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편에 서 있는가?”

<사도행전 23:31~24:9> 

지난 십 수 연간의 우리나라 정치 역사를 보면 보수와 진보의 구별이 뚜렷했고, 전통적인 보수 정당 안에서도 ‘친박(親朴)’과 ‘친이(親李)’로 나뉘어져 있었고, 진보 정당에서는 ‘노무현의 사람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정치인들도 있었습니다.

위에서 거론된 정치인들은 그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고, 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현 대통령 역시 ‘노무현의 사람’으로 불리는 사람 중에 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우리나라 정치가 발전해 가는 과정이겠지만, 누군가가 정권을 잡으면 그 정부의 핵심인물들은 당연히 그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로 내정되는 겁니다. 속된 말로 줄을 잘 선겁니다. 하지만, 과거 진보정권 이후 보수정권이 들어섰을 때 구(舊)진보정권의 측근들은 정치적 희생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보수정권 이후 진보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구(舊)보수정권의 측근들 역시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비참한 신세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의 편에 서는가? 하는 문제는 역사 속에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영원한 정권도, 영원한 권력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의 정치적이고, 세속적 이익에 따라 누군가의 편에 서나 한 순간에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통해서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2:44절에서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구의 편에 서야 하겠습니까?

예루살렘 치안대장인 천부장은 470명의 호송부대를 편성해 지중해의 가이사랴에 있는 벨릭스 총독에게 사도 바울을 보내게 됩니다.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던 바울을 천부장의 상급자였던 총독에게 보내 재판을 받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어떤 장로들은 ‘더둘로’라 하는 율법과 로마법에 해박한 변호사를 대동하고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가이사랴의 총독 앞에 나아갑니다.

24장 3절과 4절을 보시면,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변호사 더둘로는 총독 벨릭스에게 지나친 아첨으로 말문을 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벨릭스는 A.D.52~60년 까지 유대지방을 다스리도록 로마에서 총독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노예출신이었지만 자유민의 신분을 얻어 유대의 총독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 Tacitus, 56 ~ 117)’는 “노예의 마음을 가지고 왕의 권세를 휘둘렀던 인물”이라고 그를 평가했습니다. 매우 잔악한 인물이었고, 돈과 여자를 탐하였던 탐욕스런 인물이었으며, ‘피의 대학살’을 통해 유대인들의 폭동을 진압한 사건으로 아주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둘로가 뭐라고 합니까? ‘총독 각하 때문에 우리 민족이 태평을 누리고, 발전된 사회에서 살고 있어 크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로 당신을 번거롭게 하지 않기 위해 간단히 말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벨릭스에게 어울리지 않는 칭찬과 아첨의 말을 늘어놓아 그 마음을 얻고, 사도 바울을 처벌하도록 하는 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5절과 6절은 고발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고발의 내용은 두 가지 영역에서 죄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데, 첫 번째는 정치적 문제로 바울이 식민지 내에 있는 유대인들을 선동해 로마 제국에 반란을 꾀하는 우두머리로 몰아가고, 두 번째는 사회적(종교적) 문제를 말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의 성전을 더럽게 했다는 겁니다. 유대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당시 대제사장 아나니아 역시 A.D.48~58년 까지 대제사장으로 군림했는데, 잔인함과 탐욕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그는 제사장들로부터 십분의 일 세(貰)를 몰수해서 재산을 축적했고, 로마의 고관들에게는 아낌없이 뇌물을 바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유대인들에 의해 집이 불태워지고 재산을 빼앗기고, 그의 형과 함께 비참하게 죽임을 당함으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총독 벨릭스도, 그에게 아첨했던 대제사장 아나니아도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그들의 권력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지 않고 세상적인 권력과 물질과 탐욕 앞에 서 있었던 이들의 결말은 비참하게 마치는 것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법칙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에, 누구의 편에 서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 편에 서 있는 하루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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