밀하게 아는 관계’를 말합니다. 마치 부부는 서로에게 비밀이 없이 깊이 알고 지내는 것과 같이 그렇게 ‘깊이 알고 사랑하는 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니깐 한 성도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서는 그 성도의 사랑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도 그 성도를 깊이 사랑하시는 겁니다. 그 사람의 상태나 환경이나 조건에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지라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14절) 그를 (환란속에서) 건져주시는 것입니다.
-(14절) 그를 (다시 회복하여)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7:6~8절 말씀에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나서도, 선해서도,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라 ‘다만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 때문에 우리를 건지시고, 다시 높여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15~16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처럼
-(15절)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15절) 환난 중에 함께 해 주십니다.
-(15절) 환난 중에 나를 건져주십니다.
-(15절) 환난 중에 나를 영화롭게 해 주십니다.
-(16절) 나를 장수하게 해 주십니다.
-(16절)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로 하셨고, 사랑하시기로 한 이상 우리의 조건과 상황에 관계없이 계속 은혜를 베푸시는 겁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사랑하십니다. 은혜를 베푸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약속’은 ‘헌신과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