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질서”

<전도서 3:14~15> 

이번 11월 8일에 열리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전 세계가 주목하기는 처음 있는 일인 거 같습니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J. Trump, 1946~) 후보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Hillary D. R. Clinton, 1947~)  후보가 각각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요소들이 있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먼저 힐러리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 42대 대통령을 지낸 빌 클린턴의 배우자로서 제44대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주자이고, 미국 최초의 부부 대통령이자,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트럼프의 경우는 방송인이면서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로서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는데, 이민자들과 이슬람과 파병 미군 주둔 문제 그리고 여성 혐오발언 등 막말을 쏟아내어 전 세계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후보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힐러리와 트럼프의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 해서, ‘이러다 정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건 아닌가?’하는 전 세계적인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 Access Hollywood란 쇼프로에서 당시 게스트였던 트럼프가 제작진과 사적으로 나눴던 저속한 음담패설 녹취파일이 공개되면서 그를 지지했었던 미국 국민들조차 힐러리를 지지하게 되는 지각 대변동이 시작된 겁니다. 심지어 공화당의 상.하원의원들이 도미노식으로 지지를 철회하고 나서고 있습니다. 힐러리와의 박빙경쟁에서 이젠 따라가기 버거운 상태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44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유력한 사람이 10여전 전에 사적으로 말했던 음담패설 때문에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겁니다. 이런 것을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기독교 교리로 보자면 잘못된 윤회사상이 담겨있지만, ‘선악에 대한 결과를 후에 받게 된다 또는 죄 값을 치른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불교적 윤리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질서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물리적인 세상만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 그리고 ‘생태계의 질서’가 <물리적인 창조질서>라면, 하나님은 <도덕적 질서>와 <영적 질서> 또한 창조해 놓으신 것입니다. 트럼프의 경우는 도덕적 질서에 해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질서에 의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영적 질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원리와 질서를 말합니다(요14:6).

14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을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敬畏)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이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런 창조질서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겁니다. 누구도 이 질서를 더하거나 빼거나 할 수 없다는 겁니다.

15절에서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즉 영원토록 계속 이 질서(우주의 질서, 자연의 질서, 생태계의 질서, 도덕적 질서, 영적 질서)는 돌아가게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후란츠 델리취라는 학자는 이 구절의 사상을
“하나님의 통치는 변치않는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부여하신 창조적이고 도덕적인 질서는 동일한 법칙으로 동일한 현상들을 일으킨다. 하나님의 통치는 존재하며 존재해 왔던 것을 다시금 일어나게 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도 여전히 이 창조질서는 적용된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이 창조질서에 역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인생이 될 것이지만, 불응하며 역행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마땅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창조질서를 우주와 우리의 인생 가운데 두셨겠습니까? 그것은 14절 하반절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외(敬畏)’라는 말의 한자는 ‘공경할 경(敬)’자와 ‘두려워할 외(畏)’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선생이든, 목사든, 부모든… 공경할 마음이 없으면 두려워하지도 않는 겁니다. 알면서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겁니다.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히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내 인생 속에 적용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창조질서에 역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기업과 우리의 사회 그리고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교회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역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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