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4:19~31>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서 ‘예수’라는 이름을 검색해 보면,
“나사렛 예수는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 등 여러 종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에서는 삼위일체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본질에서 한분 하나님이라는 신앙 고백에 따라 예수를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강생한 하나님, 완전한 사람, 완전한 하나님이라 여긴다. 흔히 히브리어로 ‘메시아'(기름부음을 받은자라는 의미)를 번역한 말로 헬라어 ‘그리스도’를 붙여 예수 그리스도라 부른다.”
예수라는 인물에 대해서 백과사전은 역사 속에 현존했던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에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성자하나님임을 말하고 있고,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뜻을 사전적으로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신자들 중에서도 예수라는 인물을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역사 속에 실존했던 인물로 알고 있다고 해서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그냥 역사 속의 인물로만 알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분을 향한 전적신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신적속성과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 등등 모든 것을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지식으로서만 ‘아는 것(지식)’과 ‘믿는 것(전적 신뢰 또는 신앙)’은 차이가 있는 겁니다. 불신자라 할지라도 누구나 지식적으로 알고 인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것은 전적인 신뢰를 말하며 그것은 ‘신앙(信仰)’을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19절과 20절을 보시면,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
지금 유다를 향한 전쟁의 경보가 울리고 있고, 중요한 것은 그 전쟁에 있어 유다의 패망이 예고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 전쟁은 하나마나 유다의 패망이라는 결과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자를 예레미야로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의 마음이 아프고 찢어지는 상태인 것이고, 본문의 화자를 하나님으로 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 역시 슬프고 아픈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전쟁으로 인한 유다의 패망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20절)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한다
-(20절) 장막과 휘장은 갑자기 파멸되도다(성전파괴)
-(23절)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23절)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전쟁의 불과 연기로)
-(24절) 산들이 진동하고 요동하며(병거와 말발굽 소리로)
-(25절) 사람이 도망가고 새들로 도망갔다
-(26절) 온 땅이 황무지가 되었고
-(26절)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진노 앞에 무너졌다
-(29절) 모든 성읍 사람들이 수풀과 바위에 숨었다
-(29절) 모든 성읍은 버림을 당하여 사는 사람이 없다
-(31절) 여인의 해산 소리와 같은 절규가 있을 것이다
왜 이런 처참하고 끔찍한 재앙이 올 수밖에 없었습니까? 22절을 보시면,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이 구절 안에는 주님의 안타까움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유다백성은 수많은 족속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삼으셨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이 지각이 없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하반절에서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데, 그러니깐 악을 행하는데에는 지각이 있는데, 선을 행하는 데에는 무지하고 어리석기까지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겠습니까?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몰랐겠습니까?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결코 모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떤 민족들보다 구체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배워 소유하고 있었던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론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지식이 있는 것’과 ‘믿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그들이 불순종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복이 있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시고,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자에게 구원과 축복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다면 순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식은 있으되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는 바를 믿습니까? 정말 믿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태도와 우리의 영적 자세가 과연 옳습니까? 예를 들어 기도의 능력을 믿는다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고 찾는 자에게 복을 주실 것을 확고하게 믿는다면, 우리가 과연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수나 있겠습니까? 진정한 지식은 믿음으로 증명되고, 그 믿음은 순종으로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는 바를 믿고 순종합시다. 그에게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