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9:1~13>
Breakthrough 40 특별저녁기도회(10)
음주와 알콜 중독이 있고, 흡연과 니코틴 중독이 있고, 쇼핑이 있고 쇼핑 중독이 있고, 인터넷 서핑이 있고 인터넷 중독…이 있습니다. 하지만 음주와 흡연과 쇼핑과 인터넷을 한다고 모두 중독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 ‘중독’이란 말이 붙게 됩니까? 일반적으로는 무엇인가에 몰입하거나 탐닉하게 되면 ‘중독’이란 말이 붙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몰입된 그것이 없을 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질 정도가 되면 중독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담배에 거의 중독된 분들 중에 교회 오셔서 신앙생활을 시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교회 오자마자 담배가 딱 끊어질 수가 없을 겁니다. 주일날 예배 중에 그런 분에게도 깊은 감동과 은혜가 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날도 점심 식사 안 하시고 ‘잠시만 나갔다 올께요.’하면서 교회 뒷골목에 가서 담배 피우고 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이 저 같은 목회자와 밖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상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커피 잘 마시고 얘기하다가 ‘목사님, 잠시만요’하고 밖에 나갔다 오시는데, 저처럼 담배를 안 하는 사람들은 그 분이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고 오셨는지 아닌지를 냄새로 다 압니다. 이 정도면 거의 니코틴 중독인 겁니다. 담배를 피워야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겁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여자 분이 남편이랑 교회에 등록하셨어요. 심방을 갔더니 현관 문 밖에서부터 술 냄새가 나고 있었어요. 거실에 들어갔더니 마치 술통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고, 그 남편은 이미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부인은 어떻게든 남편이 예수 믿고 술도 끊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정신병원에도 갔었고, 기도원에도 데려 가서 금식기도도 하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산에 있는 기도원에서도 빠져나와서 한참을 걸어 내려가 마을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술을 사서 마셨습니다. 전혀 조절이 되지 않는 겁니다. 이런 상태를 ‘중독’이라 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람은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있다면 그는 그것을 의지하며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나치게 의지하며 살게 된 때,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되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마태복음 26:52절에 보시면,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for all those who take up the sword shall perish by the sword.)
그런데 칼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돈이 되었건, 도박이 되었건, 술과 여자와 방탕함이 되었건, 탐욕과 정욕이 되었건…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중독이 되었다는 것은 내가 그것에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고,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의지하고 산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망한다는 겁니다. 내가 의지했던, 내가 늘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망한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어리석게도 인간이 의지하던 것들 때문에 몰락한 한 왕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남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북동쪽에서 대군을 이끌고 내려온 아람 국을 대항해서 연합군을 이뤄 전쟁을 치렀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은 부상을 입었고, 다시 이스르엘로 돌아와 치료를 받고 있었고, 남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병문안을 가게 됩니다.
그 즈음에 선지자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엘리사는 젊은 선지생도를 불러 미션을 주었습니다. 그 미션은 요단 강 동편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북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인 ‘예후’라는 사람에게 다녀오라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다는 메시지를 전하라는 거였습니다. 청년은 65km나 떨어져 있었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예후를 만나 기름을 부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셨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7절을 보시면,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특별한 미션을 주시고 있었는데,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는 겁니다.
예후에게 ‘아합의 집을 치라’하셨는데, 원래 이 왕조는 ‘오므리’왕조입니다. 원래 이전에는 ‘시므리’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왕은 단 7일간만 왕위에 있었습니다. 이 시므리 역시 원래는 군대의 사령관이었는데 그 위에 있었던 ‘엘라’라는 왕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거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오므리를 더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시므리가 왕위에 올라 일주일이 되었는데, 오므리가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가니깐 시므리는 왕궁에 불을 지르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원래는 오므리 왕조가 시작된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이라고 하셨던 것은 그 왕조에서 아합이 가장 악한 왕으로서의 대표성 때문입니다.
그 아합을 더 악하게 만들었던 것은 시돈(페니키아)에서 온 바알 숭배자 공주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은 온 이스라엘을 바알우상숭배로 가득하게 만든 인물이었습니다.
아합이 전쟁터에서 죽은 뒤 그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올랐지만,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어 왕위에 오른지 2년 만에 죽게 되고, 아합의 또 다른 아들인 ‘요람’이 왕위에 오르게 된 겁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실 때 요람이 왕위에 올라있었지만 ‘아합의 집을 치라’고 하셨던 것은 결국 아합과 이세벨의 죄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 중에 한 사람이라도 선하고 의로운 사람이 있었더라면 이 왕조는 계속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둘 다 너무 악했던 겁니다. 그래서 아합의 왕조는 길게 가지 못합니다. 그 아들 때에 가서 그 왕조는 완전히 몰락하게 됩니다.
때문에 그 가정에 깨어있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하는 겁니다. 남편이 믿음이 없고 문제가 많을 수 있어요. 그러면 아내라도 정신 차리고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하고, 아내가 믿음도 없고 문제가 많을 수 있어요. 그러면 남편이 가정을 어떻게든 믿음으로 세워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부부가 둘 다 그러면 자녀들은 누구한테 영적으로 영향을 받고, 양육을 받고 자랄 수 있겠습니까? 아합과 이세벨의 부부가 똑같이 악했고, 결국 그들은 그 자녀들의 인생까지 저주 속에 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아합의 집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가? 이 구절에서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9:10절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이 말은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의 말입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활동했었습니다. 그런데 아합과 이세벨은 주님의 제단을 헐어버리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했다는 겁니다. 엘리야도 안심하고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도망 다니며 살아야 할 형편이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통해 주의 선지자들과 주의 종들의 피를 흘린 죄를 갚으시겠다는 것입니다.
8절을 보시면,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얼마나 철저하게 멸망시키실 예정이냐면, 종이든 자유인이든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모두 다 멸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왕기하 10장에 보면 아합의 70명의 아들들까지 그들을 돌보던 백성들에 의해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0절에서 이세벨의 죽음을 예언하고 있는데, 요람의 어머니요, 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은 그녀를 섬기던 내시들에 의해 건물 밖으로 내던져져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되게 되고, 개들이 그 시체를 뜯어먹는 비참하고 끔찍한 죽임을 맞게 됩니다.
아합과 이세벨 즉 ‘아합의 집’은 무엇 때문에, 어떻게 최후를 맞게 됩니까? 결국 그들은 그들이 가장 의지했던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으로 인해서 몰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은 그가 가장 신뢰했던 군대 장관 예후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요람의 어머니요, 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은 자신의 수족이 되어주었던 신하들인 내시들에 의해서 건물 밖에 내던져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합의 집을 멸하셨습니까? 그들이 가장 사랑하고 의지했던 바알과 아세라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우상들 때문에 여호와를 멸시했고,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죽이기까지 하고, 율법을 버리고 여호와의 제단을 헐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의 집을 멸하기로 작정하신 이유인 것입니다. 사무엘하2:30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하셨던 말씀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두 번째로 의지했던 것이 군사력과 칼과 힘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가장 신뢰했던 용맹한 장수였던 예후를 요람 왕은 얼마나 신뢰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군사령관 예후에게 요람 왕은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세벨 역시 늘 자기의 수족이 되어주고, 모든 말을 믿고 털어놓을 수 있었던 내시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믿고 의지 하는가? 를 묻고 있습니다.
– 돈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사람은 그 돈 때문에 크게 어려운 일이 있을 겁니다.
–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사람은 내가 의지했던 사람을 통해 크게 실망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 명예를 의지하는 사람은 그 명예 때문에 망하게 될 일이 있을 것입니다.
– 정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 무엇이 결국 우리를 망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의 모든 우상들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치료하시고 온전케 하실 예수님만을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