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은 없다”

<에스라 4:1~10> 

어제 뉴스를 보니, 방송연예계에서 25년간 거의 무명의 개그맨이었던 한 연예인이 지난 6개월 전부터 뜨기 시작해서 지금은 대세 중의 대세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방송 프로그램도 10여개에 동시에 출연하고 있고, 광고 역시 10여개가 방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의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무명이었지만 25년간 성실하게 일하더니 결국 인생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던 겁니다. 저 역시도 그 사람을 보면서 저의 일도 아닌데, ‘참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 제보자에 의해서 과거 이 연예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이 연예인이 10년 전 출연 중이던 프로그램의 회식 자리에서 자신을 강제로 끌어 앉는 등의 성추행을 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이 연예인은 그 사실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도 하고 지금 방송 중인 10여 개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광고 출연 중인 모든 광고주로부터 억대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25년간의 무명의 세월을 인내하며 견디고, 지난 6개월 간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 공든탑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10년 전의 실수 하나가 인생의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회복 불가능할 상태로 떨어뜨리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인간이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작은 죄와 부정적인 일들이라 할지라도 타협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만 있는 것이지, 그 어떤 것도 진리는 타협될 수 없습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서도, 액수와 관계없이 부정한 물질적 이익을 위해서도 진리와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타협이 부메랑이 되어 나의 공든 탑을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에스라 4장에 보시면, 진리에 있어 타협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절과 2절에서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페르시아에서 귀환한 유다와 베냐민 자손들은 70년 전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 소식은 유다지역과 팔레스틴 그리고 북쪽의 사마리아 곧 과거 이스라엘 땅 전역에 퍼졌습니다.

그런데 1절에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원전 722년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사마리아)을 정복한 이후에,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북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똑똑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앗수르와 바벨론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앗수르와 바벨론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북이스라엘 지역으로 이주시킨 겁니다. 그래서 인종적으로 혼혈민족이 되게 해서 어떤 국수주의적인 반란과 같은 것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던 겁니다.

이런 민족적 혼혈정책으로 인해서 사마리아 즉 북이스라엘 지역은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혼합종교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땅에서 200년간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그 땅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명령으로 유다와 베냐민 자손들이 약 5만 명이나 유대 땅으로 돌아와서 성읍들을 새롭게 세워가고, 특히 유대인들의 영적, 정신적 중심인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재건한다고 하니 그들이 긴장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전성기인 다윗 왕 시대 때 유다지파만 50만 명의 군사조직에 비하면 1/10밖에 안 되는 인원이지만, 그곳에서 200년간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유다민족의 중흥이 달가울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부에서 교묘하게 성전재건을 방해할 목적으로 2절에서처럼 ‘자신들도 오랫동안 하나님을 섬겼으니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에 참여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던 겁니다.

그런데 3절에서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그런데 유다민족의 지도자들은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고 단호하게 그들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속셈을 눈치 채기도 했고, 그들의 혼합종교로 인해서 영적인 순수함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습니다. 70년 전 나라가 망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유가 그런 잘못된 죄들 때문이었기 때문에 족장들은 그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결정으로 인해 대적들은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유대인들의 성전재건을 방해하기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진리에 있어 타협을 몰랐던 유대인들은 결국 그 일로 인해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고난을 피하고 싶어서 진리와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받더라도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주님의 제자의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에 있어 타협하지 않을 때, 반드시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말씀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가라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진리는 타협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Tags: No tags

Add a Comment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