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鏡戒)와 견책(譴責)”

<잠언15:5, 10~12> 

지난 7월에 우리나라의 지방직 5급 공무원 교육생 및 공무원들 약 300명이 중국으로 연수를 떠났었습니다. 여러 버스에 나눠 타고 이동하던 중 버스 한 대가 급커브 길에서 미끌어 지면서 다리의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8m 아래 하천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사고로 11명이 사망하고, 16명은 크게 다쳤습니다.

사고원인을 조사하는데 운전자의 혈액을 분석해 보니깐 음주운전을 한 것도 아니고, 이전에 마약 복용 혐의도 없었습니다. 운전자의 건강상태는 깨끗하고 양호했습니다.

사고원인은 <버스운전사의 과속 및 커브길 운전 부주의>로 내려졌습니다. 사고지점 100m 앞에는 ‘급커브 경고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제한 속도 40km 경고 표지판’도 그 길에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의 운행기록을 살펴보고, 그 다리에 설치되어 있던 CCTV를 확인해 본 결과 사고 차량의 운전자 왕씨(39세)는 급 커브길 임에도 불구하고 시속 66~80km로 과속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버스 운전자의 건강상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급커브구간, 감속구간(40km)’표지판의 경고와 경계를 무시했던 겁니다.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그렇듯이 운전자의 ‘운전부주의’였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보시면
“아비의 훈계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아비의 훈계’라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지혜로 작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부모님은 우리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오셨고, 경험하셨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앞서서 경험하셨고 또 그 경험 속에서 뼈저리게 느낀 내용들을 자녀들에게 또는 젊은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훈계(訓戒 : 가르치고 경계하고 타이름)’라는 이름으로 하다보니깐, 젊은 사람들이나 자녀들은 그 훈계를 잔소리로 듣는 겁니다. 그래서 그 훈계를 잔소리로 듣는 사람에게는 듣기 싫은 잔소리로만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과 경계를 새겨듣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지혜가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50대 남자분과 우연히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신앙이 있으셨던 분은 아니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참 괜찮은 분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말끝 마다 ‘우리 아버님은 제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 하셨어요. 어떤 상황에서 잘못하면 크게 혼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이러시는 겁니다. 인생 50을 넘게 사셨으면 얼마나 삶의 경험이 많으시고, 얼마나 많은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지만, 이 분은 50대가 되어서도 ‘아비의 훈계’를 마음에 새기고 그것을 잔소리가 아닌, 삶의 지혜로 받으신 겁니다.

그 분과 대화하면서 ‘가정교육이란 것이 그래서 중요하구나~’하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비슷 비슷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 훈계 : 가르칠 훈(訓), 경계할 계(戒) / ‘타일러서 잘못이 없도록 주의를 주는 것’

– 경계 : 거울 경(鏡), 경계할 계(戒) / ‘거울로 비추어 깨닫게 하여 주의를 주는 것’

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들 보다 좀 더 강한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시면,

“도를 배반하는 자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요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이 구절에 ‘견책(譴責)’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꾸짖을 견(譴), 꾸짖을 책(責)’자를 쓰고 있는데, ‘잘못을 꾸짖고 나무란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훈계와 경계’는 미리 주의를 주고 경고를 하고 있는 거고, ‘견책’은 잘못한 것에 대해서 눈물이 쏙 빠지도록 그 잘못을 꾸짖고 책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훈계와 경계’도 싫어하는데, 잘못에 대해서 지적하면 ‘누가 누굴 지적해?’하면서 앞뒤 가리지 않고 기분 나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거나, 다른 사람 탓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다른 논쟁 꺼리를 가져오거나…하는 겁니다.

그러나 10절 말씀에 보시는 바와 같이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라’ 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할 때 그것을 듣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듣지 않고 싫어하면 그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중국의 버스 추락 사건과 같이 교통 표지판의 주의 사항을 따르지 않아서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12절 말씀을 보시면,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

하셨습니다. 누군가에게 어떤 견책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그가 ‘거만(교만)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생각과 판단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겁니다. 10절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견책을 싫어하는 자는 죽을 것이니라’ 그러나 살기 원한다면, 지혜를 얻기 원한다면 ‘견책을 달게 받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듣기 싫은 말이 들려지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도 있고, 책망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경계와 견책’ 그것을 달게 받을 때 우리는 더 지혜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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