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을 거스르지 말라”

<사도행전 22:30~23:11> 

어제 뉴스에 보니 『검찰, 박근혜에 징역 30년. 벌금 1천185억 구형…(연합뉴스, 2018.2.27)』이라는 헤드라인이 떴습니다. 앞으로 4월에 있을 선고로 형이 최종 확정되겠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래도 전직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피의자로 그런 구형을 받았다 하니 마음이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잘못을 범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벌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헤드라인에서는 『반복되는 대통령 수난사 MB 다섯 번째 포토라인 설 듯(서울경제, 2018.2.27.)』이라는 관련기사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 중에 검찰 포토라인에 선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4명(전두환, 노태우, 노무현 그리고 박근혜)이었습니다. 여기에 MB로 불리는 이명박 대통령도 곧 검찰 포토라인에 서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이 분들의 죄목은 ‘비자금 조성 의혹, 군사 반란,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뇌물, 차명 재산을 통한 횡령 및 탈세’ 등등입니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들의 모습이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람에게는 동물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양심(良心)’이란 것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선악을 판단하고 선(善)을 명령하며 악(惡)을 물리치는 도덕 의식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습니다. 그것은 외적 모양이 아니라 내적 형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 우리가 닮은 것이 ‘양심’이란 겁니다.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았을 지라도 그 마음에 ‘양심’이란 것을 담아 주신 겁니다. 사람의 양심이 많이 변질되었지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도덕적 기준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양심의 소리를 거스르면 그는 선이 아닌 악을 행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큰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 양심을 거스르면 부정과 비리가 그 권력의 크기만큼 커지는 거고, 일반인들도 양심을 거스르면 크기만 다를 뿐이지 선을 저버리고, 악을 행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폭도들처럼 일어난 유대인들에게 폭행당해 죽을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다행히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한 로마의 천부장에 의해 변론할 기회도 얻게 됩니다. 천부장은 유대인들의 대표격인 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 회원을 모아 ‘유대인들의 바울 고발 사건’의 진상을 알고자 했습니다(22장30절).

1절과 2절을 보시면,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 사도는 유대인들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 앞에서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말하게 됩니다. 정말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 양심을 거스르지 않고 온 맘을 다해 하나님을 섬겼던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대제사장인 아나니아가 곁에 서 있었던 사람에게 “그 입을 치라”고 명했던 겁니다.

그러자 바울은 3절을 보시면,
“바울이 이르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마치 예수님께서 외식하던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7)”라고 하셨던 것과 비슷한 말씀입니다. 겉은 새하얀 회반죽을 칠해 깨끗해 보이지만, 속에는 썩어 냄새나는 시체가 있는 무덤과 같은 죽은 신앙을 질책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은 종교적 특권과 물질적, 사회적 특권을 누리던 이들이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 같은 경우는 정치적인 힘이 상당했고, 당시의 아나니아 대제사장 같은 경우는 상당한 부를 축척한 인물로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 이익과 정치적 권력, 종교적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들의 신(god)이었던 겁니다.

그런 세속적인 이익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속적 가치였던 겁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무리 큰 기적을 일으키고, 선을 행하시고, 놀라운 말씀과 가르침을 한다고 해도 도리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겁니다. 사도행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사도들의 모습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똑같이 선을 행하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하지만 양심을 거스르는 이들은 그 복음을 계속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와 같이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라고 담대히 말할 수 있습니까? 누구든 쉽지 않은 고백일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3:16)”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심어두신 양심을 거스르는 것은 악으로 치우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한 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의의 자녀들로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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