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처”

<민수기 35:1~21>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그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수 없고, 그 어디에서도 보호 받을 수 없는 어떤 상황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 처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막막한지를 잘 압니다. 그 전에 내 주변에 가깝게 있던 친구들조차 나를 슬슬 멀리합니다. 그 전엔 불러주는 데도 많고, 갈 곳도 많았는데, 그런 환난 속에서는 만나자 하는 사람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어집니다. 때문에 그 인생의 험난한 풍파를 여린 몸으로 홀로 견뎌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편 46:1절에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11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피할 수 있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기를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거기서 우리는 회복과 치유와 힘과 용기를 다시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 앞서 민수기 3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어떻게 각 지파별로 분배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민수기 35장에서는 지파들 중에 가나안 땅에서 따로 기업을 받지 않는 레위지파에 관한 땅 분배에 관한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35장 2절, 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이 받은 기업에서 레위인에게 거주할 성읍들을 주게 하고 너희는 또 그 성읍들을 두르고 있는 초장을 레위인에게 주어서, 성읍은 그들의 거처가 되게 하고 초장은 그들의 재산인 가축과 짐승들을 둘 곳이 되게 할 것이라”

민수기 26:62절에 보면, 레위인은 1개월 이상 계수된 사람이 2만3천 명 정도 되었습니다. 다른 지파들은 20세 이상 남자들을 계수했는데도 유다 지파 같은 경우는 76,500명이었으니깐 레위지파는 1개월 이상의 남자로 계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다른 지파에 비해 아주 적었습니다.

레위지파는 12지파의 계수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따로 기업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이었습니다(민18:20). 하지만, 레위인들도 그들의 가족이 있었고, 가축과 같은 것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살 곳과 가축들을 기를 곳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각 지파들이 그들이 기업으로 받은 땅에서 레위인들이 거처할 성읍을 떼어 주게 됩니다. 많이 받은 지파는 여러 성읍을 떼어 주게 되고, 적게 받은 지파는 레위인들의 거처로 적은 수의 성읍을 떼어 주게 하셨습니다(8절).

그리고 6절을 보시면,
“너희가 레위인에게 줄 성읍은 살인자들이 피하게 할 도피성으로 여섯 성읍이요 그 외에 사십이 성읍이라”

레위인들에게 줄 성읍은 기본적으로 <도피성>으로 지목한 요단강 동편의 세 성읍과 서편의 세 성읍을 포함하여 총 48개의 성읍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레위인들의 성읍은 다른 지파들과 같이 특정한 한 지역에만 몰려서 사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 12지파 전체에 골고루 흩어져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성읍 안에는 총 6개의 도피성을 포함하게 했습니다.

도피성을 두는 이유는 11절, 12절을 보시면,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피하게 하라. 이는 너희가 복수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도피성 제도는 사람이 고의가 아닌(악의가 아닌 / 21절) 부지중에 누군가를 죽게 만든 경우에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 사람에게 복수하기 전에 그가 회중 앞에서 정식적인 재판을 받을 때까지 생명을 보존하며 피할 수 있게 한 제도였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누군가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에 죄가 없다 할 수 없겠지만, 하나님은 그가 정식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시간을 만들어 준 겁니다. 그도 그 도피성에 피함으로 하나님 말씀에 의한 보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업을 받지 못했던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각 지파 가운데서 살게 하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그 지파 안에서 말씀의 종으로, 기도의 종으로, 영적인 종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광야시대와 달리 넓은 가나안 땅 전역에서 성전(성막)이 있었던 예루살렘까지 오고가기는 쉽지 않았기에 레위인들이 각 지역에서 백성들의 기도와 말씀 등의 영적 생활을 돕게 했던 겁니다.

이것은 그들이 넓은 가나안 땅에 흩어져 지내지만,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 가운데 일하시고 계심을 느끼게 했을 것입니다. 또한 도피성 제도를 통해서 환난을 당한 모든 이들이 보호와 위안을 얻었던 겁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피난처와 임마누엘로서 함께하심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늘도 그분 안에 피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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