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안에서 두려워 말라”

<사도행전 20:1~16> 

지난주에 미국 플로리다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참사로 17명의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총격범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수많은 징후가 있었다. 그의 기괴한 행동 때문에 그는 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이웃과 급우들은 범인이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항상 당국에 보고돼야 한다”는 글을 올림으로, ‘총기 규제’에 대한 문제 보다는 범인의 ‘정신 건강’을 탓하는 발언을 통해 미국이 시끌시끌합니다.

미국은 전 세계 인구의 5%를 차지하지만, 총기 난사범의 31%(99명)가 미국인이고(CNN), 미국인이 총격으로 사망할 확률은 영국인보다 51배가 높다(WHO)고 합니다. 올해만 해도 벌써 미국에서 일어난 18번째 총기 난사 사건이고, 이렇게 문제가 심각한데도 미국총기협회와의 정치적 컨넥팅(Connecting)으로 인해서 현 정권은 총기규제에 대한 입법을 무시하고 있는 겁니다.

당선 1년이 조금 넘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30~40% 대로 떨어져 있습니다. 대선 때 트럼프를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제 그를 지지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도 총기규제에 대한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서 동의했었고, 그를 선출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에게도 전혀 책임이 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습니다. ‘누가 그럴 줄 알았나…’ 우리가 살다보면 이런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나름대로 고민도 많이 해 보고, 신중의 신중을 기해 어떤 일을 결정하는데, 결과는 장담할 수가 없는 게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경험과 판단보다 성령(Holy Spirit of GOD)의 인도를 구하며, 그 인도하심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신다면, 이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통해 터키의 에베소 지역에서의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마치고, 마게도냐(그리스) 지역으로 돌며 이전에 세웠던 교회들을 견고히 하는 일을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돌아 터키의 ‘드로아’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1~6절).

7절을 보시면,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바울이 이제 떠나가면 언제 다시 또 만날 기약이 없었기에 다음날 날이 새기까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드로아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말씀을 경청했었는데,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다 졸아버린 겁니다. 그리곤 3층에서 떨어져 죽게 된 겁니다(8~9절).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의사로서 사망진단을 내린 겁니다.

10절을 보시면,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이 부분은 마치 엘리야나 엘리사가 죽은 자를 살렸던 모습이 연상이 되는데(왕상17:21, 왕하4:34,35), 바울도 그 청년을 안아서 다시 살리는 기적을 일으키게 되는 겁니다. 그리곤 다시 밤을 새며 말씀을 나누다 성도들과 작별하고 떠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배를 타고 ‘밀레도’라는 지역으로 가는데, 16절에 보시면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합니다. 물론 그가 서두르는 이유는 그리스와 터키 지역 교회에서 모은 구제헌금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급히 전해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고, 유대인의 큰 절기인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각 나라와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좋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울의 예루살렘 행은 바울의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9:21절을 보시면, “…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작정하여’라는 말의 헬라어는 ‘에테토 엔 토 프뉴마티(etheto en tw Pneumati)’라고 하는데, 직역을 하면 “성령 안에서 결정하였다”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20:22절에서도 그는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던 도중 죽은 유두고를 살리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 겁니다.

우리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임에도 ‘정말 이것이 잘한 결정인가?’를 염려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한 청년이 떨어져 죽었다가 살아나는 기적을 통해 그런 부활의 믿음을 갖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결정은 ‘이렇게 될 줄 몰랐다…’라고 후회할 수 있으나, 성령의 인도에 따라 갈 때 거기에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그림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성령 안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크고 작은 여러 가지 결정을 해야 할 때, 성령 안에서 결정하시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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