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13>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던진 질문 때문에 예수님께서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폭행을 당해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제사장 하나가 그리로 지나가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길에 버려져 있는 그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사장은 멀찍이 피하여 지나가고, 또 그 이후 성전의 일을 하던 레위인도 그리로 지나가다 그 사람을 보고 멀찍이 돌아갑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 피하여 갔을까요? 레위기 21:1~3절에 보시면, ‘죽은 자를 만졌을 때는 부정해 진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규례는 당시 죽은 자의 사인(死因)이 전염병과 같은 것이었을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시체를 만지게 되면 혹 여라도 공동체 전체가 큰 위기 속에 빠질 것을 우려한 말씀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레위기의 말씀을 잘 알던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래서 그 사람이 이미 죽었을 것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율법규례를 잘 모르던 사마리아인(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을 거의 이방인 취급을 했습니다)은 죽어가던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 가까이 가서 그를 데려가 상처를 치유해 주고,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며 그를 잘 돌봐주도록 부탁했고, 다시 돌아와서 비용이 더 들면 갚겠다는 약속을 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율법교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율법을 어긴 사람이 선한 이웃이고,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건입니다.
1절을 보시면,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는데,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곡식 알갱이를 손바닥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 규례를 범했다(추수의 노동을 했다)’고 비난했던 것입니다(2절).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부하들과 함께 도망 다닐 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일을 말씀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성군(聖君)이며, 메시야의 예표이기도 한 왕이었습니다. 그런 왕이 율법을 어기고 부하들의 배고픔을 해결했다는 겁니다(3~4절). 그리고 제사장들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노동을 할지라도 죄가 없음을 율법이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5절).
7절을 보시면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니깐 하나님의 뜻과 율법의 정신은 그 율법 자체가 아니라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부터 13절에도 이와 관계된 또 다른 사건이 하나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거기에 병자가 하나 있었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안 고치는지를(그것을 노동행위로 봤습니다) 보고 예수님을 정죄하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그들 사회에 종종 있었던 일을 예로 듭니다. 양 한 마리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양을 끌어내지 않겠느냐? 는 겁니다.
그리고 12절에서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안식일에 일을 하고 안 하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 라는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정신은 율법을 지키고 안 지키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선을 행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먼저 있었습니까? 아니면 법이 먼저 있었습니까? 사람이 먼저 나고 후에 법이 나온 겁니다. 사람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법은 사람들의 생활을 돕고, 질서를 유지하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율법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은 사람들을 정죄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돕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정신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죄하려고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살리고 온전케 하고, 돕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누군가를 정죄하는 것이 있다면 중단하고, 오히려 그 말씀으로 누군가를 격려하고, 돕고, 칭찬하고, 축복하고, 온전케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