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4:23~25>
2015년 2월 17일에 우리나라의 43대 국무총리로 임명된 분은 국회의원 3선에 충청남도지사를 거쳐, 장차 대권의 주자로도 이름이 오르내리던 분이었습니다. 이전(前)총리는 국무총리 취임사에서
“당면한 경제 살리기와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부패’를 척결하고 국가기강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에서 이 자리에 섰다.”
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난세(亂世)의 영웅과 같은 표현을 썼던 것 같습니다. 정말 이 분의 취임사와 같이 여러 가지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부패를 척결하고,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면서 나라의 경제를 살렸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취임한지 단 63일 만에 총리직에서 낙마하는 그래서 우리나라 역사에 최단기간 동안 총리직에 있었던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 전 총리는 국회에서 동의했기 때문에 총리에는 올랐었지만, 그 이후에도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건강보험료 미납, 논문표절…’등 여러 의혹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부패를 척결하겠다’던 그가 기업인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던 것이 드러난 겁니다.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결국 대통령 다음가는 자리인 국무총리 자리에서도 내려와야 했습니다.
이 분이 대학에서 행정을 전공했고, 행정고시를 합격했고, 행정학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행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과 공정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공직자로서 그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치게 된 겁니다.
오늘본문 23절 말씀을 보시면,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하셨습니다. ‘낯을 보아주는 것’을 영어번역(NIV)에서는 ‘To show partiality’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partiality는 ‘편파, 불공평, 치우침’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원칙을 어기는 것이고, 불공정한 것이고,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재판할 때에’ 이런 partiality가 있다면 그것은 결코 옳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재판을 통해 공정한 판결이 나지 않으면, 재판장과 관계된 지인에겐 득이 되겠지만, 재판의 상대방은 반드시 피해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재판장이라면 더더구나 ‘법에 의한 원칙을 지키고, 공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원칙을 어기고, 불공정하게 할 때에 그것은 도리어 내게 부메랑이 되어 나를 치게 되어 있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시면,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어떤 리더십이라 할지라도 원칙에서 벗어나고, 공정성에서 벗어나면 팔로워(follower)들의 불평만 사게 될 뿐입니다. 그렇게 될 때 그것이 가정이든, 회사든, 교회든, 한 국가이든… 바르게 성장해 갈 수가 없는 겁니다. 앞으로 나아가기도 바쁜데 쓸데없는 것에 계속해서 에너지를 써야 할 것입니다. 계속 일어나는 잡음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고 공정성을 갖춘 리더십을 통해서는 25절의 말씀에서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견책(譴責)’이란 것은 ‘잘못을 꾸짖고 나무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의 공동체를 잘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이런 원칙과 공정성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의 가정도, 우리의 기업도, 우리의 교회도, 우리의 사회와 국가 안에서도 그리고 우리 한 개인의 인생 속에서도 원칙과 공정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기쁨을 얻고 좋은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원칙이 무너지면 국무총리라 할지라도 낙마할 수 있는 겁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또 가정과 기업과 생활 속에서 어떤 원칙과 공정성을 갖고 살아가야 하겠습니까? 무엇을 하든 원칙을 지키고, 공정하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