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심(私心)을 버리고 타심(他心)으로”

<잠언29:12~14> 

어제 뉴스에 [北 평양서 노동당 前 간부, 체제비판 ‘삐라’ 살포 후 검거]라는 뉴스 타이틀이 하나 떴습니다. 북한 노동당의 전직 간부가 “개XX, 왜 우리는 못사는가, 평생을 노력했는데 모두 속았다”라고 쓴 종이를 평양의 곳곳에 던지고 달아났습니다. 공안들이 총동원돼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을 검거하지 못하던 중, 잠결에 남편의 잠꼬대를 들은 부인의 신고로 검거됐다는 겁니다. 부인은 가족들까지 위험에 처해질까봐 남편을 신고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지금 북한의 현실입니다. 김정은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아첨하는 사람들은 살아남지만, 태도가 불량하거나, 자칫 말의 실수라도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처형되는 공포정치가 김정은 체제의 통치수단입니다.

1년2개월 전에 미국의 신용카드 결제회사 <Gravity Payment>의 CEO ‘댄 프라이스(32세)’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댄은 “제 연봉을 90% 삭감해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약, 8천만원)로 올리겠습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업계에서는 그를 미쳤다고 했습니다. 공동 창업주인 형도 회사를 위험에 빠뜨렸다면서 동생을 고소했고, 회사는 곧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현재 회사는 월 평균 30건이던 고객문의가 2천건으로 늘었고, 매출 역시 두 배로 늘고,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의 잠언은 “사심(私心)을 버리고, 타심(他心)으로”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자기 개인의 욕심만을 채우려고 하는 사심(私心)을 버리고, 타심(他心) 즉 공동체나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살아갈 때 오히려 복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12절을 보시면,
“관원이 거짓말을 들으면 그의 하인들은 다 악하게 되느니라”

로마의 속담에 “그 임금의 그 신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임금은 지배계급이고, 피지배계급인 신하들은 임금이 원하는 대로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 임금이 악한 왕이고, 김정은과 같은 폭군이면 그 비위를 맞춰야 하는 겁니다. 그걸 맞추지 않을 때 하루아침에 처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폭군 주변에는 아첨꾼들이 득실거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신하들은 그 폭군의 기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온갖 거짓말들과 Lip-service들로 통치자를 즐겁게 해 주는 겁니다. 그런 말들을 들을 때 그 통치자는 기분이 좋을지 모르나, 그 사람 주변에는 온갖 거짓된 아첨꾼들 밖에 남지 않게 되는 겁니다.

13절을 보시면,
“가난한 자와 포학한 자가 섞여 살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그 모두의 눈에 빛을 주시느니라”

가난한 자는 사회적 약자들을 가리키고, 포학한 자는 압제자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나 포학한 자나 그들 모두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댄 프라이스가 “연봉 인상은 비즈니스 전략이 아니라 도덕적 책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서구인들의 정신세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 Noblesse oblige> 즉, “귀속성은 의무를 갖는다”는 의미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와 권력과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정신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세계최고의 부자 빌게이츠는 “나는 이 재산을 잠시 맡아둔 것뿐입니다. 최대한 빨리 가장 적당한 용도를 찾아 사용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역시 같은 정신을 갖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유럽과 북미권의 나라들이 선진화되고, 그 사회가 균형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겁니다.

14절 말씀을 보시면,
“왕이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였습니다.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과 그라비티 페이먼트의 댄 프라이스는 서른두살 동갑내기입니다. 그러나 김정은은 국가와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자신의 사심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댄 프라이스는 청교도적 정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즉 사심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타심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습니다.

14절에서 권력자가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를 돌봐줄 때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사심보다는 타심으로 살아갈 때 오히려 더 견고한 인생, 복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심만 채우며 살려고 하면 결국은 몰락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연약한 사람을 돕고 배려하며 살아갈 때 그는 더욱 더 견고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힘과 위치를 통해 나보다 연약한 이들에게 이 은혜가 흘러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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