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샘’]
김제환목사(세부광명교회)
그리스의 3대 철학자 중에 한 사람인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고대의 죄수들을 가두었던 깊은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은 손발이 묶인 채 동굴의 벽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동굴입구와 죄수들 사이에는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그 모닥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큰 담이 쌓여져 있는데, 그 담과 모닥불 사이에서 사람들이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죄수들은 뒤를 돌아볼 수도 없고, 단지 그 그림자를 통해서 보고 느끼는 것이 실체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것이 실체이고, 진리라고 생각하며 산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죄수 하나가 그 동굴 감옥을 탈출해서 보니, 평생 동안 자신이 알고 있었고 믿고 있었던 내용들 모두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동굴에 갇혀있었던 동료 죄수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동굴로 되돌아가서 그 사실을 말해 주는데, 동료들이 믿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사람을 미친 사람 취급하고 핍박을 한다는 겁니다.
누군가 정말 평생을 동굴 속에서만 살아왔다면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에 분명 두 가지 세계와 두 가지 인생이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동굴과 동굴 밖’ 그리고 ‘동굴 속 인생과 동굴 밖 인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의 인생에 적용을 해 본다면, 어떤 사람이 오랫동안 실패 속에 살았습니다. 그가 손대는 일마다 잘 안됐습니다. 그나마 갖고 있던 재정마저 바닥이 났습니다. 그렇게 돈이 떨어지니 누구 하나 내게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도 없고, 찾아와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의 인생은 실패했습니다. 더 이상 일어날 힘도 없는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인생의 동굴에서 절망의 눈물을 마시며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동굴 밖의 찬란한 빛 속의 인생을 꿈조차 꾸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좌절로 끝나는 인생은 ‘동굴 속 인생’인 것입니다. 동굴이 있다면 동굴 밖의 세상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지금 내 눈에 보여 지는 어두컴컴한 동굴의 벽만 바라보며 좌절하지 말고, 시선을 동굴 밖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동굴을 탈출해야 하는 겁니다. 기독교 격언 중에 “고난은 위장된 하나님의 축복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노래 중에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의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 하세요” 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이런 소망과 믿음으로 인생의 동굴 속에서 다시 소망을 갖고 살아가려 애쓰는 겁니다.
꼭 신앙인이 아닐 지라도 지금의 동굴 속 인생에서 그냥 그렇게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 ‘이제 내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아직 내가 살아있다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이제 나는 다시 도전한다’ 이런 자세를 갖고 있는 인생은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내게 변화된 환경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태도가 바뀐 겁니다. 변화는 환경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변이 바뀌길 바라고, 좋은 환경이 주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바꿔 먹는 사람들은 주변의 부정적인 환경을 긍정적인 환경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실패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성공의 문턱 바로 앞에서 포기하는 사람들입니다. 물의 끓는점은 100°c입니다. 그러나 실패하는 사람들은 98도, 99도에서 포기합니다. 성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If you can?,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 마가복음9:23)” 당신이 여기서 포기하기에는 당신의 인생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제 그 실패의 동굴에서 나오십시오. 그리고 당신 인생의 동굴 밖 생활을 바라보십시오. 당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