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1

“십자가”

<마태복음 27:45~56> 

고난주간 聖 금요일

 

 

오늘은 교회적으로는 ‘성(聖) 금요일’이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한 주전 백성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메시야 이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목요일 저녁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신 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땀이 피와 같이 되도록 처절한 기도를 드리신 후에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대제사장들이 보낸 군병들에 의해 체포되게 됩니다. 밤새 대제사장과 헤롯왕과 총독 빌라도 등에 의해 심문을 받으셨고, 금요일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6시간 뒤인 오후 3시에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있었던 짧은 영상 하나 보시고 말씀 나누시겠습니다.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과 같이 자신을 희생한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수용소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삽이 발견되었으니 어떤 사람들은 그의 희생이 너무 허무하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을 위해 목숨을 버렸고,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렸던 것입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겠지만, 그 밀알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누군가 한 사람의 희생이 있으면 그 가정이 평화롭고, 그 가정이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서 누군가 희생한다면 그로 인해 그 교회가 더 은혜롭고 평화로워지는 겁니다.

이번 수련회 때도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먼저 섬기고, 먼저 희생하니… 2박 3일의 수련회 내내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롭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다 팔짱끼고 있으면, 그곳이 가정이든, 교회든, 어디든 기쁘고 감사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을 보시면,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유대인의 시간으로 제 구시라고 하면, 오후 3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심문과 고난을 받으시고 유대인의 시간으로 제 삼시(오전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되고, 여섯 시간이 흘러 오후 3시에 숨지시게 됩니다. 그리고 숨지시기 전에 십자가 위에서 일곱 가지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구절은 그 가상 7언중에 숨지시기 직전에 남기신 말씀입니다. ‘엘리’라는 말은 ‘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성육신 하신 인간예수이기도 합니다. 그냥 인간의 껍데기만 입고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게 아닙니다. 진짜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느끼는 똑같은 감정과 고통을 인간과 똑같이 느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 역시 그냥 ‘죽는 척’ 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 역시 예수님께서 완전히 ‘죽는 것’인 것입니다. 때문에 채찍에 맞으실 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똑같은 고통을 당하시는 것이고, 3년 반 동안 양육한 제자들의 배신이 있었을 때 역시 감정적으로 똑같은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이고, 손에 대못이 박힐 때 역시 인간이 느끼는 똑같은 괴로움이 있는 것이고, 죽음을 바로 앞에 앞둔 인간이 느끼는 똑같은 두려움과 공포와 고통이 인간 예수님에게도 동일하게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 예수이시기도 하지만, 신적 본성을 갖고 계신 성자 예수님이시기도 합니다. 즉 신적 본성을 갖고 있다면 그는 죽음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성자 예수를 버린 것입니다. 신적인 본성을 갖고 계신 성자 예수님께서 죽게 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왕자로 호의호식하며, 권세와 영광을 누리며 지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 왕궁에서 쫓겨나 거지가 된다면 그 왕자가 받게 될 충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셨던 성자 예수님께서, 결코 죽음과 관계없는 분이 인간과 똑같이 죽어 무덤에 묻힌다는 것 자체가 우리 인간으로서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신적인 고통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하며 울부짖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가상칠언 중에 마지막은 ‘다 이루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셨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자가를 통해 갖고 계셨던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뜻을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 이루신 것들 중에 특별히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새로운 살 길

예수님께서 마지막 말씀을 하시면서 숨지실 때 그와 동시에 특별한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51절 말씀을 보시면,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실 때,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아래에서부터 찢어졌다면 인간이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위에서부터 찢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찢겨 졌다 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시고 있는 겁니다.

성소의 휘장이 무엇이냐면,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이나 모두 두 군대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이 들어가 제사를 드리는 ‘성소’라는 곳이 있고,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지성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한차례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 위한 ‘대 속죄일’에만 들어가 제사를 집례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 법궤’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구약 시대 때에는 아무나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가 없었습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만이 대표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성소와 지성소를 구별해 놨던 그 휘장이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위에서부터 아래로 왜 찢어졌을까요?

 

 

히브리서 10:19절, 20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구약 시대에 특별히 구별된 제사장들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그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으니, 우리가 그 성소로 그리고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살 길인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생명의 다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이 구절에서 “새로운 살 길”이란 말씀이 더 크게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장로교의 첫 번째 선교사인 언더우드 보다 먼저 조선 땅을 밟은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캐나다에서 온 ‘존 맥켄지 선교사(William John Mckenzie)’입니다. 선교훈련 중에 알게 된 땅 끝 조선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조선선교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캐나다 교단과 교회에서는 아직까지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할 것을 결정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맥켄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를 조선에 파송하지 않습니다. 맥켄지 선교사는 친구들과 기도하고, 친구들로부터 선교모금을 하고, 서른 두 살의 나이였던 1893년에 홀몸으로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황해도 솔내로 가서 한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으며 정착해 헌신적으로 선교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년 반 정도를 불철주야로 활동하다 보니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5일간 고열에 시달리다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질병과 싸우면서 일기를 남겨두었는데, 그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내 마음은 평안하며 예수님은 나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맥켄지 목사가 죽고 난 후 불신자들 중에도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고, 그의 사랑과 헌신 그리고 젊음을 조선인들을 위해 희생한 것에 감동을 받은 이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 그 지역에 주님 앞에 돌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생겨났고, 조선의 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가 굳게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 소식이 캐나다 선교부에 전달되었고, 캐나다는 1897년 조선선교를 의결하고 여러 선교사들을 파송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비록 우리 조선 땅에 와서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의 헌신과 희생을 통해 조선 최초의 교회가 황해도 소래 땅에 세워져 가게 되었고, 그 지역의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또한 캐나다 선교본부에서도 조선선교를 결의하고 여러 선교사들을 파송하게 된 것입니다. 그의 희생과 죽음을 통해 ‘새로운 살 길’이신 예수님을 조선에 알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 사람이 살고, 그 사람을 통해 그 가정이 살고, 그 지역이 살고, 그 민족이 살아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우리의 새로운 살 길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2. 열려진 무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시던 그 순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기도 했고, 또 다른 현상들이 나타났습니다.

 

51절 하반절, 52절을 보시면

“…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아마도 큰 지진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 그냥 지진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지진으로 인해 바위가 터지게 되었고, 무덤들이 열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덤들은 모두 천연동굴이나, 석회암으로 된 바위를 파서 시신을 안치해 두는 무덤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무덤들이 열렸고, 죽었던 성도들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3절에 보면 그들의 부활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성도들도 부활하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진정한 부활체를 입었던 것은 아닙니다. 마치 나사로처럼 죽은 지 여러 날이 되어 썩어서 냄새가 날 정도였었는데,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지만 언젠가 그가 또 죽음을 맞았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무덤을 이기고, 죽음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무덤’이라는 것은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 끝났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무덤이 열렸다’는 것은 거꾸로 ‘이제 새로운 소망이다’, ‘이제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 십자가 앞에 가까이 갈 때,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날 수 있고, 다시 재기할 수 있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 수련회는 고난주간 중에 있었습니다. 고난 중에 진행되는 행사였기 때문에 제게도 약간의 부담은 있었습니다. 고난 주간인데 막 웃고, 즐겁게 떠들어도 되는가? 하는 율법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난주간이니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좀 우울하게 지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련회를 통해서 집회 때마다, 프로그램마다 주시는 은혜들로 인해서 함께 울고, 함께 웃고 그러는데 하나님께서 우리 공동체를 치유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만지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복음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은혜 안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함께 무덤이 터지고 열려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성(聖)금요일입니다.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날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과 함께 무덤이 열렸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생의 무덤들이 열려지길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절망들이 소망과 비전으로 바뀌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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