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죄를 무시하지 말라”

<창세기 9:18~29> 

종종 은행원이 고객들의 돈을 횡령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2013년에도 전주에 있는 한 은행의 전직 은행원 한 사람이 붙잡혔었는데, 그는 2005년에 허위로 매출전표를 작성해서 120여명의 고객 돈 50억 원을 횡령해 달아났다가 8년 만에 붙잡혔다는 겁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50억 원이란 돈이 얼마나 큰돈입니까? 그런데 그런 엄청난 돈을 횡령한 겁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50억 원을 횡령하려고 했겠습니까? 돈을 만져보다 보니깐 돈에 조금씩 욕심이 생겼을 겁니다. 그래서 처음엔 한 두 번씩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약간의 돈을 횡령해 보다가 점점 그 금액이 커졌을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라는 것이 처음부터 엄청난 범죄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속담이 있듯이 처음에는 그렇게 티도 나지 않는 작은 것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대담해지고 결국 그 죄의 성향은 큰 범죄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작은 죄 하나라도 그걸 무시하면 안 되는 겁니다.

오늘 본문의 노아와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는 성경 속에 있는 난제(難題) 중에 하나입니다. 대홍수가 끝나고 노아는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포도농사 였는데, 포도를 수확해서 포도즙을 담갔는데, 그것이 발효가 되어 포도주가 되었던 거 같습니다. 물이 좋지 않았던 그 지역에서 포도즙과 포도주는 그들에게 아주 훌륭한 음료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아가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신 겁니다. 그래서 취해 그의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누워 있었던 겁니다.

22절, 23절을 보시면,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이 부분에서 무엇이 문제가 있었는지 찾기가 사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인 함의 태도와 셈과 야벳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 이후의 문맥을 보면, 이 일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던 거 같습니다.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옷을 벗고 쓰러져 잠든 모습을 보게 된 함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밖에 나와서 형과 동생에게 알렸는데, 단순히 그 사실만을 알린 것보다는 아버지 노아의 실수를 비아냥 거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것이 사람 속에 있는 죄의 속성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봤을 때, 그것을 덮어주는 것이 주님의 마음이라면, 그것을 떠벌리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악한 마귀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인 셈과 막내아들인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뒷걸음쳐 들어가서 노아의 하체를 덮어주게 되는데, 이 때 그들의 얼굴을 돌이키고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들은 좋은 마음, 선한 마음을 가졌던 겁니다. 결국 후에 노아가 이 일을 알고 어떤 예언적인 말을 남기게 되는데,

25절에서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절에서는 셈에 대해서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절에서는 야벳에 대해서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아버지의 실수를 덮어주지 않고 떠벌리고 비아냥거렸던 함과 그의 아들인 가나안은 형제의 종이 되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좋은 마음, 선한 마음으로 실수를 덮어주었던 셈과 야벳은 복을 받는데, 먼저 야벳은 창대하게 되어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된다는 겁니다. 10장에서 보면, 셈은 아시아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함은 아프리카 사람의 조상 그리고 야벳은 유럽 사람들의 조상이 되게 됩니다.

장자인 셈(아시안)은 영적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셈의 후손으로 오시게 됩니다. 야벳이 셈의 장막에 거한다는 것은 영적 영향력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유럽의 역사는 기독교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창대케 됨을 경험하게 되는데, 모든 철학, 과학, 문학, 문화, 예술 등 모든 영역에 있어서 놀라운 발전을 이룩하게 됩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후손인 아프리카계는 역사 속에 오랫동안 지배받는 민족들로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은 ‘과연 함의 잘못이 그렇게 큰 저주를 받을 만큼 잘못한 것인가?’하는 겁니다. 그러나 함의 잘못 자체는 큰 잘못이 아니고, 그 함의 잘못 때문에 엄청난 저주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함의 치우친 태도에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이것을 잠언에서는 ‘비뚤어진 마음’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처음엔 작은 죄로 시작했는데, 후에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것과 같이 노아의 아들 함이 죄를 향해 방향이 틀어져 있었던 겁니다. 결국 그 후손들이 하나님 앞에 벌을 받을 만큼 죄의 성향이 컸던 것이고, 그 일에 대한 벌이 그 후손들에게 그렇게 나타났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노아의 예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작은 죄라고 하지만 방향이 그 쪽으로 틀어져 있으면 그것은 언젠가 큰 죄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 작은 죄와 실수까지도 우리 자신에 대해 단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큰 죄도 막을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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