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와 겸손으로 말하라”

<잠언 25:15> 

이단과 사이비에 속한 전도자들과 종교논쟁을 해 보셨습니까? 논쟁이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서로의 교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나중에는 서로 감정이 상하고 큰 소리가 오고가며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하게는 유치하게도 “그래, 너 잘났다. 너 그러면 지옥간다!” 이렇게 끝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3:15절 말씀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감정적인 종교적 논쟁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의 소망에 관한 것을 대답할 때는 언제나 준비된 모습으로 ‘온유와 두려움’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논쟁으로 누군가를 굴복시키면 그 사람이 과연 진짜 굴복할까요? 이론과 논리에 있어서는 어쩔 수 없이 굴복되지만, 감정적으로는 패배감과 굴욕감으로 오히려 복수의 칼날을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베드로전서 3:16절에서는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논리적인 강한 말이 아니라 인품과 삶인 것입니다.

오늘의 잠언은 우리가 누군가와 말하게 될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이 “온유와 겸손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 부분은 나보다 더 큰 권위를 갖고 있는 이들(관원, 직장상사, 부모, 연장자, 선생님, 고객…)과의 대화에서 기억해야 할 잠언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15절 말씀을 보시면,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꺽느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관원’은 공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든지 공권력을 통해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 비교적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무례하게 말하거나, 협박성의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지혜로운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는 ‘부드러운 혀’가 필요한데, ‘온유와 겸손’을 말합니다. 나보다 연장자(부모, 상사, 선생님…)에게 어떤 부분에 대해서 말할 때, 자기주장만 강하게 어필하고, 무례하고도 강압적으로 말한다면 절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부모와 어떤 논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자녀들이 함부로 소리를 지르며 자기주장만 말한다면… 그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이미 부모의 마음은 상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 때 보통의 부모는 “너 아빠한테(또는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이런 식으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것이 겸손입니다. 그렇게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부모의 말씀도 들어가면서 그리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의 문도 열고서 대화를 해 나가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겁니다.

부모뿐만 아니라 이것은 직장상사나 기업의 고객도 될 수 있고, 학교의 선생님에게도,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런 나보다 더 권위가 있는 사람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먼저는 말의 지혜가 아니라 온유와 겸손의 태도와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과 같이 부드러운 말로서 논리적으로 접근할 때 그 말에 힘이 실리고, 설득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는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꺽느리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뼈처럼 단단하다고 할지라도 부드러운 혀가 그것을 꺽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15절 상반절에 있는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라는 구절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나보다 높은 권위(힘)의 사람이 무엇인가 힘으로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항해 내가 힘으로 나가면 내가 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리고 참지 못하고 나 역시도 그 상위의 권위를 향해 막 말을 쏟아 붓는다면 그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 여러 지위와 권위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때로는 대화와 설득의 시간들이 필요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온유와 겸손함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는 두 개, 입은 하나만을 만드셨습니다. 많이 들으시고, 적게 말하되 온유와 겸손함으로 말할 때 가장 지혜로운 인생을 사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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