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리자(The Last Winner)<Ⅲ>”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21) –

<느헤미야 6:15~19> 

인류의 역사 속에는 언제나 끔찍한 전쟁들이 있었지만, 20세기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큰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 1939.9.1.~1945.9.2.>입니다. 이 세계전쟁은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의 나치즘 & 일본의 제국주의>가 일으킨 전쟁입니다.

히틀러가 만든 ‘나치즘’은 ‘사회적 열등요소를 제거하고 우수한 민족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그 우수한 민족이 독일의 게르만 민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수백만명의 유태인들과 집시, 육체적 정신적 장애인들을 제거하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일본의 민족주의 안에 ‘세계 확장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통해 점점 제국주의적으로 변질되더니, 결국 힘이 없던 우리나라를 일찌감치 <한일합병>을 해버리고, 한반도를 발판 삼고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이 전쟁을 통해 일본은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대부분과 태평양의 여러 섬들까지 점령해 버렸습니다. 전쟁 중에 위안부를 비롯한 인간의 생체실험, 민간인 대학살 등등 끔찍한 만행들이 저질러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 재산피해를 남긴 가장 파괴적인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군인 전사자만 2,500만명이고, 민간인은 3천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의 인구만큼의 사람이 모두 죽은 겁니다. 이 만6년 이상의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이것을 통해 UN이 창설되고, 나라를 빼앗겼던 국가들은 다시 국권을 찾게 됩니다.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의 패망으로 세계는 탈식민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제국주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을 옹호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독일 분들이나, 일본 분들까지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분명 그런 이데올로기와 그 전쟁은 결코 정의롭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형통하고 그들이 더 번성하고 그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비해 정의로운 자들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결국 정의가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주체가 불의한 인간이 아니라, 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주인이십니다. 인간과 세계는 계속해서 불의를 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계 역사의 불의함을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정의로 사는 이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1. 잘못된 동맹을 끊어라

세계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한 개인의 인생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는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원한다면, 모든 ‘잘못된 동맹’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페르시아에서 유대의 총독으로 부임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의 유대 총독들과는 달리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는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어 가기 위해 힘을 다한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느헤미야와는 달리 유대 땅과 그 주변에는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17절 말씀을 먼저 보시면,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140여 년 동안 허물어져 있었던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이라는 꿈과 같은 비전이 이루어지는 중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느헤미야가 설명하고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가 그 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오랫동안 예루살렘의 성벽은 모두 무너져 있었고, 성문을 불타서 흉물이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의 강도 때라든지, 주변 이방 나라들의 공격과 약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성벽을 다시 쌓고 싶어도 페르시아 왕의 명령으로 성벽재건이 금지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라는 사람이 총독으로 부임해서, 법적인 권한을 갖고 성벽을 건설하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모든 유다인들에게는 기뻐서 춤을 출 일인 것입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성벽을 건축해 나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17절 말씀에 보시면,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번 도비야’와 함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도비야’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느헤미야가 여기서 그를 특별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요?

(1) (산발랏의)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2:10)로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사마리아의 총독 산발랏의 종이었던 암몬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산발랏의 오른팔 역할을 하면서 그는 유대의 귀족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정략결혼을 하고, 신분을 세탁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2) (느헤미야 일행을) 조롱하고, 비웃고, 협박하던 사람(2:19)이었습니다.

(3) 성벽 재건에 대해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4:3)” 조롱하던 사람이었습니다.

(4) (사마리아 총독)산발랏, (아라비아 사람)게셈 등과 함께 예루살렘 ‘기습공격’을 모의했었습니다(4:8).

(5) 느헤미야를 모함하여 암살하려 시도했습니다(6:2~7).

(6) 선지자들을 돈으로 매수해서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흠집 내려고 했습니다(6:10~13).

느헤미야서 2장, 4장에서 도비야는 산발랏 곁에 등장해 산발랏의 말을 거들고, 함께 모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6장에 등장하는 도비야는 유다의 선지자 또는 제사장들과 귀족 사회에 깊숙이 침투해 더 교묘하게 성벽재건을 방해하는 교활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7) 유다 사람(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6:18),

(8) 유다 사람(므술람)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습니다(6:18). 그렇게 정략적 결혼을 통해

(9) 유다의 귀족들을 매수하고 그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6:17~19). 그리고

(10) 유다의 귀족들을 통해 느헤미야에게 도비야를 좋게 말하도록 지시했습니다(6:19). 또한

(11) 유다의 귀족들을 스파이로 확보하고 있었습니다(6:19). 귀족들은 느헤미야가 무슨 말을 했는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일일이 다 보고했습니다.

느헤미야서가 끝나는 13장에 보면

(12) 대제사장(엘리아십)을 매수해 유대 사회 속에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기까지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13:4~9).

어쩌면 사마리아의 총독이었던 산발랏과 아라비아의 게셈 보다 더 위험하고 교활하고 악한 사람이 도비야였던 겁니다. 왜냐하면, 산발랏과 게셈 같은 경우는 느헤미야를 외부에서부터 시비를 걸고 공격을 하지만, 도비야 같은 경우는 유다의 핵심인물들을 다 매수해 버려서 느헤미야와 유다의 핵심멤버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켜 버린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교활하고 악합니까?

18절 하반절에 보시면, “유다에서 그(도비야)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맹한’이란 말의 히브리어는 ‘Baley Shepwah(바알레이 쉐부아)’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그 뜻이 ‘주인이 되다, 지배하다, 맹세하다’는 겁니다.

이 말은 ‘~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맹세를 의미하는 단어인 것입니다.

도비야로부터 밥 몇 번 얻어먹고, 몇 가지 선물을 받기도 하고, 돈 몇 푼씩 받았던 유다의 제사장들, 선지자들, 귀족들이 느헤미야에게 등을 돌리고 도비야의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돈 몇 푼에 유다를 향한 애국심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심도 다 팔아 먹어 버린 겁니다. 마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전 30개 받고 팔아넘긴 것과 같은 겁니다. 그들은 악하고 교활한 ‘도비야’라는 사람과 동맹을 한 겁니다. 그를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맹세를 한 것과 같습니다. 그 몇 푼 받아 챙기면서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종입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입니다’라고 맹세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맹은 잘못된 동맹인 것입니다. 그 동맹이 처음에는 좀 쉽게 돈 좀 버는 거 같고, 성공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잘못된 동맹을 맺는 사람은 결코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4월 우리나라에서 제법 큰 기업의 회장이면서, 전직 국회의원이기도 했던 분이 자살을 했습니다. 시신수습 과정에서 주머니에 있는 종이 한 장을 발견했는데, 중앙 정부의 인사들과 정부 기관의 장들과 이름만 대면 아는 주요 여야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줬다는 리스트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정치권에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왔습니다. 결국 주요 정치인들에게도 데미지가 있었고, 뇌물을 줬다는 S모 회장은 결국 목을 매 자살을 했습니다.

그것에 대한 진실은 우리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잘못된 동맹은 결국 비참하게 마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3:8절 말씀에서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진실을 못 보는 겁니다. 그 뇌물에 눈이 가려지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굽어진 말도 하는 겁니다.

잠언 15:27절 말씀에 보시면,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잘못된 동맹은 여러분의 인생을 해롭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된 동맹을 끊어버리면 어려움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는 겁니다.

여러분이 살고 싶다면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잘못된 동맹들을 끊으십시오. 신앙생활에 도움이 안 되고,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러운 일이고, 양심에도 걸리는 일이고, 자녀들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인데… 거기에 계속 연관되어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 때문에 인생을 망칠 수 있는 겁니다. 돈 몇 푼 때문에 신앙을 팔아먹으면 안 됩니다. 밥 몇 번 얻어먹고, 커피 몇 번 얻어먹었다고 신앙까지 팔아먹고, 양심까지 팔아먹으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야 내가 살고, 자녀가 살고, 가정이 사는 겁니다.

신앙생활도 똑 같은 겁니다. 분명 교회에 덕도 안 되고, 은혜도 안 되고,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깨뜨리는 일인데 여기저기서 수근수근 하는 것은 잘못된 동맹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에 은혜가 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교회가 더 부흥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말이 교회에 덕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혜가 되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만한 말들을 해야 하는 겁니다. 모든 잘못된 동맹은 끊어버리십시오.

2. 하나님과 손잡으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적’입니다. 스피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운동선수들이 펄럭이는 옷을 입지 않고,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는 것은 펄럭거리는 옷이 바람의 저항을 받아서 선수가 더 좋은 기록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얼마나 많은 방해들이 있었습니까?

사마리아의 산발랏과 암몬족속과 아라비아의 게셈과 아스돗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 협공을 하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1)‘외부의 대적들’을 대항해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유다의 핵심 멤버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켰던 (2)‘도비야’ 같은 교활한 자와 싸워야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유다의 귀족들, 선지자들, 제사장들이 도비야로부터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를 등지고 있는 겁니다. 느헤미야는 (3)‘내부의 적’과도 싸워야 했던 겁니다.

그러니 이 성벽 공사가 제 때 이뤄질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예루살렘 성의 북쪽부분을 새롭게 건축했는데, 성전건축을 위해서 7년, 자기의 왕궁을 건축하기 위해서 13년 총 20년에 걸쳐서 건축공사를 했습니다(왕상6:38, 7:1). 솔로몬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에게도 그 공사는 대단히 큰 공사였고, 오래 동안 시간이 걸리는 공사였습니다.

우리 교회 옆에 A.S.Fortuna 거리 도로를 새롭게 깔겠다고 뜯어 놓은 지가 1년 반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공사 중입니다. 앞으로도 1년은 더 공사를 할 거 같습니다. 한국보다 여러 가지 토목공사에 대한 기술과 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지혜의 왕 솔로몬조차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완공한 예루살렘의 건축공사를 대적들의 저런 훼방을 받으면서, 또 그것을 막아내며, 어떻게 빠른 시일 내에 끝낼 수 있겠습니까? 이건 불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15절 말씀을 보시면,

“성벽 역사가 52일 만인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성벽 전체가 무너져 있었는데, 그 성벽이 며칠 만에 재건을 했다고 합니까? 지금부터 2500년 전에 무슨 장비가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성벽을 며칠 만에 완공했습니까? 단 52일 만에 완공했습니다. 이건 기적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공사를 대적들의 적극적이고, 교묘한 방해가 있었음에도 단 52일만 완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느헤미야는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16절 말씀에 보시면,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헤미야가 그 비결을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겁니다.

느헤미야가 대단한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어떤 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평온한 가운데서 성벽재건이라는 비전을 이뤄갔었던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달리는 사람 옷을 붙잡고 늘어져 더 이상 달릴 수 없도록 방해하고 있는데, 또는 더 적극적으로 느헤미야와 백성들을 죽이려고 협박하고,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런 중에 단 52일 만에 성벽 공사를 마무리 한 겁니다.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적을 하나님께서 일으키셨다는 겁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큰 비전이 있고, 큰 꿈이 있는데 방해 없이 평온한 가운데 그 일들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그 비전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는 분명 험한 장애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또는 어떤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여러분의 꿈을 방해할 대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된 모든 동맹을 끊고,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모든 일들을 끊고 그리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으면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도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을 뻗어 주님의 손을 잡는 순간 우리는 미래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의 인생 속에서도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느헤미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광명의 성도들이 최후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최후의 승리자(The Last Winner)<Ⅲ>”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21) –

1. 잘못된 동맹을 끊어라

2. 하나님과 손잡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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