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5:15~29>
한자어 중에 ‘무상(無常)’이란 말의 사전적인 뜻은 ‘모든 것이 덧없음. 일정하지 않고 늘 변함’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하늘을 보면 구름이 기압과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여러 가지 모양들을 연출합니다.
필리핀 와서 참 좋았던 거 한 가지가 하늘과 구름이 너무 예쁜 겁니다. 맑고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시시각각 만들어 내는 모양은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아름답다고 생각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모양들이라도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다 날아가 없어지고, 때로는 비가 되어 없어지기도 합니다. 모양은 뭔가 있는 거 같지만 구름의 실체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럴 때 ‘세월이 무상하다’ 또는 ‘인생이 무상하다’는 말을 쓰는 겁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대단한 권세와 권력을 갖고 세상을 호령 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갑작스런 사고로 죽거나, 어떤 큰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인생무상’이란 말을 쓰곤 합니다. 우리나라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도 처음 당선되고 국정을 시작하면 그 권세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지만, 그 대단한 분들이 어느 날 수갑을 차고, 죄수복을 입고 재판대에 서있는 모습을 불행하게도 우리는 역사 속에 종종 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 4절, 5절에서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사람들은 세상의 권력자를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은 우리를 가두고, 죽일 수 있을 지라도 그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심판하셔서 지옥에까지 던져 넣는 권세를 갖고 계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왕이 하사하는 사약(賜藥)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은 이들에게 왕이 사약을 내리게 되는데, 그 사약을 받아든 사람들은 왕명이었기 때문에 그 사약을 거부할 수 없었고, 그 사약으로 최후를 맞게 됩니다.
15절에서 이것을 ‘진노의 술잔’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 진노의 술잔을 여러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와 그 왕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8절을 보시면,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함이 오늘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어떤 나라에 가장 먼저 보내고 계시냐면,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고관들로 그 진노의 술잔을 마시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몰락하여 주변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19절부터 26절을 보면, ‘애굽의 왕 바로와 그 신하들과 그의 고관들…’을 비롯하여, 우스 땅의 모든 왕과 블레셋 사람의 모든 왕들,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 등등 그 주변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진노의 잔을 마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9절을 보시면,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주민을 칠 것임이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진노의 잔을 마시는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예루살렘 성부터 시작하여, 주변의 모든 족속과 나라들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 잔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방 열방의 왕들과 나라들이 어찌 그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민족의 주인이시고,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 하나가 있는데, 바로 ‘왕’이란 단어가 14회에 걸쳐 나타납니다. 왕과 같이 가장 큰 권세를 갖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왕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지 누구의 명령을 받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나 가장 큰 권세를 갖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 왕 위의 왕이신 하나님을 마땅히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두려운 누군가가 있어야 겸손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삶을 산다면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 받는 이들도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마땅히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주님을 경외하는 자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