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생명을 걸라” – 느헤미야처럼 기도하라(28) –

<느헤미야 9:38, 10:28,29>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2007년 설문 조사를 했는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라는 거였습니다.
1위가 ‘백범 김구(金九)선생(1876~1949년)’ 이셨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있어 가장 비중 있는 정치인이었고, 우리나라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었던 일제 강점기 때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분이라 가장 존경하는 것 같습니다. 김구 선생은 1919년부터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지금의 대통령과 비슷한 역할이라 할 수 있는 임시정부의 ‘국무령’을 역임했고,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독립되었을 때 ‘대한민국 제1대 국가 수반’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쓴 『백범 일기』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세 번 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독립 후 격동기였던 1949년에 향년 74세 때 김구선생은 암살당하게 되는데, 그가 암살당하기 얼마 전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언하는 듯한 글을 썼다고 합니다.
김구선생은 “내가 만일 어떤 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이 이상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 같이(요한복음12:24), 내가 죽은 후 나 이상의 애국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라(기독교대한성결교회, 활천호 230호, 1949년)”고 하셨습니다.

김구선생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약간씩 다를 수 있겠지만, 그 분은 조국의 독립을 보기 위해 자신의 삶을 던졌고, 결국 조국의 독립을 보셨고, 초기 대한민국의 독립국가로서의 초석을 놓으시고 소천하신 것입니다. 김구선생님은 조국의 독립에 자신의 삶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천국 가기 전에 조국의 독립을 보신 겁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믿음에 생명을 걸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완공된 이후에 예루살렘 안에서 큰 회개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 9:38절의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서명하였습니다)”
백성의 대표자들인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어떤 언약을 세우고 거기에 서명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록된 “견고한 언약을 세워”라는 말의 문자적인 의미는 “견고함을 잘라”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무슨 의미인지 쉽게 이해할 수 없어서 ‘견고한 언약을 세워’라는 표현으로 우리 성경에는 번역이 되어 있는 겁니다. 이 말은 고대사회에서의 계약체결 관습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람은 3년 된 암소, 3년 된 암염소, 3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다가 새를 제외한 그 모든 것을 둘로 쪼갭니다. 고대 계약 체결 관습에서는 이렇게 둘로 쪼개진 제물 사이로 계약 당사자들이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의미가 있습니다. ‘만약 계약 당사자들이 언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즉, 거기에 생명을 걸고, 목숨을 걸고 언약을 체결하는 겁니다.

다시 9:38절 말씀에 보시면,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명까지 걸고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게 된 동기가 뭐예요?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9장 전체에 걸쳐서 말씀하시고 있겠지만, 요약 압축된 구절이 34절~37절까지입니다.

먼저, 34~35절 말씀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이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복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복을 누리면서도 주님을 섬기지 않고 도리어 더 악행을 하게 될 때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 36절과 37절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로 살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세를 통해 출애굽 시키셨고,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언약의 땅 가나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 풍족한 땅의 주인이 되어 그것을 마음껏 누렸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되었어요? ‘그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들의 그 풍족한 모든 재산들도 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라는 표현을 통해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알았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후회하고, 회개하며 주님 앞에 앞으로 더 이상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을 언약으로서, 생명까지 걸면서 서약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언약을 어길 시에는 제물이 둘로 나뉘어 져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처럼, 자신들 역시 그렇게 될 것을 약속하는 겁니다.

이것이 9:38절에 있는 ‘견고한 언약을 세워’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나라는 망했고, 그들은 포로로 잡혀가 종살이를 했고, 지금 느헤미야 시대가 되어 포로에서 귀환했지만 그 땅은 더 이상 자신들의 땅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식민지일 뿐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어떤 삶이 우리가 잘되는 길인지, 어떤 길이 우리가 살 길인지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0장을 통해서 그들은 그들이 그동안 잊고 살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회복하여 준행하겠다는 그 ‘견고한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30절 말씀에서 ‘통혼의 금지(이방인과의 결혼 금지)’였습니다. 율법에서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기하고 있는 것은 이방인과의 결혼을 통해 이방인들이 섬기던 우상도 들여오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 순수함을 잃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그 말씀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방인과의 혼인이 있었고,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방의 우상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겁니다.

두 번째로는 31절을 통해 ‘성수주일과 안식년의 준수’를 언약했습니다. 율법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부분까지도 흐릿해 진 겁니다. 한국에서 세부에 단기영어연수를 오는 학생들 중에 적어도 20%는 교회 다니던 학생들이었을 텐데, 이곳이 관광지다 보니 가보고 싶은 데가 많은 겁니다.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분이 흐릿해 져가는 겁니다. 주일 성수하는 학생들이 적은 겁니다.

세 번째로는 32절과 33절 말씀에서 ‘헌금(성전세)함으로 교회 봉사를 지원’하는 것을 언약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그것을 통해 매일 드리는 진설병과 소제와 번제와 여러 절기들의 성물들과 속죄제 등의 제사 사역에 사용하게 됩니다.

네 번째로는 34절 말씀을 통해 ‘번제에 쓸 장작 제공’함으로 항상 번제를 드리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35~37절에서 ‘첫 수확물, 가축의 첫 태생’ 그리고 자녀의 ‘장자 헌신(첫 열매)’을 언약했습니다. 역시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고, 하나님 앞에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그 중심과 신앙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여섯 번째로는 37~39절을 통해 ‘십일조 규례 준수’를 견고한 언약으로 언약하고 서명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른 기업을 받지 못하고 오직 성전의 일과 말씀을 가르치는 일 그리고 제사 사역을 했었던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서가 끝나는 마지막 절에서는 이와 같이 하는 이유를

“그리하여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려두지 아니하리라(39절)”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어렵고 힘들다 보니깐, 이런 규례를 지켜오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레위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성전의 일을 하지 못하고, 먹고 살 길을 찾아 떠나게 된 겁니다. 누군가 그 일에 헌신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생활의 문제 때문에 레위인들이 성전봉사에서 이탈하는 현상들이 생겨났던 겁니다.

지금까지 유대인들이 성전중심으로 살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니 율법 준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그들은 범죄 해도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살았던 겁니다. 또 많은 레위인들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성전봉사에서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성전은 점점 더 황폐해져 갔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성전중심, 교회중심으로 삶의 중심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의 영적 생활은 점점 하나님 중심의 삶, 믿음 중심의 삶이 되어간다는 겁니다.

다시 9:38절의 말씀에서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즉, 그들이 그렇게 성전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신앙과 관계없는 삶을 살다보니깐 이스라엘 역사에 그런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 먹고 사는 문제, 세상의 즐거움을 즐기는 문제에만 집착하다 범죄하고 심판받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제 믿음에 생명을 걸겠다는 겁니다. 이제 하나님 중심의 삶, 말씀 중심의 삶, 성전 중심의 삶, 신앙 중심의 삶, 믿음 중심의 삶으로 돌아가고, 바로 그런 사실에 생명을 걸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교회의 너무나도 인간 중심의 성경 해석과 시대적 흐름에 맞는 성경 해석 그리고 그에 맞는 신앙생활 적용으로 인해 우리의 신앙이란 것이 심각하게 병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우리에게 분명하게 교훈하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에 생명 걸 것이 아니라, 믿음에 생명을 걸고 살아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가정을 지키고, 우리의 인생 속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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