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을 미루지 말라”

<사도행전 5:27~42> 

제가 작년에 새 성전 확장공사를 하면서 건강이 좀 상했었습니다. 공사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업체에 맡기지 않고 우리가 직접 공사를 했었는데, 3월부터 7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저는 육체적으로는 비정상적인 생활패턴으로 사역과 공사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상가 특성상 저녁8시부터 새벽2시까지 새성전 공사를 해야 했고, 집에 가서 씻고 잠시 눈을 붙였다가 다시 4시부터 새벽기도 차 운행 그리고 새벽기도회 인도, 낮에는 좋고 저렴한 자재를 사러 세부 시내를 돌아다니며 차에 자재를 싣고 오고, 중간에 심방할 일이 있으면 심방하고, 오후에는 새벽설교를 준비해야 했고, 그리고는 다시 저녁8시부터 공사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이런 생활패턴으로는 건강이 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공사가 끝날 때까지는 제가 많이 피곤하긴 했어도, 크게 아프지 않았기에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7월말에 공사가 어느 저도 마무리 되고, 8월 초에 제가 혈압이 너무 떨어져 쓰러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곤 건강이 이전처럼 회복이 안 되고 계속 힘이 드는 겁니다. 직감적으로 제 몸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9월 한국에 잠시 들어가 건강공단에서 무료로 할 수 있는 건강검진을 필리핀에 들어 온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받았고, 그 과정 중에 갑상선에 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겁니다. 다행히 11월에 수술도 할 수 있었고, 제가 다시 사역에 복귀해서 이렇게 설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 모든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제게 신호를 주시고, 저를 고치셔서 아직 조금 더 사용하시려고 이런 환경들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느낍니다. 만약 제가 그런 증상들이 있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건강을 돌보지 않고 무리하게 2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건강검진도 안 받고, 사역만 했다면 제 안에 있었던 암이 어떻게 어떤 장기로까지 퍼져 나갔을 지는 장담할 수가 없는 겁니다.

대부분의 병에는 ‘전조증상’이 있어서, 우리 사람이 미리 조금씩 대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신체를 만드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부분에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마음에 어떤 순종을 원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유대 사회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갖고 있었던 『산헤드린 공회』의 관리들은 예수님의 사도들을 다시 체포합니다.

27절과 28절을 보시면,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격인 대제사장은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가르치거나 그 이름을 전하지 말라고 명령했던 것을 어기고 왜 또 백성들을 가르쳤느냐’라고 심문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어떻게 대답합니까? 29절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도들은 사람의 뜻과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산헤드린의 관리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기득권과 영향력이 감소될까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욕망에 따라 살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욕망의 크기가 더 큰 겁니다.

33절에서 39절에는 산헤드린 공회의 바리새파 사람인 ‘가말리엘’이라는 백성들에게 존경받는 율법교사의 중재가 나옵니다. 후에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사울(후에 바울 사도)이 바로 이 가말리엘의 수하에서 배웠으니, 바울이 예수 믿기 전에 가말리엘의 제자였었다는 겁니다.

가말리엘은 두 가지 사건을 예를 들며, 그 재판을 중재하게 되는데, 거짓 선지자였던 드다와 정치적인 폭동을 일으켰던 갈릴리의 유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이 백성들을 선동하고 폭동을 일으켰지만, 그들이 죽고 망하니 그들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38절부터 39절을 보시면,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존경받던 율법교사 가말리엘은 그래도 어느 정도 영적인 분별력과 균형을 잡고 있는 거 같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산헤드린의 관리들은 명백한 복음의 증거들 앞에서도 여전히 자기 고집을 부리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공회의 회원인 가말리엘조차도 논리적으로 그 사실을 경고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끝까지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 줄 알면서도 우리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보다 내 생각과 내 욕심과 내 계획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것은 39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순종은 미루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어떤 병의 전조증상처럼 빨리 순종할수록 더 큰 해를 막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에 순종해야 할 말씀과 뜻을 알려주셨는데, 계속 순종을 미루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순종을 미루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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