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2:1~10>
2006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서른다섯 살의 한 가장은 차를 몰고 어린 두 자녀와 아내와 함께 캠핑을 떠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재미 교포 ‘제임스 김(James Kim)’이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폭설로 인해서 그 가족은 오리건주 국립공원 깊숙한 곳에 고립되고 말았습니다. 실종신고가 접수되고 수색대는 9일 만에 조난된 차량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구조된 사람은 제임스의 아내와 어린 두 딸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차 안에는 약간의 과일과 비스켓 뿐이었는데, 7개월 된 딸은 엄마의 모유를 먹고, 엄마와 4살짜리 딸아이가 차에 있었던 과일과 비스켓을 먹으면서 버티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빠인 제임스 김은 괜찮다고 차 안에 갇혀 있었던 7일 동안 전혀 먹지 않고 먹을 것을 딸들을 위해 계속 양보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아빠 제임스는 식량도 다 떨어져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직접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손전등 하나 들고 청바지에 운동화 하나 신고 나흘 동안 헤매다가 결국 싸늘한 죽음으로 발견되게 됩니다. 그런데 제임스가 발견된 곳은 가족들로부터 불과 0.8km 떨어진 곳이었는데, 눈 속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차량 주변을 헤메다가 결국 숨진 것입니다. 가족을 위해 마지막까지 초인적인 힘을 다하다가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에 미국 전역에 애도의 물결이 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부모의 사랑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울의 한쪽 편에 세계를 실어 놓고 다른 쪽 편에는 나의 어머니를 실어 놓는다면 세계의 편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
그 만큼 이 땅에서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로 부모의 사랑의 큰 것입니다. 제임스 김처럼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겁니다.
그렇게 큰 사랑을 가지신 부모가 사랑하던 자식을 버린다는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만약 그 부모가 그 딸을 버린다면, 만약 그 부모가 그 자식을 벌 한다면… 왜 그렇게까지 될 수밖에 없었을까요?
오늘 본문 1절을 보시면,
“슬프다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사 딸 시온을 구름으로 덮으셨는가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에 던지셨음이여 그의 진노의 날에 그의 발판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도다”
오늘 본문에는 유독 ‘딸’이란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1절과 4절과 8절에서는 “딸 시온” 그리고 2절에서는 “딸 유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 도시를 가리키는 이름은 모두 ‘여성 명사’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여성 명사고, 여기서 딸 시온과 딸 유다는 모두 예루살렘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말들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바로 그 딸에게 진노하셨다는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이렇게 진노하시기까지 되었다면 과연 그 딸은 아버지께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요?
그런데 마태복음 12:31절 말씀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이 말씀에 의하면 사람의 모든 죄는 다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 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시는데, 바로 그것을 끝까지 믿지 않고 거부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시온, 유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입니다. 말씀을 거부했다는 것은 성령을 거부한 것입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이 그 무엇보다 아끼고 사랑했던 딸 같은 존재라 할지라도 벌 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3:22절, 23절에서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이 말씀에서 증거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이 땅의 어떤 사랑보다 크고 오래 참으시는 사랑입니다. 어제 실수하고 또 범죄 했을 지라도, 다음 날 아침이면 또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그 사랑과 긍휼하심이 무궁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를 벌 하신다면, 이 땅에 남아있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사랑은 크고 무궁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언제까지 오냐오냐 하지는 않으신다는 겁니다. 딸처럼 사랑하는 존재라 할지라도 공의로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고, 여전히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있습니다. 속히 주님께로 돌아갈 때, 예루살렘의 비극과 같은 일을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그 기회를 잃지 마시고, 주님께로 돌아가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