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37~22:11>
탁월한 기독교 저술가인 ‘맥스 루케이도(Max Lucado, 1955~)’의 『목마름』이란 책에 19세기 스코틀랜드 바닷가의 한 식당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한편이 있습니다. 어느 어부가 그 날 놓친 큰 고기 얘기를 하면서 팔을 한껏 벌려 보였습니다. 때마침 곁을 지나던 종업원의 쟁반을 후려쳤고, 허공을 향해 날아간 찻주전자는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찻물이며 찌꺼기들로 흰 벽이 금세 엉망이 된 겁니다.
주인은 한 숨을 쉬며 더러워진 벽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에이 전체를 다시 칠해야겠어.” 그런데 그 때 그 식당에 있었던 한 신사가 나서면서 “그럴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한테 한 번 맡겨 보시겠습니까?”하는 겁니다. 어차피 다시 칠할 벽이었기 때문에 주인은 마음대로 해 보라고 했습니다. 신사는 화구 상자를 열더니 연필과 붓, 물감 등등을 꺼내 놓더니, 더러워진 벽에 쓱쓱 스케치를 하고, 벽에 묻은 얼룩을 이용해서 명암을 넣기도 하고 물감으로 색깔을 입히더니 점점 그림이 완성되어 갔습니다. 큰 뿔을 가진 장엄하고 멋진 사슴의 모습이었습니다. 신사는 벽화에다 서명을 하고 밥값을 치른 뒤에 총총히 길을 떠났습니다. 그 신사는 19세기 야생동물 화가로 이름을 떨치던 ‘에드윈 랜시어 경(Sir Edwin Landseer, 1802~1873)’이었던 겁니다.
맥스 루케이도는 이 이야기 끝에 이런 말을 남깁니다.
“화가의 손을 거치면서 실수는 걸작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똑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지저분한 삶의 얼룩들을 잘 연결해서 사랑의 표현으로 바꾸어 놓으십니다. 삶 하나하나가 그분의 걸작품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잘났는지,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서 자랑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오히려 약한 것들을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약하고, 실수 많고, 실패한 얼룩 투성이의 우리 인생을 당신의 걸작품으로 만드셨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2:9절에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과거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에 대해서 자랑했던 사람이라면, 이제 그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죄인이었었는지를 자랑합니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고, 자신의 약함이 드러날수록 실수와 실패로 얼룩진 우리의 인생을 치유하시는, 위대한 영혼의 화가이신 하나님이 자랑되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터키 지방에서부터 바울을 괴롭히던 유대인들도 그 때 예루살렘에 도착한 겁니다. 그리고 성전에 있었던 바울을 보고 다른 유대인들을 선동해서 말도 안 되는 죄목을 그에게 뒤집어 씌었고,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아 끌고나가 죽이려 했던 겁니다. 그 때 예루살렘의 치안을 담당했던 천부장이 성전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을 듣고 군사들을 데리고 현장으로 달려가 일단 바울을 체포했습니다(21:27~36).
천부장은 성난 군중들이 막무가내로 바울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바울을 그들로부터 분리를 했는데, 바울은 성난 군중들에게 변명할 기회를 달라고 천부장에게 부탁했고, 이에 천부장은 허락하게 됩니다.
3절을 보면,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 있는 자라”
유대인과 유대교도들 입장에서 바울은 사이비 이교도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정통 유대인이며 유대교 율법학자 중에 뛰어난 ‘가말리엘’이란 사람 아래에서 수학한 사람이고, 철저한 유대교인이었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4절과 5절을 통해 유대에서 일어난 기독교도들을 핍박하고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었고, 멀리 다메섹까지 가서 믿는 자들을 체포하러 갔었다는 말도 합니다.
그리고는 22장6절부터 11절까지 에서는 그 다메섹에서 있었던 특별한 체험을 간증하고 있는 겁니다.
22:6절부터 8절에서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기독교도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예수의 사도로 사역하고 있는 그에게 어쩌면 그것은 가장 부끄러운 죄와 과거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우리의 실수와 실패의 인생을 가장 아름다운 걸작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자랑하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련과 아픔과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실수와 실패의 얼룩들을 주님은 가장 아름다운 걸작으로 만들어 가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내가 약할 때 도리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안에 더 크게 머물고 계신다는 사실을 감사하시는 하루되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