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그리고 장애물”

<창세기 11:17~32> 

‘소명과 사명’이란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비슷한 표현이지만 내용상에 있어서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소명(召命)’이란 말의 영어단어는 ‘Calling’ 즉, 부르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소명은 왕이 신하를 부르거나,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부를 때 쓰여 지는 표현으로 그 부름을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명(使命)’이란 말의 영어단어는 ‘Mission’ 즉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미션이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소명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다는 것이고, 그를 부르셨다는 것은 그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사명 즉 미션을 맡기기 위해 부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소명 없이 사명은 없고,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소명을 받지 않았거나 소명의식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소명(Calling)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데, 그 부르심에 쉽게 응답하고 그 소명에 순종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전에는 내 생각과 내 뜻 그리고 내 계획에 따라 살았었는데, 이제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그 부르신 자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거기에는 ‘자기 부인’이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 처음 소명에 응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그 소명에 응답하기까지 많은 장애물들이 있는 겁니다.

어떤 분들을 전도할 때 그 한 분이 교회 한 번 나오는 것도 쉽지 않고, 교회에 나왔다 하더라도 그 분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하고 변화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그 전에는 내가 기준이었는데, 이제는 누군가(하나님) 나를 부른다고 그 부름에 순종하며 나간다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전도된 분이 한 두 주 교회 출석 하시는가 했더니 왜 이렇게 주일날 마다 교회 못나가게 할 만한 일들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소명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을 보통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데, 오늘 본문 창세기 11장 27절부터 32절은 그 아브라함의 가정과 가족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27절). 데라의 첫째 아들일 가능성이 큰 하란이란 아들은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습니다(28절).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여호수아 24:2절에 보시면,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31절에 보시면,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하나님께 처음 부름 받은 사람이 아브라함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구절에서는 데라가 도리어 주체가 되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2~4절을 보시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이 세 구절을 통해 오늘 본문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여호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상 숭배자였던 아버지 데라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신앙을 바꾼다는 것이 고대사회 속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데라의 심경에 어떤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는데, 아브람이 어느 날 ‘여호와 하나님이란 분을 만났고, 그 분이 이 땅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 하신다’고 하는데, 그 말이 너무 진지해서 고민이 되던 차에, 큰 아들로 보여 지는 아들 ‘하란’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은 겁니다. 어쩌면 이러 저러한 이유들로 데라는 아브람의 말대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가려고 했는데, 도저히 고향 땅을 떠날 수가 없어서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하란’이란 지역에 머물렀고, 거기서 데라는 결국 가나안으로 가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부르심이 있을 때, 그것에 쉽게 순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순종하지 못할만한 여러 가지 장애물들도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따른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데라도 그 부르심에 순종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것은 우리를 향한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장애물이 있어도 순종하십시오. 순종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장애물을 극복하고 순종해야 할 주님의 부르심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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