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속에 꽃 피운 복음”

<사도행전 11:19~30> 

제가 열아홉 살에 친구의 전도를 받아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를 주셔서 교회 다니자마자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를 오래 다녀도 믿음이란 게 잘 안 생긴다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신데, 교회 다니자마자 바로 모든 것들이 믿어지기 시작했으니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다니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세상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참된 평안과 기쁨이란 게 제 안에서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복하게 교회 다닌 지 5개월 만에 제가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9도 40도를 오르내리는 열과 심한 기침과 가슴의 통증과 호흡마저 곤란해져서 누워있지도 앉아있지도 서 있기도 힘든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때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누군가 돌봐 줄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상황이 안 되었고, 의료보험도 없었고 그래서 비싼 병원비 때문에 병원에 가서 진찰 받을 생각조차 못했던 거 같습니다. 저는 그 때 조금만 더 방치되었더라면 제가 살던 작은 자취방에서 죽었을 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어떻게 해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결핵이었고, 당장 입원해서 치료 받아야 했고, 그 이후로도 12개월 동안 약을 먹으면서 치료과정을 가져야 했습니다. 아직도 그 때 기억이 생생합니다. 병원침대에 눕자마자 병원비가 걱정되고 ‘하나님, 왜 이런 시련을 주세요? 그래도 제가 교회 열심히 다녔잖아요. 저는 이렇게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않아요…’하면서 투정부리듯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전서 4:12절, 13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성경도 잘 몰랐지만 그 시련의 때에 주님께서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정말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교회 다니는 게 좋았고, 교회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좋아서 교회를 다녔다면, 그 일로 인해서 제 인생의 영적 전환점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진짜 믿게 되었던 겁니다. 세계최대의 부자 록펠러가 53세에 1년 밖에 못 산다는 시안부 선고를 받은 이후의 그의 인생이 완전히 뒤 바뀌었듯이 그 때의 그 일이 제게 그런 전환점이 되었던 겁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련이란 것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오는 어떤 시련이 우리를 절망케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Good News)’은 시련 속에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받았다면 여러분에게 혹 시련이 온다 할지라도 거기서 향기로운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11:19~21절을 보시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사도행전 6장과 7장에 보면 예루살렘에서 스테반 집사님이 유대인들에 의해 순교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외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1절에 보시면, 지중해안에 위치한 베니게(페니키아)와 구브로(Cyprus) 그리고 시리아의 안디옥까지 흩어졌던 겁니다.

그런데 이들이 박해를 피해 흩어졌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흩어진 자들이 처음에는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하다가, 이방인인 헬라인들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오게 되고 이방지역 최초의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그 때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22절부터 26절까지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사도들이 이 소식을 듣고,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를 보내서 안디옥 교회를 돌보게 했고, 24절에 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혼자 그 큰 교회를 돌보기 버거워서 바나바는 다소에 머물던 사울을 데려와 함께 1년간 안디옥 교인들을 양육했습니다.

26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여기서 최초로 믿는 자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칭호가 생겨난 겁니다. 그 안디옥 교회는 놀랍게 부흥했고, 27절부터 30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고통당할 때, 예루살렘 교회를 그들이 도울 정도로 성장했던 겁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처음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시련으로 인해서 복음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안디옥과 땅 끝까지 퍼지게 되었던 겁니다. 박해가 없었다면 그 복음은 유대 땅에만 머물렀을 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시련 속에 복음의 꽃이 활짝 피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기치 않았던 어떤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시련으로 인해 하나님은 더 향기로운 꽃을 여러분의 인생 속에 피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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