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으려면”

<전도서7:8~10> 

11월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꺽고 미국 45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트럼프 후보가 우여곡절 끝에 승리의 축배를 마시게 되었지만 앞으로 4년간이 더 중요할 겁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자국의 이익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치, 경제, 안보…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질서와 균형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책임과 의무(혹은 소명)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4년 임기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할 겁니다. 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같이 퇴임 때까지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화려하게 마무리 하느냐? 아니면, 슬픈 비유가 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현 대통령처럼 국민들의 분노 끝에 조롱을 받으며 조기 퇴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비단 대통령뿐이겠습니까? 직장생활의 시작도, 새로운 기업을 오픈할 때도, 결혼생활도, 새로운 사람들과의 어떤 만남도 또는 저처럼 교회를 개척하는 사역도… 시작은 큰 기대와 설레임 속에서 시작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끝이 좋아야 하는 겁니다.

‘용두사미(龍頭蛇尾)’와 같이 시작은 용의 머리와 같이 화려하지만 꼬리가 뱀의 꼬리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어떤 관계이든 시작했다면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둬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끝이 중요합니다. 뭐든 시작은 끝보다 쉽습니다. 끝이 좋으려면 시작보다 몇 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전도서를 통해서 끝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몇 가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을 낮추라(교만하지 말라)
8절을 보시면,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끝이 좋으려면 교만하지 말고 마음을 낮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다툼은 교만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고,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그런 사람의 주변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내 주변에 다툼이 많습니까? 그렇다면 혹시 내가 교만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마음을 낮추기 시작하면 다툼은 사라지기 시작할 겁니다. 그런 사람 주변에는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곧고 딱딱한 나무는 강풍에 부러질 수 있지만, 유연한 대나무는 쉽게 부러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유연함을 갖고 있어야 끝이 좋을 수 있는 것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가 되는 것은 성경의 원리인 것입니다(참조, 잠언18:12)

둘째, 감정을 조절하라(쉽게 화 내지 말라)
9절을 보시면,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사람의 몸에 흐르고 있는 성격과 기질은 바꾸기가 어렵지만, 우리의 성품은 얼마든지 훈련이 가능하고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기질적으로 쉽게 화내는 성향을 갖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아가는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쉽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쭉 잘 해오다가도 한번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화를 내면서 모든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의 싸움 중에 하나입니다. 쉽게 화를 내며 살면 자주 실수하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때로는 너무 클 때가 있습니다. 쉽게 화내는 것을 자제하고, 자신의 감정만 잘 조절해도 끝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불평하지 말라(현실에 최선을 다하라)
10절을 보시면,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이것은 현실에 대해서 불평만 하고, 과거의 찬란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Exodus)해서 자유의 몸으로 광야에서 생활할 때,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 애굽에는 광야와 같이 먹을 것도 물도 없는 곳이 아니라, 비교적 넉넉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그들은 애굽인들의 노예였고 대대로 노예로 살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처지였습니다. 내가 자식을 낳아서 자식을 위한 어떤 꿈을 꿀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대로 노예로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애굽에서 탈출해 자유의 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불평하고, 과거의 종의 신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런 태도는 결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 유신정권 때 故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을 높이 평가할 수는 있지만, 그런 독재체제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 있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은 결코 끝이 좋을 수 없습니다. 지금 현실 속에서 감사를 찾고, 긍정적인 안목으로 더 발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들을 찾을 때 끝이 좋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낮추고(교만하지 말라), 감정을 조절하고(쉽게 화내니 말라), 불평하지 않을 때(현실에 최선을 다하라) 끝도 좋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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