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분열이 오는가?”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13) –

<느헤미야 5:1~5> 

이 땅이 천국이 아닌 이상 완벽하고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또는 이데올로기)는 없습니다. 물론 수백 수천 년 전의 전제주의(절대군주제) 시대보다 발전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완벽한 정치체제 실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근현대사에 들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 두 가지 정치체제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먼저, <민주주의 : Democracy>는 그리스어로 ‘Demo(국민)에 의한 cracy(정치)’를 말합니다. 이것은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국민을 위하여 정치를 행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공산주의 : communism>는 라틴어로 ‘communism(함께하는)’, ‘공산(共産)’ 즉 ‘함께 소유하고 생산한다’는 문자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본가 계급이 소멸되고) 노동자 계급이 주체가 되어 생산수단의 공공소유에 기반을 둔 무계급 사회조직’을 말합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체제이고, 공산주의는 노동자 계급의 소유와 생산에 초점이 맞춰있어, 함께 소유하고 함께 생산한다는 것이 발단이 된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의 반대를 ‘자본주의’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는 소유와 생산에 있어 공산주의가 아니고 자본주의인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이상은 얼마나 좋습니까? 가난한 사람이 없이 모든 사람들의 소유와 생산과 소득이 공평한 그런 나라에 산다는 이상이 얼마나 좋아 보입니까? 그런데 지금 북한만 해도 절대 공평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계급 사회’라고 해서, 서로를 향해 ‘동지’라고 부르지만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북한의 경우는 공산주의라기보다는 옛날 왕들이 왕위를 세습하는 것처럼 ‘전제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시작되었을 거 같습니까? ‘소득 불균형’ 또는 요즘 말로 ‘양극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상적인 체제를 찾다 보니 ‘공산주의’라는 것이 탄생한 겁니다.

왜 우리 한국 사회와 국민들이 ‘분열’되어 있을 거 같습니까? 국민들이 생각하기에 ‘공평하지 않다’는 겁니다. ‘소유와 소득이 불공평하다, 나도 똑같이 죽어라 일만 했는데 어떤 사람은 놀면서 큰 돈을 받고 나는 최저 임금 받다니? 어떤 사람은 갑이고 나는 을일 수밖에 없는 현실, 높은 청년 실업율 중에 어떤 힘 있는 자의 자녀는 특혜를 받아 대기업에 입사하는 일…’ 그래서 이런 현실을 보며 국민들은 분노하고, 그런 일들이 많다 보니 점점 국민들의 마음은 분열되어가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백성들과 함께 140여 년 동안 허물어져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위대한 비전을 이루어가고 있었습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성벽재건 사업은 대적의 협박과 방해 가운데서도 기적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성벽은 모두 연결이 되었고, 성벽의 높이도 중간 이상이 쌓여졌습니다.

대적의 위협과 방해가 있지만,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그 비전을 위해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성벽재건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려운 문제가 벌어졌습니다.

1절입니다.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한쪽의 유다 백성들이 다른 쪽의 유다 백성들을 원망하게 된 겁니다. 그것도 본문의 내용을 보시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표현 자체만으로 그들의 절박함과 처절함, 억울함을 느낄 수가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니깐 그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그 문제는 그들 사이에서 쌓이고 쌓인 문제로 보여 집니다. 지금 성벽공사가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고, 대적들은 시시각각 기습공격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백성들 사이에 마음의 억울함과 상처와 아픔 또는 분노의 마음까지 있었습니다.

온 국민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북한도 이길 수도 있고, 경제도 발전할 수도 있는데, 분열된 국민의 마음이 치유되지 않으면 그 나라는 결코 발전할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느헤미야의 눈앞에 유다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 힘을 합쳐서 일해도 성벽재건과 대적의 공격을 막을까 말까한 일인데, 백성들의 마음까지 분열되어 있는 것입니다.

분열의 이유를 보니,

2절에 보시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온 백성들이 성벽재건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곡식창고는 점점 비어졌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굶는 경우가 있었던 겁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라고 말했습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그 해에 흉년도 들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밭과 포도원과 집’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이어가는 가문의 기업이었습니다. 함부로 사고팔면 안 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라도 저당 잡히고 곡식을 사야 할 만큼 흉년이 심했던 겁니다.

4절에서도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그런 와중에 국민들에게 부과된 세금은 너무나도 과중하기 때문에, 그 역시 빚을 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식량난은 말할 것도 없이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을 더 힘들게 한 것은 5절을 보시면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 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은 이미 남의 것이 되었다” 밭과 포도원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이 절대 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품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담보로 잡히고 빚을 내서 곡식을 사먹었는데, 백성이 갚을 능력이 없으니깐 빚을 준 채주는 자녀를 종(노예)로 데려가는 겁니다. 자녀가 돈에 팔려가는 <인신매매>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특히 5절에서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라는 말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NICBASWT(니크바쇼트)’라는 말은 ‘성적(性的)으로 정복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빚진 백성들이 빚을 갚지 못하니깐 채주들이 채무자들의 딸들을 데려다가 성적욕구 해결을 위한 대상으로 삼았다는 말이 됩니다. 부모 입장에서 얼마나 피가 거꾸로 솟는 상황이겠습니까? 채권자들은 채무자들로부터 처음에는 밭과 포도원과 같은 것들을 빼앗었습니다. 그런데도 빚을 갚지 못하자 자녀들까지 노예로 데려가 버린 겁니다.

백성들이 왜 빚을 갚지 못했을까요? 가장 큰 원인을 7절에서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라고 느헤미야가 책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고리대금(高利貸金)’이 있었다는 겁니다. 고리대금 자체도 문제가 되지만, 왜 이런 상황이 문제가 됩니까? 지금 힘을 합쳐서 성벽재건에 집중해도 될까말까한 상황에 왜 이런 백성의 분열이 일어난 것일까요? 몇 가지 힌트가 있는데,

1절에서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5절에서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7절에서는 “너희가 각기 형제에게 높은 이자를 취하는도다”

8절에서는 “우리는 이방인의 손에 팔린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을 우리의 힘을 다하여 도로 찾았거늘 너희는 너희 형제를 팔고자 하느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느헤미야가 이 기록을 남기면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은 ‘너희는 한 형제다’라는 겁니다. 형제라고 생각하면,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분열되기가 어려운 겁니다.

제가 대여섯 살도 되기 전에 저희 부모님은 이혼하셨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부모님들을 제 곁을 떠나가셨고, 저는 고아가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서 마음속에 한 가지 결심을 저 스스로 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없다’라는 거였습니다. 가족이 되었다면 상대가 부족하고 연약한 부분이 있어도 참는 겁니다. 그냥 끝까지 가는 겁니다.

이것은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민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헐뜯고 밟고 죽이려고 하면 그 나라는 온전히 설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건강한 비판은 발전적으로 좋은 겁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상대를 흠집 내기 위한 의도가 담긴 비판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가족과 형제간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저는 교회 사역에서도 제게 맡겨진 양이고, 우리교회의 멤버라고 생각되면 ‘예수 가족’이라 믿습니다. 가족이고, 형제라면 상대가 부족해도 기다려주시고, 배려해 주시고, 양보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시오.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 교회에서 함께 있는 동안은 우리 식구인 겁니다.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서로 죽자고 싸울 수도 있는 겁니다. 형제간에 분열이 있는 이유가 뭐에요? 가족이란 생각을 잊어버려서 그래요. 돈 몇 푼 때문에 갈라서는 것은 형제애가 없어서 그런 겁니다.

우리 국민들도 서로 치고 박고, 비판을 위한 비판의식만 높아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어차피 한 땅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한 핏줄, 한 민족인 겁니다. ‘너와 내가 없으면 우리도 없고, 우리가 없으면 우리나라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분열을 막고, 나라는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외부의 적들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비전을 이루어 나갈 때, 사탄은 내부의 적을 만듭니다. 분열을 일으킵니다. 섭섭한 생각이 자꾸 들게 하고, 서로 원망하고 비난과 비판을 하기 시작하게 합니다.

모든 분열의 원인들이 우리 가족 가운데, 교회 가운데, 여러분의 생업과 기업 가운데, 우리의 민족 가운데서 사라지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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