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1~16>
요즘 우리 형제들과 건강을 위해 산악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저는 초보 단계라 체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아직 30대 중 후반의 건강한 남성들이고, 저는 30년 동안 운동을 하지 않은 저질 체력의 50대 남자입니다.
‘혹 여라도 제가 팀에 누가 될까’해서 저는 개인적으로 체력을 좀 단련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 전 새벽기도 후에 혼자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JY스퀘어를 지나 마르코폴로호텔 오르막길과 부사이(Busay)를 향해 산으로 난 도로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올라가지 못해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페달을 밟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내려서 쉬고 조금 타고 올라가다가 또 힘들어서 쉬고, 자전거를 밀면서 올라가다 또 다시 쉬고를 반복했습니다. 2~3일을 저 혼자서 체력 단련하겠다고 혼자 자전거 라이딩(riding)을 했는데 저는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실패한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지인 부사이(Busay)라는 곳까지 그 전 첫 번째 도전 그리고 두 번째 라이딩 모두 성공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저 혼자서도 거기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성공했었던 첫 번째, 두 번째 라이딩과 실패했었을 때의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성공했었을 때는 우리 형제들과 함께 갔었지만 저 혼자 라이딩 했을 때는 실패했었던 겁니다. 형제들과 함께 라이딩 했었을 때는 우리 형제들이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았었습니다. 때문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한계점에서 다시 힘을 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이 혼자 라이딩 하며 외로운 싸움을 할 때는 더 빨리 지치기도 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돕는 배필이 있어야 하고, 우리에게는 친구가 있어야 하고, 우리 성도들에게는 다른 성도들이 함께 할 때 더 높은 곳에 다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서아시아와 유럽을 복음화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로 인해 유럽의 2천년 역사는 기독교 역사와 떼려야 뗄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역사를 위대한 사도 바울 혼자서 다 해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 로마로 가기 전, 로마에 있는 성도들 26명이상의 사람들의 이름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과 2절을 보시면,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의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집사 : 디아코노스)인 뵈뵈 여집사님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뵈뵈 집사님을 통해 이 로마서 서신을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뵈뵈 집사님은 겐그레아 교회의 영향력 있는 일꾼이었고, 늘 가난한 성도들을 돕고, 바울의 사역을 돕는 믿을만한 좋은 일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3절, 4절을 보시면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사도행전 18:2절에 보면 로마의 제4대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 B.C. 10 ~ A.D. 54) 황제가 A.D. 49년경 로마에 있던 유대인들을 종교적인 이유로 그리스의 고린도로 강제이주를 시켰습니다. 이 추방령에 따라서 당시 25,000명의 유대인들이 로마를 떠나야 했었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역시 그 때 추방되어 고린도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바울 사도를 만나 믿음이 더욱 성숙해지고, 바울 사도의 사역을 위해 자기들의 목숨까지 내 놓은 헌신된 일꾼들이 된 것이었습니다. 후에 글라우디오 황제가 죽고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자 그들은 로마로 다시 돌아가 생활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로마의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놓았습니다. 그들의 집에서 성도들이 모여 예배했던 겁니다(5절).
오늘 본문에는 뵈뵈와 브리스가와 아굴라 뿐 아니라 26명의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고, 구체적인 이름은 없지만 가정교회의 성도들과 가족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한 번도 로마에 간 적이 없었지만, 로마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냥 알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같이 구체적으로 그들과 동역하며 사역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속에 많이 나오는 표현들이 있는데, “너희는 주 안에서(2절)”,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3절)”, “또 주 안에서 내 사랑하는(8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동역자인(9절)”,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10절)”, “주 안에서 수고한(12절)”, “주 안에서 많이 수고하고 사랑하는(12절)”,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13절)”.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지만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 즉, 교회가 없었다면 그는 이 위대한 역사를 이룰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사실을 감사하며 로마의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문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일하다 손가락이 잘린 성도가 있었습니다. 잘린 손가락을 들고 응급실로 갔는데, 저도 소식을 듣고 그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성도님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제발 의사선생님에게 어떻게든 손가락을 다시 붙여달라고 말씀 좀 해 주세요’라고 하시는 겁니다. 손가락 하나 없는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우리 신체 중에 약한 부분은 있지만, 쓸데없다고 잘라내어 버린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약하고 부족해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 지체인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이들이 주 안에 하나 된 공동체와 지체임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있어 내가 있고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