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이 아닌 언약을 믿어라”

<창세기 15:2~6>

‘대안(代案)’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자로는 ‘대신할 대(代)’자를 쓰고 있는데, ‘어떤 안을 대신할 다른 안’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 대안학교가 많이 생기고 있는 이유가 공교육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겼고, 그것을 보완해 줄 다른 교육을 찾다 보니깐 대안학교들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런 현상들을 통해서도 교육에 있어 여러 가지 유익과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늘 대안만을 찾다보면 본래 집중해야 할 것을 소홀히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 문제가 있다면 거기에 온 역량을 집중해 대안학교가 필요 없는 그런 공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국가의 미래가 소망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들도 하나같이 ‘공교육문제’를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도 공약을 내걸고 있습니다. 어떤 훌륭한 대안학교도 좋겠지만, 결국 대다수의 자녀세대들이 영향 받으며 성장해야 할 공교육의 현장에 계속 문제가 있다면 소수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는 대안학교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닐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람은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만나게 되면, 나름대로의 어떤 대안을 준비해 놓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믿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과 마음에 사로잡히게 될 때 우리는 믿음의 방법이 아닌, 인간적인 대안을 준비해 놓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절에서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동북쪽의 강대한 연합국들을 기습 공격해 그들을 쳐부수고 롯과 소돔사람들을 구원한 영웅은 되었지만, 앞으로 아브라함은 어떻게 될지 모를 보장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연합국이 전열을 정비해 아브라함을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그 막강한 권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전멸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줄 것이다. 내가 너를 보호해 줄 것이다. 내가 너의 보상이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아브라함 마음속에 의심이 일어났던 거 같습니다. ‘아니 벌써 오래전에 주시겠다고 하셨던 아들도 수년째 소식이 없는데… 보호해 주시겠다는 이 말씀을 과연 내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하는 의심이었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2절과 3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고대 사회에서 후손이 없을 때에 양자를 들이는 관습이 있었는데, 아브람은 만약 하나님께서 아들을 안 주시면 주변의 관습에 따라 아브라함의 종들 중에 그 집에서 태어나 자란 한 종을 그의 상속자로 삼으려고 대안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도 오랫동안 기도했던 일이 잘 이뤄지지 않게 되면 어떤 대안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또는 분명 믿음으로 뭔가를 시도하고 도전하고 있는데 그게 혹시나 잘 안될 거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또 다른 대안을 찾는 겁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갈 생각은 안 하고 자꾸 이러 저러한 인간적인 대안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도 아닌데, ‘그거 아니면 이거라도…’라는 마음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역시 수년간 믿음생활하고, 기도생활 했었지만 아직 땅을 받은 것도 아니고, 자식을 얻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점점 더 들어가고, 몸에서 기력은 점점 떨어져 가는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이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대안으로 당시 고대사회에서 행해지던 양자를 들이는 방법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4절과 5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대안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상속자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을 데리시고 밖으로 나가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보여주시면서 그의 자손도 그렇게 셀 수 없이 많게 될 것이라는 언약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위대함이 나타나는데, 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대안을 만들어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대안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믿을 것을 거듭 요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겁니다. 그분의 언약을 믿었던 겁니다. 분명 여러 가지 상황들이 아브라함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두렵게 만들었고, 의심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습니다. 대안에 대한 믿음보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의 크기를 더 키우셔야 하는 겁니다.

때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할 만한 여러 가지 상황들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이렇게 저렇게 계속 변하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게 응답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24절과 25절에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그 언약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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