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4:6~12>
세이레 특별새벽기도회 : 믿음의 세대여 일어나라(20)
CBS라디오에서 소개된 적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20대 초반의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그 길이 과연 나의 길인지, 그 직업이 내 적성에 맞는 일인지…’ 어떤 결정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성장한 20대 초반의 한 사회 초년생에게도 그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에게는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기 어려울 때 동전을 던져 선택하는 거였습니다.
이 청년에게도 파리의 ‘적십자 사’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또 다른 길 하나는 패션 디자이너 밑에 들어가 견습생으로 심부름하면서 일을 배울 것인지가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디자이너 가게에 견습생으로 가고, 뒷면이 나오면 적십자사로 가자’라고 생각하고 동전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동전의 앞면이 나와 디자이너의 심부름꾼으로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이듬해인 1946년에는 당시 주목받던 최고의 디자이너였던 ‘크리스천 디오르(Christian Dior, 1905~1957)’ 밑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는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됩니다.
크리스천 디오르가 어느 날 갑자기 죽자 이 청년을 눈여겨 지켜봤던 후원사 섬유 회사 사장이 이 청년을 후계자로 지목했던 것입니다. 크리스천 디오르가 짧은 시간에 쌓아온 세계적인 명성과 업적으로 인해 그 회사에 있으면 부와 명예 등 장래가 보장될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독립해서 자신의 이름을 건 가게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동전 던지기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동전 던지기를 통해 ‘창업’쪽으로 결정했습니다. 어쩌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결정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이 세계 패션사에서 반세기 동안 혁명을 주도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Pierre Cardin 1922~)’입니다. 좁은 다락방을 월세 내 독립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되었고, 패션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상품을 60년대부터 전세계적인 판매망을 갖춘 최초의 브랜드를 만든 사람입니다. 한 때 프랑스 개인 소득세 납부자 1위에 오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인물입니다.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그에게 한 기자가 찾아와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동전 던지기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니깐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피에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동전 던지기가 좋은 선택을 하게 한 게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든 일단 결정한 후에는 믿음을 갖고 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출애굽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출애굽 이후 그 선택을 후회하고, 하나님 앞에서 수도 없이 불평과 원망과 불신앙적이며, 비관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결국 그들 출애굽 1세대들은 40년간 광야에서 고생만 하다가 약속과 축복의 땅 가나안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세대라는 것은 일단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이것이 진리다’라고 믿는 것에 대해서는 뒤로 물러가지 않는 겁니다. 여러 가지 상황이 바뀌고,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고, 두려움이 몰려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쓰러져도 일어나고 또 도전하고 그것에 대한 믿음을 갖고 계속해서 밀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믿음의 세대요. 약속과 축복의 땅 가나안을 정복할 출애굽 2세대인 것입니다.
1.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으라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죽은 이후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와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루고 있었습니다. 정복전쟁은 5년간 계속되었고, 이스라엘은 여러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땅은 각 지파별로 분배되었지만, 아직까지 정복하지 못한 곳들도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6절을 보시면,
“그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
그런데 유다지파의 원로였던 갈렙이 지도자인 여호수아 앞에 나왔습니다. 갈렙은 과거 40여 년 전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열 두 정탐꾼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여호수아와 갈렙은 열 두 정탐꾼들 중에 유일하게 긍정적인 믿음의 보고를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열 명의 부정적인 정탐꾼들은 ‘그들은 거인족이고, 우리는 그들이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았다. 차라리 광야에서나,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나을 뻔 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14:1~4)’라고 하며 백성들을 낙심케 하고 선동했었습니다. 그들의 부정적인 말들은 순식간에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에게 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들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통곡했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주실 것이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민14:6~9).’라고 백성들을 설득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온 백성들은 돌을 들어 그들을 내려 치려하였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못하고 멸시한 출애굽 1세대들을 향해 진노하셨고, 백성 중에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은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간 광야 생활 하는 중에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출애굽 1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축복과 언약의 땅 가나안을 밟게 되고, 정복하여 소유로 삼게 될 것을 언약하셨던 것입니다.
갈렙은 이 구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나와 당신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이르신 일을 당신이 아시는 바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보고를 했었던 10명의 정탐꾼들과 출애굽 1세대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주와 재앙을 받게 되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의 언약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해서 1년에 걸쳐 가나안 땅의 입구인 ‘가데스 바네아’까지 도착했습니다. 거기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먼저 12명의 정탐꾼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곳 ‘가데스 바네아’가 그들의 인생과 미래를 결정하는 저주와 축복의 지명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믿지 않고 불평과 원망 속에 있던 이들에게는 저주의 지명이 되었지만,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축복의 지명이 된 것입니다.
같은 눈으로,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물건으로 보일 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더 없이 좋은 보물로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가장 최악의 상황이요 위기로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 위기가 최상의 기회로 보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워렌 버핏(Warren E. Buffett. 1930~)’은 ‘투자의 귀재’라고도 불립니다. 그런데 워렌 버핏이 말하는 투자의 원칙이 있습니다.
“모두가 노리는 종목에 투자하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라는 겁니다. 오를 대로 오른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 만큼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어리석은 투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욕심을 부릴 때 신중하라. 다른 사람들이 두려워할 때 욕심 부려라.”
그래서 워렌 버핏은 어떤 종목에 사람들이 꺼려할 때 욕심 부리고, 다른 사람들이 잔뜩 몰려 욕심 부릴 때는 오히려 더 신중해진다는 겁니다. 똑같은 눈을 갖고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 사람은 그 이상의 것, 그 너머의 것을 미리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비롯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탐할 때 동일한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반응은 완전히 정 반대였습니다.
부정적인 사람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 속에서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견해들만 내 놓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같은 장면을 보고 있으면서도 거기서 또 다른 소망과 기회와 축복을 찾아내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부에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상황들과 문화들 속에 상심하고 하루 빨리 이 땅을 벗어나고 싶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이 축복의 가나안으로 보일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여기서 공부하면서 학교 생활도 어렵고, 영어를 익히는 것도 어렵고, 필리핀 말과 필리핀 역사 같은 것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인생을 살아보니 우리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 중에 필요 없는 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여기에 여러분을 머물게 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항상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상황이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이고,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고 염려케 할 만하다 할지라도 거기에 또 다른 하나님의 축복이 숨겨 있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가데스 바네아는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와 절망의 장소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에게는 그 곳이 축복의 언약을 받은 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위기 속에는 반드시 또 다른 하나님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2. 비전의 그릇만큼 꿈은 이루어진다
우리가 믿는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나보다 크시고,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 크시고, 온 세상보다 더 크시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의 한계 그 이상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9절을 보시면,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이르되 네가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믿음의 사람 갈렙에게 어떤 언약을 하셨냐면,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13:14,15)”고 말씀하셨던 말씀이 떠오르게 합니다.
그러니깐 눈을 들어 얼만큼 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기업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 갈렙에게도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제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하시고 있는데, 그렇다면 갈렙이 발로 밟는 곳마다 그의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많이 밟으면 많이 주시고, 적게 밟으면 적게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안에서 비전의 그릇만큼 그 꿈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비전이 작은 사람은 그 크기만큼, 비전이 큰 사람은 그 크기만큼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자신의 딸이 귀신들렸다고 예수님께 그 딸을 고쳐달라고 찾아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고의적으로 거절하시고, 무시하셨는데 그 여인은 끝까지 예수님을 붙들고 치유해 달라고 매달립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셨습니다. 가나안 여자라는 것은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과거 가나안 정복전쟁을 통해서 멸해야 할 종족이었고, 이방인이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당시의 상황 속에서는 그 여인이 아무리 예수님께 부탁한다고 해도, 그 딸의 병을 치료할 수가 없었던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믿음은 그 모든 불가능의 장애물을 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딸은 치료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7장9절에 보면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역시 이방인이었습니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어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를 치료해 주시길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백부장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처럼 훌륭한 분이 비천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옵소서.”라고 한 겁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이 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시면서, 말씀만으로 그 하인의 병을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크기만큼 기적이 일어났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이미 한계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믿음이 한계가 있어 그 무한한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비전의 그릇만큼 우리의 꿈도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네가 밟는 땅마다 너의 기업이 되리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부 땅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나? 라고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꿈을 꾸고, 비전의 그릇을 자꾸 넓히시길 바랍니다. 믿음의 세대인 그의 꿈도 반드시 이뤄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청년 믿음으로 한계를 돌파하라
믿음의 세대는 나이나, 연륜이나, 경험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이도 관계없습니다. 얼마나 오래 신앙 생활했느냐? 도 관계없습니다. 믿음의 세대는 늘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말하고, 믿음으로 행동하는 세대를 말합니다. 그의 믿음은 나이와 관계없이 늘 청춘인 것입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시면
“오늘 내가 팔십오 세로되,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모세는 120세를 살았고, 여호수아는 110세를 살았습니다. 때문에 당시에 살던 사람들의 평균 수명을 110세 내외로 보자면, 이 구절의 갈렙의 나이가 85세라는 것은 요즘 나이로 보자면 70세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 갈렙의 모습은 얼마나 당당한지 모릅니다. 요즘 70세면 은퇴하고 ‘내 나이에 뭘 하겠나…’라고 하고 있을 텐데, 지금 갈렙은 전쟁터에도 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렙이 단순히 호기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12절 말씀도 보시면,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는데도 청년의 도전정신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도전하는 땅은 거인족이었던 ‘아낙 사람’이 머물고 있었고, 그 성들은 크고 견고했습니다. 당시가 가나안 정복 전쟁 5년이 흘렀습니다. 여러 지역들을 정복했는데, 쉽게 정복할 수 없는 땅이 있었습니다. 그런 땅 중에 하나가 거인족인 아낙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갈렙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갈렙은 그들이 아낙 자손이든, 성읍이 크고 견고하든,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 족속이든… 그건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만 함께하시면 불가능이 없고, 한계가 없다 라는 것을 믿고 있었던 믿음의 세대였던 것입니다.
처음 예수 믿었을 때의 그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뜨겁습니까? 그런데 교회 다닌 연차가 좀 되면 어느 순간부터 그 순수함과 뜨거움을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도 영적 야성을 잃어버리고, 믿음 까지도 늙어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늙는 게 아니라, 꿈을 잃어버려서 늙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이와 관계없이, 신앙 연차와 관계없이 청년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모든 한계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청춘을 유지하는 사람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 앞에 있는 모든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부 땅에서 여러분이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힐 것입니다. 학생들은 학교 다니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언어적인 한계, 필리핀 고유의 문화적인 한계, 여러 가지 행정적인 한계들, 인간관계의 한계와 기업 경영의 한계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한계들로 인해서 종종 낙심도 되고, 그냥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청년 믿음을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청년 믿음은 내 앞에 있는 한계를 돌파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서 매일 한계를 돌파하는 기도를 하며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 땅이 힘들고 어렵다 하는 분이 많은데, 또 이 땅이 위험하고 살기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저는 이 땅을 축복합니다. 교육하고 좋은 도시, 기업하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도시, 안전한 도시, 신앙생활하기 좋은 도시, 영적 부흥의 땅이 되게 해 달라고 저는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도전이 결코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5년 뒤, 10년 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우리의 기도 때문에 놀랍게 변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한인들 중에 상당수의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며 예배하고 있을 것입니다. 300백 명, 500명, 1천명이 모이는 교회들이 세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중에 이 땅에서 성공한 모델들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세부 교민사회의 중심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교회 자녀들 중에 크게 쓰임 받는 아이들도 나오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각 학교마다 우수한 학생들, 학교를 빛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아이들이 될 것을 믿습니다. 수많은 한인들이 몰려오게 되고,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그런 도시가 될 것을 믿습니다.
천지창조를 그린 이탈리아의 천재 예술가가 ‘미켈란 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위험한 일은 목표를 너무 높게 잡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너무 낮게 잡고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다.”
2019년이 시작되었고, 오늘은 그 첫 달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청년 믿음으로 한계를 돌파하는 한 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