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4:8~18>
– Acts(42) –
‘투자의 귀재,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이 시대 최고의 투자가인 ‘워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와 함께 세계 최대 부자 순위의 세 손가락 안에 항상 드는 사람입니다. 이런 천문학적인 부를 이룬 사람들은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때문에 이렇게 성공한 사람들을 통해서는 우리가 뭔가 배울 게 많은 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렇게 성공하기까지는 이들만의 특별한 원칙이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됩니다.
워렌 버핏이 대학생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자신의 미래 수익의 10%를 투자해야 한다면, 투자하고 싶은 사람을 주위에서 골라 보십시오.”
우리가 평생 동안 약 30억을 번다면, 3억이 되겠죠? 어쨌든 3억이라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닐 겁니다. 그 돈을 누구에게, 어떤 사람에게 투자하겠느냐? 겁니다. 워렌 버핏은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인격이 뛰어난 사람에게 그 돈을 맞길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누가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지 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꾸로 이번에는
“당신이 가장 투자하고 싶지 않은 사람, 다시 말해 가장 수익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사람을 골라 보십시오.”
라고 질문합니다. 워렌 버핏은 이렇게 예측합니다. ‘당신이 고르는 대상은 잔머리를 굴리고 거짓말을 하고 남의 공로를 가로채는 신뢰할 수 없고 이기적이고 오만하며 독선적이고 신용이 없는 사람을 지목할 것이다’고 말합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내 피같이 귀한 그 큰돈을 맡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워렌 버핏은 자기 회사의 지사장들에게 2년에 한 번씩 보내는 편지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여러분은 돈을 잃어도 상관없습니다. 많은 돈이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평판을 잃지 마십시오. 인격을 잃지는 마십시오.”
“저는 아무리 큰돈을 벌어준다해도 도덕적으로 믿을 수 없고 신용이 가지 않은 사람과는 함께 사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뱉어 내야 한다’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를 합니다.
“저는 1년 내내 제가 좋아하는 일을,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 함께 합니다. 이것이 제 원칙입니다”
사람들은 ‘워렌 버핏의 투자의 10가지 원칙’같은 방법들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워렌 버핏과 같이 투자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워렌 버핏은 자신이 금전적으로 성공하는 것은 두 번째의 일이고, 자신이 일을 하는 첫 번째 원칙을 이것으로 삼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원칙에 따라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더니 지금의 이런 성공도 따라왔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 비즈니스맨에게도 그들만의 철학과 원칙과 규칙과 룰이 있고, 그 룰에 따라 살아왔더니 그들의 삶에는 기적과 같은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 속에도 우리가 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여러 가지 원칙들을 이미 제시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내 삶 속에도 기적이 시작되는 특별한 규칙과 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것을 ‘미라클 룰(Miracle rule)’이라 부릅니다.
1. 불가능은 기적의 신호탄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계속해서 터키 지방의 각 마을을 다니며 전도여행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8절 말씀을 보시면,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라는 마을에 들어갔을 때,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던 앉은뱅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앉아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걷고 뛰어 다닐 때, 그는 그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요즘이야 장애인들의 인권과 복지가 많이 좋아졌지만, 2천 년 전 당시에 무슨 복지와 인권이 있었겠습니까?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모욕당하고, 소외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특별한 직업을 갖을 수도 없었고, 그들의 삶은 가장 밑바닥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것은 그들의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들의 인생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내일에 대한 무슨 기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의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사도행전에 또 나옵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시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갈 때 그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거지를 만났었습니다.
사도행전 3:2절에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이 사람 역시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때문에 이런 신체적 핸디캡을 갖고 있는 이들이 당시에 할 수 있는 건 구걸 밖에 없었던 겁니다. 정신은 멀쩡하지만, 남들과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욕망이 있어도 벗어날 수 없는 장애의 굴레 안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려서부터 구걸을 통해 생계를 연명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사도행전 14장 그리고 사도행전 3장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3장2절에서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이라고 되어 있고,
사도행전 14장8절에서는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라고 되어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 다 태어날 때부터 못 걷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걸을 수 없었고, 이후로도 그들이 걸을 가능성은 제로(0%)였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들을 보면, 언제나 불가능한 상황들이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들, 내 능력으로 도저히 안 되던 것들이었지만, 그 불가능은 언제나 기적의 신호탄이 되었던 것입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할 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차례라는 것입니다.
청담동에서 ‘베이직 교회’를 섬기고 계신 조정민 목사님은 MBC 뉴스데스크의 메인 앵커를 하다가 47세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누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인 63세 때, 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신학을 한 것도 대단한데, 이제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에 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는 것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됩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나이 때문에, 건강 때문에, 환경 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인간적인 눈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조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못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다.”
여러분, 우리가 뭐든 할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필요하시겠습니까? 그 분을 찾고 구할 일이나 있으시겠습니까? 뭐든지 내 손 안에서 다 해결되는데, 그러면 하나님을 찾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못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그 분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가 못하는 일이라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실 차례라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는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행전 3장과 오늘 본문의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는 태어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걷고 싶어도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은 기적의 신호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내 삶에 시작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과 같이 여러분에게 불가능한 어떤 상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환경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꿈꿀 수 없는 인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내일에 대한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을 거 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서 내일에 대한, 미래에 대한 더 큰 기대조차 하지 않고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예 ‘나 같은 사람은 그런 꿈조차 꿀 수 없다’고 단정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드리십시오. 우리가 못하는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내게 불가능은 하나님이 일하실 기적의 신호탄입니다.
2. 믿음이 기적의 문을 열어준다.
기적이 일어나는 두 번째 규칙이 있습니다. 기적은 항상 믿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믿음이 기적의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시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두 발을 쓰지 못해 걸어본 적이 없었던 사람은 바울의 복음을 듣게 됩니다. 그런데 바울의 말을 들어보니 그 마음속에 믿음이라는 게 점점 싹이 트기 시작했습니다. 그 믿음은 이제 싹 정도가 아니라 ‘태어나서 평생 동안 걸어 본적이 없지만, 걷는다는 게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나도 걸을 수 있겠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보기에도 그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게 보여 졌습니다.
세부에서 새롭게 식당 오픈을 준비하고 계신 성도님이 계십니다. 이 분도 우리교회 오신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성경을 공부하며 믿음을 갖게 되셨습니다. 원래는 한국으로 돌아가려고도 생각하셨는데, 기도하시면서 여기에 식당을 오픈하시겠다는 용기를 내신 겁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닭갈비(막국수)집을 가져오기로 해서, 마리아 루이사 입구에 새로 짓고 있는 상가까지 계약하고, 인테리어 공사도 시작하고, 한국에서 기술도 다 전수받고, 모든 집기들도 다 주문해서 컨테이너로 오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도 많이 들고, 신경 쓸 일도 많고, 살짝 두려운 마음도 들고… 그러니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일은 벌여놨는데 다시 접을 수도 없는 겁니다.
며칠 전 심방을 하는데 우리 성도님이 그러시는 겁니다. ‘준비하는데 너무 힘드니깐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나 그냥 그만둘까…’ 이런 생각들도 들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깐 다시 용기가 생기고, 꿈도 생기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겁니다. 로마서 말씀에도 ‘믿음을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계속 믿음을 공급받는 겁니다. 흔들리지 않는 겁니다. 말씀의 씨가 마음 밭에 떨어질 때마다 계속 믿음의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시면,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밤새도록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빈 그물을 갖고 항구로 돌아와 그물을 씻고, 찢어진 부분을 수선하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해변으로 오시더니 그 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따르기는 여러 가지로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밤새 그물을 던지면서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런 날은 안 되는 날인 겁니다. 더더구나 지금 날이 밝아서 고기들이 다 도망가기 때문에 고기를 잡을 수가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리고 밤새 지쳤기 때문에 이젠 한 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 지친 몸을 쉬고, 저녁에 출항을 또 준비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목수 출신이고, 적어도 고기 잡는 것은 베드로의 전문 분야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을 따르기는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5장 5절에 보시면,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시몬 베드로가 어떻게 대답해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합니다. 시몬이 그물을 손질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졌던 겁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듣다 보니 믿음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졌는데, 물고기가 가득 잡혀 그물이 찢어질 정도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물고기는 두 배에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23절 말씀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믿음의 사람들에게 불가능은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내 삶에 기적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나를 두렵게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낙심케 하는 영들은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도 않고, 말씀을 믿어보지도 않고, 상황이 어렵다고, 불가능하다고, 내게는 너무 과한 꿈이라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믿음만 있다면 기적의 문은 열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평생 걸어본 적이 없었던 장애인이 말씀을 들을 때, 꿈꿀 수 없었던 일을 다시 꿈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마틴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님은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던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인권운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당시에 어떤 버스에 백인 남성이 탔었는데, 자리에 앉아있던 흑인 여성이 백인 남성에게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나라에서 흑인들이 과연 무슨 꿈을 꿀 수 있었겠습니까? 1963년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했었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란 연설은 역사적인 명연설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도저히 꿈꿀 수 없었던,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던 그 꿈이 어떻게 가능해졌겠습니까?
마틴루터 킹 목사님이 늘 암송하던 말씀이 빌립보서 4장13절 말씀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런 믿음은 기적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앞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다음 달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걱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적의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3. 믿음의 선포가 기적을 일으킨다.
성경 속에 나타난 기적을 만드는 룰, 세 번째는 믿음의 선포가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시면,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
바울은 태어나면서부터 단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던 장애인을 향해 믿음으로 큰 소리로 선포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선포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기적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선포했던 것입니다. ‘만약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이 있으면 선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면 선포할 수가 없습니다. 믿지 못하면 그에게는 기적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1858년 미국 뉴욕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소아마비를 앓았고, 시력도 아주 나빴습니다. 거기에 간질과 발작증세도 있었고, 폐렴과 천식 등 잔병치례가 잦았습니다. 호흡기 계통이 안 좋다보니 촛불을 끌힘도 없을 정도로 호흡곤란 증상까지 있었습니다.
그렇게 병약한 성장기를 보내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 후 이 아이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의 의원이 됩니다. 그리고 28세 때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고, 얼마 후에는 뉴욕의 주지사가 되고, 그리고 미국의 제 25대 부통령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1919)’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이야기입니다.
병약한 아들을 보며 계속 믿음의 말을 선포했던 아버지로 인해 그 아들이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모든 부정적인 말을 제어하십시오. 부정적인 말은 믿음의 말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들 입에서는 부정적인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말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믿음의 말을 했을 뿐이지만, 주님께서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선포를 듣고 계십니다. 우리의 말을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기적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