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11~24>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OECD국가 중에 가장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통계입니다. 벌써 십 수년째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2016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10대 청소년들의 사망 원인 중에 30%가 자살입니다. 어떤 사고라든지, 질병이라든지, 폭력사건이든지 여러 가지 사망 원인이 있을 텐데 그 중에 가장 높은 것이 자살입니다. 그리고 2014년, 2015년, 2016년 해가 갈수록 청소년 자살률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열심히 공부만 잘하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었던 ‘동기’도 약해졌다(권일남 명지대 교수)”고 말하기도 하고, “지금 10대 청소년들이 느끼는 미래는 상당히 절망적이고 희망이 없는 공간(홍현주 한림대 교수)”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절망감 등이 최악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기성세대가 청소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면서 ‘그 아이가 조금만 참았으면, 조금만 더 멀리 보면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전부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과정이 되어 나중에 더 멋진 인생을 살게 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탈무드 보다 더 오래된 미드라쉬(Midrash : 성경 해석을 보조하는 전설 혹은 우화)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인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를 근거로 ‘랜터 윌슨 스미스(Lanta Wilson Smith)’는 이렇게 말합니다.
“거대한 슬픔이 노도의 강처럼 평화를 파괴하는 힘으로 그대의 삶으로 쳐들어오고 소중한 것들이 눈 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갈 때 매 힘든 순간마다 그대의 마음에 말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끊임없는 근심이 즐거운 노래를 들리지 않게 하고 피곤에 지쳐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이 진실의 말이 당신 마음의 슬픔을 줄여주고 힘든 나날의 무거운 짐들의 무게를 가볍게 하도록 하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믿음은 지금의 현상과 상황만 보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죽을 거처럼 힘들어도, 이 고난과 시련을 넘어 주실 하나님의 은혜와 승리를 바라보는 겁니다. 그리고 결국 그 믿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시면, 성전을 재건하려는 유대인들을 방해하는 대적들의 전략이 대단히 구체적이고, 효과적이었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내용을 보면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 때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아닥사스다 왕 때에는 성전재건은 이미 되어 있었고, 그 때는 예루살렘 성벽재건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룹바벨과 함께 성전 재건 공사를 시작한 때로부터 성벽재건이 이루어진 것은 약 78년간의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두 가지 재건 사역을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기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재건과 예루살렘 성벽재건에 대한 대적들의 방해가 약 78년 걸쳐 지속적으로 동일하게 이루어 졌다 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서 느혜미야1:3절에서는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유대인들은 대적들로부터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고 있었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타서 대적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던 겁니다.
오늘 본문 12절, 13절을 보면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대적들은 ‘유대인들이 성전과 성벽재건을 통해서 독립을 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온갖 거짓을 붙여 모함을 했던 겁니다. 그래서 당시 왕이었던 아닥사스다 왕이 성전 공사를 중단시킨 겁니다. 왕 입장에서는 유대지역에서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결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23절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유대인들은 반역자로 몰리고, 그들의 대적들은 페르시아 왕의 충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대적들은 더 큰 권력을 잡고 활개 치며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괴롭혔던 겁니다. 성전재건공사와 성벽재건공사도 중단이 된 겁니다.
당시의 성도들이 얼마나 억울하고 힘든 시련의 날들을 보내야 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성전재건공사도, 성벽재건공사도 모두 완공되고, 결국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승리하게 되는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죽고 싶은 만큼 너무 힘들고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지금이 아닌 그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결국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이제 믿음의 눈을 들어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을 바라보시는 복된 하루 되십시오. “이 또한 곧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