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방법을 고집하라”

<창세기 16:1~4> 

지난 주일예배 설교 서론에서 T-Times라는 웹 콘텐츠의 『다이슨(Dyson)은 성공하고 한경희(HAAN)는 실패한 이유』라는 기사를 잠시 우리 성도들과 나눴었습니다. 둘 다 청소기 만드는 회사인데, 영국의 다이슨은 진공청소기를 만들어 성공했고, 한국의 한경희생활과학에서는 스팀청소기를 만들어 성공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이슨은 진공청소기라는 품목에 집중해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기술을 발전시켰고 그 성공신화를 계속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경희생활과학은 스팀청소기가 시들해지자 ‘냄비세트, 무선주전자, 믹서기, 식품건조기, 자세교정 책상…’ 등등 스팀 청소기와 전혀 다른 그냥 돈이 되겠다 싶으면 이것저것 새로운 품목을 만들어 팔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연이어 실패를 반복하다 현재 자금난에 허덕이며 워크아웃상태(재무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하나 더 예를 들자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쓰러져 가던 애플에 돌아갔을 때, 애플은 주력 품목이었던 컴퓨터 외에 프린터와 디지털 카메라, 각종 주변기기등을 생산해 내는 애플답지 않은 회사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생산하고 있었던 기존 제품의 70%에 해당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내쳐 버리고, 그가 갖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오늘 날의 세계 브랜드 가치 1위에 해당하는 새로운 애플을 만들어 놓을 수 있었던 겁니다.
본질에 충실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는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방법이 잘 안 되면, 다른 방법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 고집하던 방법이 잘못된 방법이라면 분명 신속하게 방향을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길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그 방법을 고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때로 오랫동안 응답이 안 되고, 그 길이 비좁은 길을 가야하고 십자가를 져야 할 상황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길이 옳은 길이며, 그것이 우리 신앙인들에게 본질적인 일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에는 고집을 피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수년간(10년 정도) 믿음생활을 해 왔습니다. 여러 가지 위기도 있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기간도 있었지만, 그 때마다 주님은 말씀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하늘의 별들을 보여 주시면 다시 한 번 자손에 대한 약속을 하셨을 때, 그가 그것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절과 2절을 보시면,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출산하지 못하였고 그에게 한 여종이 있었으니 애굽 사람이요 이름은 하갈이라. 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가나안 땅에 온 지 10년이 되었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또 자손에 대한 언약을 받은 지도 10년이 되었고, 그 사이 사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확인시켜 주셨지만 이 부부에겐 임신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2절에서 사라가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라고 말하고 또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믿음의 방법으로는 안 되니깐, 세상적인 방법으로라도 해 보자’라는 겁니다.

사라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육체적으로 임신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어져 갔습니다. 자신이 없어져 가면 마음이 조급해 져 갑니다. 자신 있는 사람은 절대 조급하지 않습니다. 영적 자신감, 믿음에 자신 있는 사람 역시 조급해지지 않는 겁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안 되니깐 세상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방법들을 동원해서라도 해 보자는 것은 여러 가지 부작용만 가져올 뿐입니다.

4절을 보시면,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였더니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

고대사회에서 본처에게 자손이 없을 경우에 첩을 통해서 자식을 낳는 풍습이 있었고, 사라와 아브라함은 그 방법을 써 보려고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주효했는지 여종 하갈은 임신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다른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종인 하갈이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여주인을 멸시하기 시작한 겁니다. 아브라함 가정은 늘 미움과 다툼이 있는 작은 전쟁터였습니다.

차라리 믿음의 방법을 고집하며 나갔다면 어땠을까요? 아브라함에게 한 번도 아니고 수차례 언약의 말씀을 확인해 주셨었다면, 그 시기가 문제였지 반드시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주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끝까지 믿음의 방법을 고집해야 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 위에 있어야 합니다. 거기가 우리가 있어야 할 인생의 자리입니다. 그것이 우리 인생의 본질입니다.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들어도 혹여 그렇게 우리의 생이 마쳐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부끄럽지는 않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믿음의 방법을 고집해야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9절에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였습니다. 믿음의 방법을 고집하십시오.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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